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이 <백범일지>에도 언급하지 않은 여성

정운현의 <조선의 딸, 총을 들다>를 읽고

등록 2016.07.15 13:35수정 2016.07.18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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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변열사기념관에 비치된 항일빨치산 여전사 모형
연변열사기념관에 비치된 항일빨치산 여전사 모형박도
내가 뒤늦게 역사를 공부하면서 골똘히 관심을 가진 것은 '왜 동양이 서양에 뒤졌는가?', '왜 우리는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대답 가운데 하나는 동양,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의 반인 여성을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묶어 둔 때문이었다.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여성의 사회 참여는 거의 제한되어 심지어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는 속담까지 생겨났다.

이에 견주어 서양은 19세기 말부터 여성의 참정권이 실현되는 등, 국난 때는 여성들이 총들 들고 전투에 나섰다. 가까운 중국도 일제강점기에는 여성들도 총을 들고 나섰다.

한 호사가는 초기 장제스(蔣介石)의 국부군이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군보다 병력이나 화기 등 군사력이 월등히 우세했지만 끝내 국부군이 패전한 것은 군에서 여성의 활용 때문이라고 했다.

공산군은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대우하며 빨치산 등에 참여케 하여 전투력을 극대화 시켰다. 반면 국부군은 여성들을 한낱 위안부로만 활용, 그들의 부대이동 때 으레 맨 뒤에 위안부를 데리고 다녔다는 얘기를 하는데, 일리가 있는 말로 들렸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군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


 <조선의 딸, 총을 들다> 겉 표지
<조선의 딸, 총을 들다> 겉 표지인문서원
정운현이 쓴 <조선의 딸, 총을 들다>라는 책을 입수한 지도 꽤 오래되었다.

모두 24화로 된, 조선의 딸들이 독립운동에 나선 이야기를 엮은 이 책을 소설처럼 한꺼번에 읽기에는 한 분 한 분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기에 머리맡에 두고 한 번에 한두 일화씩 읽으며 그분들을 기렸다. 저자가 서문에서도 밝혔지만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은 남성보다 더욱 고초가 심했다.


"남자들은 뭔가를 하면 대개 전업이 된다. 그러나 여성은 그렇지 못하다. 밖에서는 직업인이지만 집에 돌아오면 아내요, 엄마요, 주부의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여성독립운동가의 삶도 이와 비슷했다. 이중고, 삼중고를 겪어야 했다는 얘기다. 게다가 '뒷바라지'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티도 잘 나지 않는다. 밥하고 빨래하고 집안 챙긴 것을 누가 독립운동으로 쳐주겠는가?"
- '머리말' 6쪽에서

나는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이상룡 선생의 손부 허은 여사의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와 우당 이회영 선생 부인 이은숙 여사의 <가슴에 품은 뜻 하늘에 사무쳐>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항상 손님은 많았는데 땟거리는 부족했다. 어떤 때는 점심 준비 하느라 중국인에게 밀을 얻어다가 국수를 만들곤 하였다. 마당의 땡볕 아래서 맷돌을 돌려 가루를 내고, 또 그것을 반죽해서 국수를 뽑았다. 고명거리가 없으니 간장과 파만 넣어 드렸다."
- 허은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126쪽

삼한 갑족 명문의 우당가 이은숙 여사는 두 딸을 천진 빈민구제원에 보내고, 당신은 고무공장에서 여공생활과 삯바느질, 삯빨래로 입에 풀칠을 하면서 독립운동을 도왔다. 하지만 그 공 모두는 남정네에게만 돌아갔다.

여성 독립운동가 24인의 일화

이제 이 책의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여기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24인의 묻혀진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 글에서 그 일화를 일일이 다 소개치는 못하지만, 그 거룩한 이름이라도 여기에 밝힌다.

1. 한국독립운동 명가의 잊혀진 주역 김락
2. 백범의 비서로, 조선의용대 대원으로 활약한 이화림
3. 조선총독 암살에 가담한 남자현
4. 임정의 전천후 안주인 정정화
5. 함북 명천에서 만세 시위하다가 옥에서 순국한 동풍신
6. 엘리트 신여성 항일투사 김마리아
7. 간호사 출신 항일투사 박자혜
8. 조선의용대 대원 박차정

9. 안중근 어머니 조마리아
10.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11. 여성비행사 권기옥
12. 제주해녀 부춘화
13. 수원 3.1혁명을 주도한 김향화
14. '고공농성'을 벌인 강주룡
15. 여성 의병장 윤희순
16. 이육사의 시신을 인수한 이병희

17. 대한독립청년단 총참모 조신성
18. 일제에 총살당한 김알렉산드라
19. 한국여군의 효시가 된 항일무장투쟁가 오광심
20. 항일무장 투사 김명시
21. 독립운동에 뛰어든 '사상기생' 정칠성
22. 임시정부 의정원 최후의 여성의원 방순희
23. 이역만리에서 분투한 '하와이 이민1세' 이희경
24. 풍운아 박헌영의 아내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던 주세죽

 여성독립운동가 이화림
여성독립운동가 이화림인문서원
여성 독립운동가라면 유관순 열사 한 분뿐으로만 기억하고 있는 우리에게 정운현은 숨겨진, 묻힌 여러 명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자상하게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다.

어디 이분들뿐이겠는가. 앞으로 더 많은 숨겨진 독립운동가들의 행장이 발굴되기를 기대한다.

여기 한 슬프고도 아픈 일화 - 백범의 비서로, 이봉창 · 윤봉길 의거에 은밀한 조력자였던 이화림 여사의 행장 일부를 발췌해 본다.

역사에 묻힌 이화림

1905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화림은 두 오빠를 따라 1919년 3·1혁명에 참가했다. 1927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해 학생운동을 전개하던 이화림은 이듬해 조선공산당이 해산되고 국내에서 항일운동이 어려워지자 1930년 상해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독립운동가요 한글학자인 김두봉의 소개로 임시정부 김구 주석을 만났다. 이화림은 임정 산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여기서 이봉창 · 윤봉길 의사 의거를 도왔다. 이후 이화림은 백범을 모시면서 비서 노릇을 했다. 그러나 임시정부나 독립운동사 관련 기록 그 어디에도 이화림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백범이 쓴 <백범일지>에는 수많은 사람이 실명으로 등장한다. 심지어 인천감옥시절 감옥에서 만난 죄수 이름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백범일지>에는 '이화림' 석 자가 없다. 1938년 봄, 이화림은 백범을 만났다.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저자 정운현
<조선의 딸, 총을 들다> 저자 정운현정운현
"동해(이화림의 가명)야! 너 아직도 공산주의자냐? 공산주의를 믿느냐?"
"네, 저는 공산주의를 믿습니다.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
"그럼, 우리 앞으로 다시는 만나지 말자구나."

백범은 이화림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단호히 연을 끊었다. 이후 두 사람은 중경에 머무는 동안 다시는 만나지 않았다. 공산주의를 극도로 혐오했던 백범이 공산주의자를 만나지 않기로 한 것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임시정부 동지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이화림을 <백범일지>에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은 것은 납득키 어렵다. 어쩌면 이 때문에 '이화림'이라는 이름 석 자는 광복 70년이 지나도 우리 역사에 묻히고 잊혀 왔을 것이다.

정운현은 이 일화 마무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상해 임시정부에서 김구 주석의 비서를 지냈고, 이봉창· 윤봉길 의사 의거를 도왔으며, 조선의용대 여성대원으로 항일무장투쟁에도 나섰던 이화림. 그는 불굴의 여성 혁명가요, 숭고한 여성 항일투사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영전에 건국훈장을 바칠 날은 언제일까?"
덧붙이는 글 책이름 :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지은이 : 정운현 / 출판사 : 인문서원 / 값 : 16,000원

조선의 딸, 총을 들다 - 대갓집 마님에서 신여성까지, 일제와 맞서 싸운 24인의 여성 독립운동가 이야기

정운현 지음,
인문서원, 2016


#여성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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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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