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유학파 부잣집 아들, 그가 집을 잃은 이유

아내·딸과 헤어진 뒤 스스로 홈리스라 칭하는 남자... 가족과 함께하는 날이 오길

등록 2016.09.20 14:37수정 2016.09.2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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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뜬금없이 자신이 '홈리스'라며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 pixabay


세상엔 안 보이면 걱정, 보이면 골치인 사람이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쉼터를 나갔던 그를 일요일 아침, 쌀 사러가 던 길에 만났다. 몇 개월 동안 소식 없던 그는 아침부터 편의점 앞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벌겋게 충혈된 그의 눈동자는 잔뜩 취해 있음을 말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디서 무얼 했는지 묻자, 부산에 갔다 왔다고 짧게 답하고는 "너무 보고 싶었다. 잘 있었느냐"하더니, 뜬금없이 자신은 '홈리스'라면서 신세 한탄을 하기 시작했다. '홈리스', 내가 기억하기로 그 말은 그가 쉼터에 있을 때도 입에 달고 살던 단어였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날 때만 해도 그는 남부러울 것 없는 부잣집 아들이었고, 촉망받는 청년이었다. 호텔 경영을 배우며 본국에서 사업 구상을 하던 그는 사랑에 빠졌다. 연상의 한국 여자였다. 유학 중에 딸아이를 낳았고, 학업을 마친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잠비아로 돌아갔다. 귀국 후 잠비아에서의 행복한 생활은 오래 가지 않았다. 한국으로 가자는 아내의 간곡한 부탁에 그는 전혀 생각해 본 적 없는 한국행을 결심했다.

명색이 미국 유학까지 했는데, 일자리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그에게 한국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전공을 살려 호텔에 취직해 보려고 했지만, 인터뷰를 잡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다못해 영어 강사를 하려고 해도 흑인이라며 거절하는 일을 예사로 당해야 했다.

그래도 한국 생활에 적응해 보려고 최소한 운동은 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큰 키에 몸집 좋은 그가 좋아하는 운동은 농구였다. 농구공을 들고 농구 코트에 가면 신기하게도 어디서든 환영받았다. 직장을 찾을 때마다 겪었던 알듯 모를듯하던 이상한 눈빛과 좌절감을 농구 코트에서는 다 씻어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농구공을 잡고 밖으로 나도는 그를 보는 처가댁 눈빛은 마치 골치 아픈 자식을 보는 것 같았다. 장모는 그가 땀에 젖은 옷을 입고 집에 들어올 때마다 '집 나가라'는 말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하기 시작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그였지만, 장모가 무슨 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장모의 잔소리가 심해질 무렵 아내가 거들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에게 잠비아로 돌아가라고 주문했다. 그는 딸과 같이 가지 않으면 갈 수 없다고 했다. 아내와의 싸움이 잦아질수록 한국 생활은 힘들어졌다. 그는 농구 코트에서 고등학생들과 노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무력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육체노동을 해 본 적이 없는 그였지만, 어딘가에 가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아내가 별거를 요구했다. 매주 한 번씩 딸아이를 만날 수 있도록 한다는 약속을 받고 그는 집을 나왔다.

양복 차려입고 찾아왔던 그 남자는 이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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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차려입고 찾아왔던 그 남자는 이제 없다. ⓒ pixabay


한국인과 결혼한 남성인 그가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아온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지나치다 할 정도로 잘 다려진 양복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나타난 그가 머물기에 이주노동자 쉼터는 어울리지 않았다. 이용자들 스스로 청소하는 방은 먼지가 풀풀 날리기 십상이고, 정돈되지 않은 침구류와 옷장은 그가 들고 온 큰 가방을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쉼터에서 생활하겠다고 했다. 딸아이를 매주 만나려면 멀리 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밖에 나갈 때면 꼭 양복을 챙겨 입던 그가 흐트러지기 시작한 건 쉼터에 들어온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을 때였다. 그의 입에서 술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쉼터 안에서 음주와 흡연을 금한다고 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한국에 와서 배웠다는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후로 그가 양복을 입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헐렁한 반바지와 러닝 차림으로 어딘가를 갔다 올 때면 주머니엔 불룩하게 술병이 들어 있곤 했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의 주정은 비슷했다. "나는 홈리스다. 집이 없다"면서 방에서 이불을 꺼내고는 베란다에 놓은 의자나 창고에서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방에서 자라고 하면 이불만 걷어서 방으로 집어 던지는 통에 같이 생활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음주와 주정으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쉼터에서 나가야 한다고 몇 차례 구두 경고를 줬지만, 변화가 없었다. 가끔씩은 길거리에서 쓰러져 있는 그를 경찰이 데려오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경찰의 도움을 받아 알코올 중독자 치료 센터에 보냈던 게 작년이었다. 치료 경비를 대겠다는 후원자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다시 완치되었다면서 다시 나타난 것은 올해 초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는 알코올에 의지하고 있었고, 술만 취하면 딸아이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훔쳤다. 그랬던 그가 봄이 오기 전 어느 날 아무런 말도 없이 쉼터에서 사라졌다. 추위가 덜 가셨던 때라 길거리에서 무슨 일을 당하지나 않았는지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쌀을 사가지고 오는 길에 그에게 커피 한 잔을 샀다. 고맙다며 커피를 받아든 그는 비틀거리는 몸으로 쌀을 들겠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그의 호의를 웃음으로 받아넘겼다. 이 가을, 투쟁이 시작되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점심 조금 지난 시간, 한국어 수업이 진행되고 있을 때, 큰 키 때문에 멀쩡하게 있어도 건들거려 보이는 그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방 안에서 자라고 권하자, 그는 "홈리스"라는 말로 대꾸하더니 베란다 의자에 드러누웠다. 이번에는 이불을 끄집어 올 기력이 없었는지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아직은 한기를 느낄만한 때가 아니라 그냥 놔뒀지만, 기온이 조금만 떨어지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은 습관이다.

그가 잠든 모습을 찬찬히 살펴봤다. 홈리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건강을 유지하고, 살이 빠지지 않은 것으로 봐서 얼마간이었는지 모르지만, 한동안 육체노동을 했던 모양이다.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 그는 유쾌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다. 딸아이와 아내를 사랑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그를 보면 안쓰럽다. 그렇다고 알코올 중독 치료 센터에 들어가라고 강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허탈한 웃음만 짓는다.

그는 가족과 같이 살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있기를 기대하며, 그와의 투쟁이 길지 않기를 소망한다.
#홈리스 #이주노동자쉼터 #알코올 중독 #잠비아 #미국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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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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