▲경남 진주 소소책방을 운영하는 조경국의 책 <필사의 기초>.
유유
사적인 견해를 잠시 말하자면, 조경국은 기자가 45년간 만나온 적지 않은 사람들 중 '가장 순정한 사내' 중 한 명이다.
상대에게 결례를 하게 될까 싶어 취하도록 술을 마시지 않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짧은 시간이나마 책을 읽으며, 세상사의 온갖 유혹에도 쉬이 흔들리지 않고 무엇보다 식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그렇게 살기는 몹시 어려운 일. 그러나,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웃음 띤 얼굴로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 해서, 자랑하고픈 후배다.
바로 그 조경국이 책을 냈다. 보기 드문 그의 성정만큼이나 보기 드문 주제를 담은 책이다. 이름하여, <좋은 문장 잘 베껴 쓰는 법-필사의 기초>(유유).
경제성장과는 무관하게 평균 독서량이 세계 최하위 수준인 한국에서, 책을 베껴 쓰는 것은 고사하고 아예 읽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사는 땅에서, "한 줄의 좋은 문장에는 인간과 세계의 진실이 담겼다"는 말에 코웃음을 치는 이 나라에서 '필사(筆寫)'라니. 그것에 관해서 책까지 쓰다니.
그러나, 앞서 언급한 그의 성정을 감안하고 보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조경국은 찧고 까불며 가볍게 출렁이는 세상과는 무관하게 묵묵히 자신만의 세계에서 침잠해온 사람이기에. 책에 의하면 그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필사를 해왔다고 한다. <천자문>을 열 번 넘게 베껴 썼고, <논어>와 <맹자>, <시경>과 <주역> 등 이른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제대로 필사하는 게 목표라고.
<필사의 기초>에는 조경국이 아버지에 관해 쓴 이야기도 등장하는데, 기자 역시 부친을 떠나보낸 지가 오래라 그 대목에선 눈가가 시큰해졌다.
'어쨌거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칠칠치 못한 아들이 제사를 제대로 모시지 못할까 베껴 쓸 수 있게 신위와 축문을 단정한 글씨로 써서 넣어 두셨습니다. 지금도 제사를 지낼 때면 아버지가 써 두신 신위를 꺼내 붓펜으로 그대로 옮깁니다....(중략) 아버지는 가시고 조상의 혼백을 모시는 아버지의 글씨만 남았고, 저는 또 아버지를 부르는 신위를 씁니다. 결국 필사란 떠난 이를 기억하고 다시 부르는 일이 아닐까요.'
따스하고 선량한 필체를 확인하다별개로 존재하다 각각의 죽음을 맞는 인간이지만, 세상의 '아버지들'은 유사한 구석이 많아서일까. 기자 역시 부친이 세필(細筆)로 정성들여 선대(先代)의 신위를 쓰던 기억이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역사란 이러한 기억들의 총합 혹은, 총체가 아닐까.
<필사의 기초>는 조경국의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을 똑 닮았다. 책 속에는 사람의 필체를 바라보는 그의 견해와 필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 주는 조언, 베껴 쓸 만한 좋은 책들에 관한 정보, 필기구와 노트 소개까지가 촘촘하게 담겼다. 어느 한 줄도 버릴 문장이 없다. 잘라 말한다. 이것은 '좋은 책'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 <필사의 기초>에선 조경국의 펜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단아한 붓글씨로 한국에서 손꼽히는 소설가 김성동은 "문장이 곧 그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이렇게 바꿔보고 싶다. "필체 역시 그 사람"이라고. 조경국의 필체는 따스하고 선량하다.
필사의 기초 - 좋은 문장 베껴 쓰는 법
조경국 지음,
유유,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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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신라 여자> <아름다운 서약 풍류도와 화랑> <천년왕국 신라 서라벌의 보물들>등의 저자. 경북매일 특집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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