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밥 논란' 예비군의 어이없는 복장단속

처음 간 예비군 훈련... 복장 규정의 자의적 적용, 반말, 손가락 지시까지

등록 2016.07.13 05:29수정 2016.07.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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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란이 됐던 '예비군 개밥' 사진

논란이 됐던 '예비군 개밥' 사진 ⓒ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 갈무리


지난 2월 육군참모총장은 예비군 훈련에 대해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으로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한 대비태세가 필요한 만큼 실전적 예비군 훈련으로 확고한 대비태세를 확립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군기 빠진 예비군'을 '전투형 예비군'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자율참여형 훈련시스템, 성과제 시스템을 도입해왔다.

그러나 국방부의 이러한 시도와는 달리, 예비군 경험자들은 이에 상당한 비난을 보내고 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예비군 개밥 사건'을 비롯해서 여전히 예비군에 대한 대우가 하찮기 때문이다. '예비군 개밥 사건'이란 예비군 훈련부대가 예비군을 진지공사에 내보낸 뒤, 반찬을 대충 비벼서 만든 '개밥 같은' 주먹밥을 내놓은 사건이다. 게다가 이후 부대 관계자가 '예비군의 핸드폰을 걷었어야 했다'는 뉘앙스로 블로그에 글을 써 또 다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지난 2015년 7월에 육군 복무를 마치고 전역했다. 전역한 나는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편입됐고 올해 6월 말, 예비군 1년 차로 학생예비군 훈련을 받으러 갔다. 첫 예비군 훈련은 어땠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굉장히 실망했다. 이렇게나 실망스러운 수준일 줄은 몰랐다. 이에 나는 생애 처음으로 경험한 나의 첫 번째 예비군 훈련에 대해 고발하고자 한다.

규정에는 없는 '군용' 요대

먼저 나는 학생예비군 훈련이 얼마 남지 않은 가운데 지난해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 친구에게 주의할 점을 물어봤다. 친구는 '요대(腰帶)', 즉 허리띠를 꼭 착용해야 한다고 했다. 착용하지 않으면 3000~4000원을 주고 사든지, 아니면 퇴소 당한다는 말이었다. 현재 예비군 훈련 수당이 교통비로 6000원(학생 예비군- 8시간 기준, 점심식사 할 경우)밖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상당한 금액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군용 허리띠가 없었다. 전역할 당시에 누군가가 가져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국방부에 전화를 걸어 예비군 복장 규정에 대한 근거를 물어봤다. 그러자 담당자는 향토예비군 설치법 시행령이 근거라고 답변했다. 이후 나는 예비군 복장 규정에 대해 찾아보았다. 그에 대한 규정은 다음과 같다.

 군용 요대

군용 요대 ⓒ 오마이뉴스


향토예비군 설치법 시행령에 의하면 제18조의2(예비군복의 종류)에서 '예비군모, 예비군 제복, 예비군화, 예비군 표지장, 예비군 특수복, 부속품 : 요대'라고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요대'는 다른 것들과 달리 '예비군'이라는 명칭이 붙어있지 않았다. 관련 법령에서도 요대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고 그저 '허리띠'로만 해석되게 되어 있었다.


만약 군용 허리띠만을 착용해야 한다면, 나는 기꺼이 군용 허리띠를 구매할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확인 결과 꼭 군용 허리띠만 강요할 수 없는 일이었고 이후 관련 규정을 들어 재차 국방부 관계자에게 전화 문의해 보니 그 역시 나중에는 군용 허리띠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나는 이러한 확인을 통해 확신을 가지고 사회에서 쓰는 일반적인 허리띠, 즉 평범한 검은색 허리띠를 차고 갔다.

"국방부 사람들, 현장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야"


하지만 학생예비군 훈련부대로 지정된 모 사단에 도착해 복장검사를 받던 중, 선글라스를 낀 예비역 간부인 예비군 교관이 나를 지적했다. 그것도 지휘봉 같은 것으로 나를 가리키며 "옆으로 빠지라" 했다. 굉장히 불쾌했으나 나는 인쇄하여 가져간 관련 규정을 보여주며 "내 허리띠 착용은 문제없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잠시 인쇄물을 읽어보던 그 교관은 입을 다물고 나를 옆에 있던 감독관에게 다시 보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또 예비역 간부인 감독관에게 규정을 보여줬다. 그 후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인쇄물을 한참 읽던 감독관이 돌연 나를 쳐다보더니 내게 이렇게 말했다.

"아니, 벨트값이 얼마나 한다고 이래요? 돈이 없어요?"

규정을 근거로 정당하게 행동하는 사람을 '돈이 아까워서 떼쓰는 사람'으로 몰아간 것이다. 어처구니없었다. 나는 "규정에 의거한 일인데 왜 이것을 고작 몇천 원 아끼려고 떼쓰는 것처럼 말합니까?"라고 답했다. 이러한 실랑이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자 감독관은 지겹다는 표정을 짓더니 자신의 차로 가서 자신의 군용 요대를 가져왔다. 예비군 1년 차이니 그냥 주겠다는 소리까지 했다. 군용 요대를 받은 내게 감독관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국방부 사람들, 현장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야."

그러면서 그는 "국방부 관계자들은 현장 일을 하지 않아 잘 모른다"며 "규정과 실무는 다르다"는 말로 내게 훈계까지 했다. 그 뒤에도 이 감독관은 나를 상당히 주의 깊게 봤다. 아마 '겨우 몇 천 원인 요대' 갖고 국방부에 전화까지 건 사람은 상당한 '문제 예비군'으로서, 다른 '사고'를 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 때문인 듯했다.

이렇게 단단히 찍힌 나는 그래서 어떻게 됐을까. 처음부터 다시 복장검사를 받으라는 말과 함께 수백 명의 예비군 중에서 가장 뒷줄에 섰다. 아무도 따지지 않던 요대 규정을 가지고 항의한 '괘씸한 예비군'으로, 그래서 가장 마지막으로 입소 절차를 받아야 했다.

예비군에게 무례한 행동을 일삼는 교관

a  예비군 훈련 (자료 사진)

예비군 훈련 (자료 사진) ⓒ 김종훈


어쨌든 총기를 지급 받은 나는 이후 같은 분대에 속한 예비군들과 함께 훈련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이어 몇몇 자잘한 보여 주기식 훈련을 거친 뒤 사격술 예비훈련, 일명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를 하게 됐다. 그런데 당시 좀 특이했던 장면이 하나 있었다. 시범을 보여주는 교관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다. 예를 들어 이랬다.

P.R.I를 담당하는 교관은 모든 것을 손으로 지시했다. 손가락을 까딱까딱 흔들며 시범 분대에게 이동 지시를 했고 나중에는 입소한 예비군에게 "거기 xxx번! 제대로 안 해?"라며 반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더니 끝내 "xx분대! 뒤로 가. 다시 해!"라고 불합격시켰다. 다행히 이후의 분대들과 내가 속한 분대는 합격했다. 하지만 합격하든 불합격하든 모든 분대원들은 공통적으로 교관의 '반말'을 들어야 했다.

해당 교관 외에도 대다수의 교관들은 학생 예비군에게 시종일관 굉장히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예비군에게 반말하는 것은 기본이었고, 손가락 지시도 예사였다. 우리들은 예비역이 아니라 다시 현역 병사가 된 것으로 착각해도 좋을 정도로 이런 하대를 받았다. 그러나 어떤 예비군도, 심지어 요대에 관해 따졌던 나 역시 항의할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교관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으면 무한 반복을 시키겠습니다. 그러면 늦게 가겠죠?"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너무나도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이 '협박'에 항의할 수가 없을 것이다. 피곤한 예비군들은 조금이라도 빨리 퇴소하기 위해 교관들의 이러한 '횡포'를 묵묵히 견뎌야만 했다.

필요할 때만 규정을 찾는 예비군 훈련부대

'규정' 대로 해서는 '실무'를 원활히 진행할 수 없다는 예비군 훈련장. 그렇다면 예비군 훈련부대는 '빡빡한 규정' 대신 비교적 '느슨한 실무'를 통해 예비군들을 대할까? 정답은 '아니다'. 최근 공군 예비군의 형편없는 식사를 사진으로 찍어서 SNS에 올린 사건이 있었다. 초라한 식판의 모습에 대다수 예비역과 누리꾼들은 격분했다. 이러한 사태에 공군 예비군 훈련부대는 과연 어떻게 대응했을까.

어처구니없게도 식단 개선을 하거나 사과문을 올린 게 아닌 '사진 게재 관련자 색출 후 퇴소' 조치를 했다. 해당 부대는 이에 대해 비난이 가중되자 "국방부 지침을 받아 규정대로 처리한 것"이라고 밝혔다. 예비군 훈련 중엔 휴대폰을 쓸 수 없는데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형편없는 식사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보복을 당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가. 규정만을 따져서는 실무 진행이 어렵다는 예비군 아니었던가. 이쯤 되니, 예비군 훈련장에서의 규정은 필요할 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 라고 묻고 싶다.

예비군에게 이러한 형편없는 대접을 하면서도 안보교육에서는 "예비군이 병력의 주축이니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훈련 중에는 '군기 빠진 예비군'에 대해 언급하며, 군기확립을 강조하는 영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대다수 예비군들은 영상을 보며 내심 코웃음을 칠 것이다. 제대로 된 예우는 고사하고 교관의 반말 남발, 형편없는 식사 제공 등을 하면서 '애국심'과 '군기확립' 운운하는 것이 가당찮기 때문이었다. 예비군 훈련부대부터가 규정대로 하지 않는데, 누구보고 '군기가 빠졌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국방부에 말하고 싶다.

"예비군에 대해 예의를 갖춰 주십시오. 우리는 이미 나라를 위해 청춘의 일부를 바친 애국자입니다. 애국자로서 마땅한 예우와 의전을 다해 주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 잘못된 훈련부대의 '자의적인' 규정 적용은 안 됩니다. 규정을 바르게 하십시오!"
#고충열 #예비군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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