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언론학자 180여명, 박근혜에게 '감사'하다

[게릴라칼럼] 보수언론도 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들이다

등록 2016.11.22 16:15수정 2016.11.22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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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미에 있는 한국인 언론학자들이 한목소리를 냈다. '박근혜 하야'
  •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하야하라."
  • "수사당국은 대통령과 측근을 둘러싼 의혹을 남김없이 수사하고 처벌하라."
  • "야당과 여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라."
  •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본연의 사명을 수행해야 하며, 정치권은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수행하라."
'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단 사흘밖에 걸리지 않았다. 북미 지역에 흩어져 활동하는 언론학자들이 공동으로 시국성명을 하는 데 필요했던 시간 말이다.

미국과 캐나다의 면적을 합하면 남한의 200배에 달한다. 이런 지리상의 이유로, 대규모 연례 학회에 가도 서너 명 얼굴을 보기가 어렵다. 게다가 '언론학'이라는 학문의 영토 역시 북미 대륙 이상으로 넓다.

저널리즘, 미디어학, 정치 커뮤니케이션, 헬스 커뮤니케이션, 뉴미디어, 광고, 홍보, 문화연구, 대인 커뮤니케이션,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매체 경제학, 매체철학 등. 상황이 이러니, 이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을 아우를 이름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언론학자'? '커뮤니케이션학자'? '미디어·광고·홍보학자'? 게다가 그 앞에 붙일 지역명을 '재미'로 할 것인지, '북미'로 할 것인지, '미국과 캐나다'로 할 것인지에 이르자 상황은 훨씬 복잡해 졌다.

하지만 이름 따위는 문제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위태롭기 그지 없는 한국 상황이었고,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조속히 퇴진시켜야 한다는 데 모두가 동의했다. 교수들은 협업을 통해 성명서 초안을 작성하고, 끊임없이 전화와 화상회의로 대화하며 성명서 내용을 다듬고 행동 방안을 논의했다.

한 목소리로 모인 180여명의 미국·캐나다의 한국 언론학자

 지난 21일 청와대 정문(일명 11문) 앞에서 경찰 근무자가 근무를 서고 있다.
지난 21일 청와대 정문(일명 11문) 앞에서 경찰 근무자가 근무를 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렇게 해서 서명을 받기 시작하자, 첫 서명에서 151명이 한 목소리로 '박근혜 하야'를 요구했다. 1차 성명을 마감한 뒤에도 서명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나 22일 현재 180명을 넘어섰다. 그들은 이 과정에서 연대의 뿌듯함을 재발견했다.


모든 것이 자발적 참여를 통해 이뤄졌다. 누군가 온라인 서명지를 만들고, 누군가 속속 들어오는 서명자 정보를 엑셀파일로 정리해 공유하고, 누구는 이 정보들을 취합해 보도자료를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무수히 많은 전화가 오갔다. 서로 격려하고, 서로 감사하고, 서로 용기를 북돋워줬다.

이처럼 멀리 떨어져 사는 북미 언론학자들을 하나로 묶어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현 사태의 주범인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감사패라도 줘야 할까? 하지만 그는 자신이 받아야 할 검찰 조사는 거부하면서, 검찰에게 다른 비리 수사를 지시하는 초현실적인 사태를 연출하고 있다.


스스로 혐의자면서 "철저히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말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지닌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언론학자들은 개인과 사회의 소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에서 한 가지 사실을 읽어낸다. 그것은 그가 "나라를 이끌 최소한의 판단 능력도, 법의식도, 윤리적 양심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그들은 박 대통령이 "이미 오래전 국가 통수권자로서의 자격을 잃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2014년 세월호 참사 무대응, 2015년 위헌적 국정교과서와 한일 위안부 합의의 당사자이며 주역이었다. 법·정의·언론의 감시가 살아있는 나라였다면, 그는 오래 전 청와대에서 쫓겨나 법의 심판을 받았을 것이다. 북미 언론학자들이 한국 언론을 현 부패 세력의 공모자라고 비판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한국 언론은 국정농단의 주범'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 언론자유 지수 결과. 한국은 70위를 기록했다.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6 언론자유 지수 결과. 한국은 70위를 기록했다. 국경없는기자회

그들은 "현재 많은 매체가 '비선실세' 의혹을 파헤치고 있지만, 모든 언론이 재대로된 비판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보수언론이 얼마 전까지도 현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기에 바빴기 때문이다. 언론은 대선 후보를 철저히 검증하고, 당선된 후에는 '감시견'으로서 권력을 향해 날선 비판을 가해야 하지만, 이들은 '형광등 100개를 켠 아우라' '박근혜 패션 프로젝트' '김연아와 박근혜 닮은 점 많아 화제' 같은 보도를 일삼았다.

비록 막판에 와서 박근혜 정부의 흠을 열심히 들춰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수언론의 관심사는 자신들을 챙겨줄 새 권력을 창출하는 데 있다. 늘 그래왔듯, 새 정부가 탄생하면 열심히 꼬리 치며 밥그릇을 챙기다가 권력 교체기가 되면 이를 드러내며 짖기 시작할 것이다. 제 역할 못하는 감시견에게는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려줄 필요가 있다. 구독을 끊고 채널을 돌리는 것 만큼 좋은 훈련방법은 없다.

서명에 나선 학자들은 날이 갈수록 악화하는 한국의 언론상황도 지적했다. 최근 '국경없는 기자회(RSF)'가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를 180개 국가 가운데 70위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평가대상이 된 이래 최하위 성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망가졌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로 이 기간에 언론사들은 방송사 재인허가를 따내고, 청와대와 국회로 기자와 앵커를 대거 입성시켰다.

신뢰할 수 없는 자들로 말하면, 검찰도 빼놓을 수 없다. 한두 달 전까지도 청와대에서 '비선실세' 의혹이 터질 때마다 부랴부랴 의혹 제기자의 입을 틀어막고, 가두고, 심지어 죽음으로 내몬 자들이 한국의 검찰이기 때문이다. 검찰이 대통령을  피의자로 입건했다고 사회가 떠들썩하지만, 대통령에게 적용된 공모 혐의는 재단 모금과 관련한 강요죄와 공무상 비밀누설죄 등 정도다.

게다가 검찰은 대통령이 조사를 거부하자 얌전히 있었고, '강제수사' 카드는 주머니 속에 넣어놓고 만지작거리고만 있다. 국민들이 열 걸음 나아가면 눈치 보며 반 걸음 내딛었다가 슬그머니 제자리로 돌아가는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열걸음 나아가게 만들려면 국민들이 수백 걸음을 걸어야 한다.  

임기 못 지키면 '나쁜 선례' 남겨?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신임 대사 신임장 수여식에서 기념촬영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대통령이 물러나면 '사회적 혼란'이 온다고 한다. 대통령이 임기를 못 마치는 게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도 한다.

위기에 몰린 권력이 '사회 혼란'을 말하는 것은 정치선전의 고전적 레퍼토리다. 심지어 나치 정권이 국민들을 극악무도한 범죄 속으로 끌어들일 때 동원한 수사학도 '사회 혼란'이었다. 범법 행위을 저지른 권력을 인정한다는 것은 그 행위를 묵인함으로써 동조자가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자. 무자격자에게 나라를 계속 맡기는 게 위험한가, 그를 쫓아내는 게 위험한가? 범법자가 원하는 일을 계속 하도록 만드는 게 나쁜 선례인가,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게 나쁜 선례인가?

[전문] 재미 언론학자 시국 성명서
우리들은 한국을 바라보며 참담한 심정을 금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위임 받은 권력을 측근 소수와 공유하며 전횡을 일삼아 온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민주국가'라고 믿어왔던 조국의 암담한 모습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혐의를 부인하며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측근에 대한 혐의가 불거질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를 방해하며 비호해왔다는 점에서, 대통령은 소위 '비선실세'들이 저지른 범죄의 공모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문제가 된 재단의 출연금을 늘리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기업 총수들을 만나 수백 억의 돈을 요구했다는 다수의 증언이 나왔습니다. 그런 점에서, '대통령이 주범이고 최순실 일행이 공범'이라는 지적은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은 연설문은 물론, 외교와 안보 등 민감한 정보가 담긴 국정 자료를 유출한 혐의도 받고 있습니다. 이는 공무상 비밀누설에 해당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대통령 연설은 '국민과의 소통'이라는 통치행위의 가장 중요한 형태입니다. 이것을 사적 통로로 유출했다는 것은 민주적 사회운영 원리에 대한 중대한 위반입니다.

그 결과 대통령은 두 번이나 대국민 사과를 했습니다. 그는 "이 모든 사태는 모두 저의 잘못"이라고 인정했고, "모든 책임을 질 각오가 돼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더불어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도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과 이후 대통령이 취한 첫 조치는 검찰의 조사통보에 불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엉뚱하게도 부산의 '엘시티 비리사건'을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법무부 장관에게 "철저히 수사하고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규명해 연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라"고 명했습니다. 그가 이 지시를 내린 날은, 검찰이 대통령을 조사하기로 통보한 날이었습니다. 조사를 받고 있어야 할 사람이 조사를 지시하는 기막힌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 모든 사태는 대통령에 관해 중요한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이끌 최소한의 판단 능력도, 법의식도, 윤리적 양심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그는 이미 오래 전에 국가 통수권자로서의 자격을 잃었습니다.

박대통령이 취임한 2013년에 국가정보원이 대선에 개입해 대대적 여론조작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2014년에 300명 넘는 국민들 목숨이 물 속에서 꺼져가고 있을 때 대통령이 자취를 감추었으며, 2015년에는 위헌적 역사교과서 국정화, 노동개혁, 굴욕적인 한일 위안부 합의 등을 강행했습니다. 그런 뒤 올해 터진 것이 권력 사유화와 전횡 사건입니다. 하나하나가 탄핵 사유에 해당할 심각한 실정과 범죄 행위입니다.

우리들은 언론학자로서, 날로 악화하는 한국의 암울한 언론 상황 또한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016년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를 180개 국가 가운데 70위로 낮춰 평가했습니다. 이는 앞의 언론자유 감시 단체가 한국을 평가하기 시작한 이래 최하위 성적으로, 민주화 이후 우리의 언론상황이 최악에 도달했음을 말해줍니다.

한국의 언론 자유가 바닥으로 추락한 것은 우연도, 놀랄 일도 아닙니다. 최근 박근혜 정부가 어떻게 언론을 길들여 왔는지 보여주는 문건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이 나서서 비판적 언론에 대해서 제소, 고소와 고발,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불이익을 주고, 호의적 언론에는 포상을 주도록 지시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현재 많은 언론 매체가 '비선실세' 의혹을 파헤치고 있지만, 모든 언론이 제대로 된 비판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수언론들은 얼마 전 까지도 현 정부를 무비판적으로 칭찬하고 허물을 덮어주기 급급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이들이 현 정부의 유효기간이 끝나가자, 자신들에게 이익이 될 새 권력을 창출하기 위한 작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을 검증하고 비판해야하는 언론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수의 한국 언론은 박근혜 정부의 공모자들입니다.

현재 국민들은 수백 만 개의 촛불을 든 채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은 '국정 공백'이나 '사회 혼란'이라는 말로 여론을 호도하려고 하지만, 무자격자에게 나라를 맡기는 것만큼 혼란스럽고 위험한 일은 없습니다.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것이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대통령이 임기를 채우게 내버려두는 것만큼 나쁜 선례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모든 직무에서 손을 떼고 국민들이 요구하는 절차에 따라 하야하라.

하나, 수사당국은 대통령과 측근을 둘러싼 의혹을 남김없이 수사하고 처벌하라.

하나, 야당과 여당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들의 대통령 하야 요구를 성실히 이행하라.

하나,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는 본연의 사명을 수행해야 하며, 정치권은 공영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제도적 정비를 수행하라.

재미 언론학자들은 한국의 상황을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비판하고 전 세계에 고발함으로써 한국에 정의를 실현하는 데 동참할 것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권력에 맞서 싸워 온 대한 민국 국민이 한없이 자랑스럽습니다.

현재 서명인 180인 명단 (가나다순 / 한글성명, 영문대학소속 / 2016.11.21일 기준)

강인규(Penn State University, Behrend College), 강지연 (University of Iowa), 강진애(East Carolina University), 고혜승(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곽노진(University of Michigan), 곽영선 (SUNY at Buffalo), 권경희(Arizona State University), 기연정 (University of Alabama), 김 영(Marquette University), 김경석 (Towson University), 김광석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김기태 (University of Buffalo), 김낙호(Penn State University Harrisburg), 김병욱 (University of Iowa), 김보경(Rowan University), 김보형(University of Massachusetts Amherst), 김성수 (University of Georgia), 김소정(High Point University), 김수진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김수진 (Louisiana State University), 김수형 (Temple University), 김승수 (University of Colorado-Boulder), 김여진(Central Connecticut State University), 김연수(James Madison University), 김영수(University of Kentucky), 김영지(MIT), 김원경 (Michigan State University), 김유승(DePaul University), 김유정(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 김은실 (University of Florida), 김은영(University of Alabama), 김은지(University of Pennsylvania), 김정아(University of North Florida), 김주영 (University of Georgia), 김주옥(Texas A&M International University), 김지수(University of Minnesota-Twin Cities), 김지영 (University of Hawaii), 김지원(Syracuse University), 김지원(Texas A&M International University), 김진숙(Michigan State University), 김진숙(The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김태민 (Fayetteville State University), 김태현 (California State Un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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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전국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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