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 전술과 함께 진주성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이었던 유등의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다.
김종신
유·무료의 경계를 나와 진주교 아래를 지나 귀빈예식장 남강변을 걸었다. 경남문화예술회관까지 사람의 물결이 이어지지만, 체온이 그리울 정도다. 진주교를 건너 시외버스 터미널 아래 남강변에서 열리는 드라마 페스티벌 현장으로 걸었다.
축제 중에는 차량 정체를 이유로 자가용 안 타기, 대중교통 이용하기를 권장한 진주시에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호응한 덕분인지 시내를 오가는 차들은 붐비지 않는다. 지나가는 시내버스에도 사람이 없다. 드라마 페스티벌 부스들이 있는 곳은 더욱 을씨년스럽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예전과 달리 진주교 아래에서 진주 남강과 유등을 구경하는 데는 돈을 받지 않는다.
유등축제는 1592년 동북아국제전쟁(임진왜란) 충무공 김시민 장군이 일본군과 싸울 때 성 밖의 지원군과 군사 신호로 풍등(風燈)을 올리고 횃불과 함께 남강에 유등을 띄운 데서 유래했다.
진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사는 내게는 가림막과 유료화가 시행된 지난해와 올해가 무척 낯설다. 유등축제를 유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처지에서도 지난해와 올해의 유등축제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왜적을 물리치기 위한 군사 전술과 함께 진주성 병사들이 성 밖의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는 통신수단이었던 유등의 의미가 퇴색된 느낌이다. 유료화와 가림막으로 멍든 진주시민에게는 불통의 축제로 전락한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