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목숨' 서비스노동자... 남일이 아니다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인 나, 티브로드 수리·설치 기사들을 지지한다

등록 2016.08.02 13:40수정 2016.08.0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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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5년 9월 처음 IPTV에 가입하며 티브로드를 접하게 되었다. 몇 달 뒤 인터넷을 변경하게 되면서 티브로드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인터넷까지 설치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설치하기 전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고객님, 죄송하지만 설치기사가 파업에 들어가서 방문을 할 수 없겠는데요. 오늘은 설치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내일 방문 드려도 괜찮으실까요?"
"아, 그래요? 파업이 이유라면 충분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 내일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약속한 날인 다음 날,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방문하기로 한 기사가 파업이 길어지는 관계로 오늘 방문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파업 때문에 고객님께 불편함이 생기시는데 어떻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시간이 급한 것은 아니라서, 가능하신 날짜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서비스를 제때 이용하지 못해서 생기는 불쾌함이 아니라 티브로드 관리자로 보이는 사람의 태도에 느끼는 불쾌함이었다. 노동자의 파업 때문에 고객이 손해를 보는 것이라는 뉘앙스와 부정적 감정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해서 파업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노동3권은 헌법에서도 보장하는 정당한 권리이다. 사실상 파업권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간접고용 노동자가 파업하기까지는 큰 어려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노동자가 파업하는 데에는 그만한 배경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를 책망하고 불편을 가져오는 존재로 여기는 사측의 태도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추락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 씁쓸했다

설치기사 사후 점검 문자 내용 티브로드 설치기사는 사후 점검까지 친절히 진행해주었다. ⓒ 이용희


며칠 뒤, 인터넷 설치기사가 집에 방문했다. 설치기사는 빠른 시간 내에 인터넷을 설치해줬고 속도까지 점검해줬다. 설치기사는 신속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리고 한 달이 흘러 인터넷에 문제가 생기자 사후점검까지 도와줬다.

나는 티브로드 소비자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업종의 기술서비스 노동자이기도 하다. 나는 삼성전자서비스 수리기사이며,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의 조합원이다. 2013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삼성에 맞서 '골리앗에 맞선 다윗'처럼 싸움을 벌여냈고 철옹성같은 무노조 경영을 뚫어냈다.

노동조합을 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삼성 마크를 달고 일하지만 나는 삼성의 직원이 아니다. 티브로드 설치·수리기사 역시 티브로드 마크를 달고 일하지만, 티브로드 소속 직원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간접고용 하청노동자인 것이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노동조합 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고 있다.

그리고 몇 달 뒤,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지난 2월, 티브로드 한빛북부센터와 전주기술센터에서 일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51명이 해고된 것이다. 두 센터의 폐업과 하청업체 변경, 고용승계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관련 기사 : 티브로드 원·하청, 노동자 고용승계 '우리는 모른다')

인터넷 기사와 보도자료를 찾아 읽어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무책임한 업체 교체 과정, 조합원이 다수인 센터에 생긴 다량의 해고자, 낮은 임금, 안 좋은 근무환경까지 하청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 받을 수 있는 모든 탄압이 벌어지고 있었다.

올해 1월 31일 50개의 티브로드 협력업체에 대한 용역계약이 만료되었다. 이 업체 교체 과정에서 노조탄압과 노동조건 후퇴가 일어났다. 전주 신규업체는 기존센터에서 일하던 노동자 50여 명에 대해 고용승계 의무가 없다고 말하며 신규인력 채용 공고를 내고 선별적 고용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신규업체 직원은 비조합원 30여 명과 신규인력 20여 명으로 교체되었고, 이들은 고용의 대가로 저임금과 초단기 기간제 계약 등 후퇴한 노동조건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한빛북부센터의 경우 원청이 새로운 업체를 선정하지 않고 인근 센터인 한빛동부센터와 한빛서부센터로 지역을 분할했다. 그리고 분할된 채용공고와 면접 속에서 조합원을 배제하는 선별고용이 진행되었다. 현재 고용승계가 거부되어 해고된 노동자들은 전주지사와 티브로드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한빛북부센터는 내가 살고 있는 광명 지역을 기반으로 한다. 나에게 친절히 설치·수리를 해줬던 기사 역시 한빛북부센터에 남아있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하청업체 비정규직의 현실이 서늘하게 체감된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 노동자의 삶이 어디까지 추락해야하는가?

간접고용 비정규직이 확산되며 노동자는 파리목숨이 되었다. 가슴에 원청 마크를 달고 수십 년간 같은 일을 하지만 하청업체가 교체될 때마다 신입사원이 되고 퇴직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했다. 티브로드 원청은 설치·수리·영업까지 노동자에게 떠넘겼지만, 노동자가 문제를 제기하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며 "우리 직원이 아니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들의 투쟁에 힘을 보태고 싶은 이유

티브로드 이용자 실천행동 선언 티브로드 이용자 실천행동 선언 웹자보 ⓒ 진짜사장재벌책임공동행동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티브로드 이용자 실천 행동 선언' 웹자보를 보게 되었다. 8월 18일이 되면 해고사태가 200일을 맞는다고 한다. "연초 대량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제 가정과 일터로 돌려보내야 합니다"는 문구에 마음이 먹먹했다. 이들은 '남'이 아니다. 내 곁의 주민이고, 일상에서 만나는 설치·수리기사이며 나와 같은 노동자다.

나는 노동조합을 하는 조합원으로서, 같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기술노동자로서, 소비자로서 '케이블방송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자 복직 투쟁'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윤만을 독식하며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티브로드를 규탄한다.

진짜 사장 원청인 티브로드가 하청업체 노동자의 고용보장을 책임져야 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고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때까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함께할 것이다. 이러한 싸움에 더 많은 사람의 관심과 지지가 필요하다.
#티브로드 #이용자실천행동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진짜사장재벌책임공동행동 #간접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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