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해냄
조정래 소설 <풀꽃도 꽃이다>는 한국의 교육시스템과 그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아이들을 다룹니다. 망가진 교육시스템이 아이들을 어떻게 살게 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사회 고발서에 가깝습니다. 저자가 상상력을 발휘한 건 인물과 구성일 뿐, 내용에 상상력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을 듯합니다. 대신, 오랜 시간에 걸친 방대한 자료조사 결과가 소설의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자료조사 결과는 에둘러 표현되지 않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직설적입니다. 소설에서 아이들은 이런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나눕니다.
"아 정말, 살고 싶지가 않다.""아휴, 청춘은 인생의 봄이라는데 우리 꼴은 이게 뭐냐. 마냥 공부, 공부에 시달리고, 요따위로 성적 써 붙여 스트레스받고, 다 불 싸질러버리고 싶다.""으유, 싹 다 죽이고 나도 팍 죽고 싶다." - 본문 중에서공부, 공부 노래를 부르며 학교와 부모가 아이들을 억압해 갈수록 아이들은 세상과 부모를 향한 사랑과 신뢰를 잃습니다. 학교는 벗어나고픈 공간일 뿐이며, 엄마 아빠는 '미친년', '개새끼' 일뿐입니다.
한 아이는 "엄마들 사랑? 그거 자식들 죽이는 독약이에요"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욕설 같은 표현도 거르지 않고 그대로 아이들 입을 통해 뱉어냅니다. 아이들이 이런 말과 행동을 할 정도로 어른들에게 적대적이라는 걸 어른들도 알아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겁니다.
소설에서 아이들은 제 엄마를 '무식'하다고 자주 표현합니다. 아빠는 엄마한테 힘도 못 쓰는, 돈만 벌어다 주는 '찌질이'입니다. 그런데 '무식한' 엄마가 자꾸 아이들더러 '찌질이' 아빠처럼 되라고 합니다.
공부해서 대기업에 들어가라고요.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라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대기업 다니는 아빠가 곧 명퇴할 것이란 사실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높은 사람이 되라는 엄마의 속물근성과 권력욕을 비웃기도 하지요.
자식이 본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고 부모들은 그저 자식이 제 소유물인양 마구 휘두를 뿐입니다. 본인의 불안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부모들은 불안을 아이들에게 전가하며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이들을 사교육 지옥으로 밀어 넣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영어, 수학, 국어를 배운다고 해요. 그 외 학기마다 미술, 피아노, 수영, 성악, 댄스, 논술 등에 시간을 뺏기며 제대로 놀아 보지도 못한 채 어른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기계 같은 생활 속에서 아이들의 95퍼센트는 부모의 기대가 부담스럽다고 말합니다. 성적 때문에 불안하고 눈치 보이고, 그래서 부모와 대면하기조차 싫다고 해요.
소설에서 중3 아이는 자살 충동을 느낄 때마다 글을 씁니다. 죽고 싶다고 써요. 죽고 싶은 이유는 "엄마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고등학생이 되면 엄마가 더 성화일 게 뻔한데, "지금보다 더 심한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자꾸 도달합니다. 상담 선생님 앞에서 아이는 조심스럽게 본인의 꿈을 말합니다. 아이의 꿈은, '엄마 없는 데서 사는 것'입니다.
한 여론 조사에서 엄마에 대해 물으니 최악이라는 답이 96퍼센트가 나옵니다. 그저 그렇다가 3퍼센트, 좋다가 1퍼센트예요. 고민이 생겼을 때 누구와 상담하느냐는 설문엔 친구가 40.2퍼센트, 아빠가 0.9퍼센트, 선생님이 0.1퍼센트, 그리고 엄마는 아예 없습니다(이 설문에서 60퍼센트의 아빠는 본인이 아이의 대화 상대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소설은 "아이들을 위해서 자신들이 전적으로 희생하고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엄마들은 그렇게 자식들에게 버림받은 존재였다"라고 결론냅니다.
어른이 바뀌어야 한다 소설에서 가장 무책임한 말은 이거였습니다. '내 자식만 잘 되면 된다.' 이 말을 신앙처럼 가슴에 품은 부모들이 교육 시스템을 여기까지 끌고 온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첫 나무토막을 뺀 건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관계자와 교육 관계자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토막을 그만 빼라고 막기는커녕 본인들이 더 앞장서 더 많은 토막을 빼낸 건 학부모들이었습니다. 교육 시스템이 무너져도 내 자식만 잘 될 수 있다면, 그러니까 내 자식이 1등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부모가 어디 한둘인가요.
이런 어리석은 부모들을 향해 소설 속 교사 정교민은 외칩니다.
"엄마들 마음이 그렇기 때문에 '돈 많이 벌어 남부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걸 인생의 목표로 내걸고 있고, 그 고상하지 못한 말을 아이들에게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되풀이하지요.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일류 직장이나 일류 직업을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일류 대학을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정연한 논리로 아이들을 채찍질해 대는 거 아닙니까. 그러나, 그것이 가장 옳은 방법 같지만 가장 틀린 방법입니다. 그 증거가 자살 앞에 서게 된 지원이 아닙니까!" - 본문 중에서 소설이 타깃으로 삼은 독자는 교육계에 몸 담고 있는 모든 어른들과 특히 학부모입니다. 흔들리는 지금의 시스템을 되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요. 소설은 아이들을 죽이는 이 시스템의 대안으로 대안학교나 혁신학교를 들지만, 역시 가장 먼저 바뀌어야 하는 건 각각의 어른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소설은 어른들의 속물근성과 이기심, 무식함과 욕심이 어떤 식으로 아이들을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는지를 반복적으로 끈질기게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설득합니다. "아이들은 제각기 개성이 다르듯, 공부하는 능력도 다 다"르니 아이들을 그만 닦달하라고요. 닦달한다 한들, 지금의 이 시스템 안에선 대부분의 아이들은 낙오하게 될 거라고요. 당신의 아이도 낙오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에 속하게 될 거라고요.
그리고 이 시스템만이 정답은 아니라고요. 세상은 이미 변하기 시작했으니 이젠 아이들을 몰아붙이는 대신, 이해하고 인정하고 믿어주라고요. 아이들이 아이들의 개성을 맘껏 뽐내게 도와주라고요. 아이를 행복한 어른으로 키워내라고요. 무엇보다, 부모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아이가 알게 하라고요.
책에서 학생들은 부모에게 가장 듣기 싫은 말을 아래와 같이 꼽았습니다.
넌 안돼, 넌 못해.너 커서 뭐가 될래?그럴 거면 왜 태어났니?아유, 창피해.지금 어디서 뭘 하고 있어?아니, 그것밖에 못해?그 따위로 할 거면 다 집어치워! 부모에게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수고했어. 잘했어.괜찮아, 괜찮아.푹 쉬어.그 정도면 충분해.그래, 잘했어. 아주 잘했어.그래, 그렇지. 네가 맞아.아니야, 걱정 마. 아빠도 네 나이 때 그런 실수 숱하게 했어.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서, 많은 희생을 합니다. 그런데 그 희생이 불안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의 불안은 부모의 역할을 착각하게 만듭니다. 장래를 위해 아이들을 밀어붙이고 다그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진정한 부모의 역할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꽤 많이 다른지도 모릅니다. 소설엔 박노해 시인의 시 '부모로서 해줄 단 세 가지'가 실려 있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용기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부모로서 해줄 것은 단 세 가지였다.첫째는 내 아이가 자연의 대지를 딛고동무들과 마음껏 뛰놀고 맘껏 잠자고 맘껏 해보며그 속에서 고유한 자기 개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자유로운 공기 속에 놓아두는 일이다둘째는 '안 되는 건 안 된다'를 새겨주는 일이다살생을 해서는 안 되고약자를 괴롭혀서는 안 되고물자를 낭비해서는 안 되고거짓에 침묵 동조해서는 안 된다안 되는 건 안 된다!는 것을뼛속 깊이 새겨주는 일이다셋째는 평생 가는 좋은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자기 앞가림을 자기 스스로 해나가는 습관과채식 위주로 뭐든 잘 먹고 많이 걷는 몸 생활과늘 정돈된 몸가짐으로 예의를 지키는 습관과아름다움을 가려보고 감동할 줄 아는 능력과책을 읽고 일기를 쓰고 홀로 고요히 머무는 습관과우애와 환대로 많이 웃는 습관을 물려주는 일이다
[세트] 풀꽃도 꽃이다 - 전2권
조정래 지음,
해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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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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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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