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은 왜 탄핵과 함께 개헌론을 꺼내 들었나

[주장] 개헌론은 탄핵 정국 물타기?

등록 2016.11.27 15:37수정 2016.11.2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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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야3당, 박 대통령 탄핵안 논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현 시국에 대한 야권공조 논의를 위해 야3당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야3당, 박 대통령 탄핵안 논의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국민의당 박지원,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가 24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 현 시국에 대한 야권공조 논의를 위해 야3당 원내대표 회동을 하고 있다. ⓒ 남소연


'탄핵 열차'가 속도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르면 다음 달 2일, 늦어도 9일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표결되도록 하겠다는 게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탄핵 로드맵'이다. 대선불출마 선언을 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한 만큼, 탄핵안 통과(200석)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40명 이상이 탄핵에 찬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25일 의총에서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돌연 내달 2일 혹은 9일 탄핵안 본회의 처리에 반대하고 나섰지만 속도를 내는 탄핵 열차를 감속시키기는 힘들어 보인다. 국정공백 장기화에 따른 위기 의식이 나라 전체로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1월 31일 임기가 종료되는 박한철 헌재소장과 3월 13일이 임기만료인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기 전에 헌재의 탄핵심판까지 '가능하도록' 하려면, 속전속결은 필연적이다. 최소 7명의 재판관은 있어야 탄핵심리가 가능하고, 그중 6명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인용'되기 때문에, 퇴임으로 인해 결원이 생기면 그만큼 탄핵 성사 가능성은 불확실해지고 복잡해진다.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빠르면 일주일 이내, 늦어도 2주일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된다. 또한 헌재가 박한철 소장 체제에서 탄핵 심판을 신속히 진행해 '인용' 결정을 내릴 경우, 내년 1월 31일 이전에 박근혜의 대통령직 '파면'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대통령이 탄핵으로 궐위가 되면, 60일 이내에 대통령 선거를 하게 되고 이 경우 빠르면 3월말, 임기 5년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다. 탄핵 열차가 거침 없이 질주할 경우에 예상되는 시나리오이며 광장의 촛불 민심이 가장 바라는 '답안'이 그럴 것이다는 얘기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이 63일 만에 마무리된 것을 고려할 때, 또 검찰의 수사발표로 최순실, 안종범, 정호성 3인의 공소장에 대통령의 범죄혐의가 뚜렷이 적시된 사실을 감안할 때, 그리고 현직 대통령 탄핵심판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대하는 재판관으로서의 명예욕과 책임감을 무시할 수 없는 것도 1월 31일 이전 탄핵심판 종결을 점치게 하는 사유다. 일정이 늦춰져 내년 3월, 늦어도 5월이면 탄핵심판이 종결되고 8월이면 새 대통령이 들어선 정부가 출범하게 된다. 

이런 '순방향' 탄핵 열차가 궤도이탈을 하거나 멈춰 설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국회든 헌법재판소든, 탄핵안에 반대하거나 기각결정에 동의하는 일이란 자신의 정치생명, 직업생명은 물론 조직의 운명까지 걸어야 할 정도의 '각오'가 없으면 하기 어려운 행위란 점에서 일어나기 어려운 상상이다. 두 재판관의 퇴임 이후에도 결론이 나지 않아 선고가 180일을 꽉 채우다 탄핵안이 기각되거나, 7명은 돼야 심리가 가능한 상태에서 한 명이 사퇴해서 헌재 심리 자체가 열리지 않아 탄핵안이 폐기되는 건 최악의 상상이다. 특히 서기석, 조용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임명한 사람들이기에 불안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이번 박근혜 탄핵 사건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애국과 비애국의 문제로 보아야 하며 헌법재판관들은 애국자들이니 재판관들을 믿고" 탄핵안을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보수일색의 재판관으로 구성되었다고 하나 헌법재판소도 광장의 촛불민심과 5% 대통령 지지 실상, 무엇보다 검찰 공소장의 '헌법과 법률에 반하는 중대한 위법행위'를 외면한 결정을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탄핵인용은 낙관적이라는 분석이다.

탄핵, 그 이후


a  26일 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에서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26일 밤 박근혜 대통령 퇴진촉구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서울시 종로구 자하문로에서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탄핵정국을 '비교적' 희망적으로 전망할 수 있는 것은 헌재의 '탄핵안 인용 결정', 딱 거기까지다. 사실 박근혜를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는 것만으로도 최악의 경우는 벗어났다고 안도할 만하다. 어떤 상황이 되었든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있는 지금,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는 것이 광장에서 촛불을 들게 했고, 퇴진을 외치게 했고, 그것이 곧 구체제와 결별하는 것이라 믿고 있다. 동시에 박근혜의 지지도를 5% 이내로 묶어 두고, 새누리당의 지지율을 사정없이 끌어내리며, '박근혜와 그의 몸종들'을 정치적 식물상태로 만드는 것이 새로운 시대로의 준비이자 희망을 여는 길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헌재의 탄핵 결정과 동시에 대선에 들어가 '두 달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데도 박근혜 탄핵 이후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불안'의 싹은 그로부터 비집고 나온다. 광장의 민심을 받아 대안을 만들고 희망을 열어 줄 것으로 보이는 확실한 대선주자와 '신뢰할만한' 정치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당장의 정당지지율이나 대선주자 지지율을 보면,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군들이 약진하고 있고, 수치상으로만 보면 '현재로선'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1위를 달리는 문재인 후보는 20% 안팎에서 일 년 내내 지지율이 묶여 있다. 거기다 현재 야당의 지지율 상승과 야권 주자들의 지지율이란 것이, 박근혜 게이트와 새누리당의 몰락으로 인해 얻어낸 반사이익의 성격이 강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보면, 언제든지 판이 뒤집힐 수 있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정치란 것이 종종 '내가 더 잘해서 선택되기보다 상대방이 더 못해서 선택받은 결과'임을 고려하면 야당의 헛발질이나 '설화', 혹은 대안부재로 언제든지 지지율이 뒤집힐 질 수 있다. 따라서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수백만의 시민봉기와 대통령 탄핵을 거쳐 탄생할 정부가 광장의 촛불 민심을 '배신'하지 않고 명실상부한 '혁명정부'가 되도록 하기 위해선 촛불을 든 시민의 정치의식의 심연으로 들어가, 대한민국이 뭐가 문제인지, 촛불시민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지를 치열하게 파고들지 않으면 안 된다. 정권교체를 넘어, 새로운 대한민국을 고민하는 것은 시민의 분노가 폭발하고, 열망이 분출하는 지금이 적기다. 탄핵정국을 넘어 대선 이슈를 미리 점검해볼 필요성이 있는 이유다.

김무성은 왜 다시 개헌을 꺼냈나

a 김무성 "대선 출마 꿈 접고, 대통령 탄핵 앞장서겠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국민 배신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무성 "대선 출마 꿈 접고, 대통령 탄핵 앞장서겠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 불출마를 선언한 뒤 "국민 배신한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앞장 설 것"이라고 밝혔다. ⓒ 남소연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대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박근혜 탄핵에 앞장서겠다고 했을 때부터 불안의 싹은 시작됐다. 촛불민심을 김무성이 수확해 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박근혜 정권 탄생의 주역이면서도 박근혜에 속았다는 '배신감'을 앞세워 촛불민심에 편승해, 등을 돌린 보수세력을 최대한 재결집시키겠다는 계산이다.

그에겐 한때 여론조사 1위의 '무게감'과 현재 보수세력이 느끼는 위기감을 잘 읽어내는 '현실감각', 그리고 고장난 한국 정치시스템의 근원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보고, 듣고, 체험해 온 '경륜'이 있다. 또한 '종북 좌파 척결'을 입에 달고 다닐 정도로 극도의 '진보 혐오 의식'이 내장돼 있다. 그에게 대선불출마는 보수세력을 재건해서 "진보 좌파 정권' 탄생을 막기 위한" 승부수다. 그의 불출마 선언이 오히려 야권의 정권교체에 적신호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무성이 보기에 탄핵은 기정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이 안 되면 국회가 문을 닫아야 한다"고까지 할 정도다. 하여 그의 머릿속은 벌써 정계개편을 통한 대선 판짜기를 향하고 있다. 개헌을 고리로 한 보수 정권 재창출이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선 반기문, 안철수, 김종인 등 누구와도 연대하겠다고 했다. 민심은 박근혜 탄핵에 꽂혀 있는데 그의 시선은 한 발 더 나가고 있는 것이다.

내년 대선의 최대 이슈가 '개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건 박근혜 대통령이 한몫했다. 박근혜 자신이 '대통령제'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내렸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헌은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음모나 술수로 비쳐 민심을 파고들지 못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파탄'이 대통령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켜 치명타를 안긴 만큼, 민심도 개헌에 공감하는 쪽으로 쏠릴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는 상황이다.

박근혜 게이트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논쟁이 일고, 박근혜 게이트와 같은 불행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방책을 모색하는 데 있어 '권력구조 문제'가 제기되면 자연스럽게 개헌이 핵심 대선 이슈로 부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통령제가 노출한 치명적 결함이 너무 명백해서 개헌의도가 불순하다고 치부하며 무조건 개헌론을 덮어 누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김무성의 '정계개편 구상'을 추정해 보면 반기문, 안철수를 포함해, 개헌을 지지하는 여야의 정치세력을 규합해 헌법을 바꾸고 새 헌법에 따라 새 정부를 출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를 주장했던 구상에 비춰보면, 대통령은 직선으로 선출하되 국가원수로서 국방, 외교 등 외치만 담당하게 하고, 내치는 의회에서 선출되는 수상(총리)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실 헌법을 고치는 것도 간단하다. 대통령을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제66조에서 행정수반을 떼어내 수상에게 부여하고 헌법 제86조의 총리선출권을 국회에 부여하고 대통령은 임명만 하는 것으로 개정한다. 총리에게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은 형식적인 임명권만 갖는다. 의회의 내각불신임권과 정부의 의회해산권을 추가하는 것 정도가 새로 들어갈 부분이다. 이번 탄핵정국에서 말한 '책임총리제'에 가까워서 국민 거부감도 적다. 야당이 '책임총리'를 강하게 요구했던 만큼 거부할 명분도 없다. 개헌 이슈를 먼저 꺼내 든 쪽이 대선의 이슈 선점권을 갖게 될 가능성이 큰 이유다.

개헌은 '블랙홀' 혹은 '물타기'?

a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22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열린 고 김영삼 대통령 서거 1주기 추모식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김무성의 개헌론 반대편에 문재인 전 대표가 있다. 문 전 대표는 김무성의 개헌발언이 탄핵정국을 물타기 하고 책임론에서 벗어나 정권을 연장하기 위한 술수로 보고 개헌론을 주저앉히려 하는 대표주자다. 그동안 4년 중임개헌론자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엔 "헌법이 무슨 죄냐, 헌법도 피해자"라고 해서 사실상 반개헌론자로 돌아선 상황이다. 헌법을 준수하지 않은 사람이 문제라는 논리로 '호헌'을 주장한다. 개헌을 할 경우 대통령 임기를 단축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현재의 지지율에 비춰 당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으로선 개헌에 부정적일 밖에 없는 것도 한몫한다.

탄핵과 특검, 국정조사로 밝혀야 할 것이 산적한 상황에서 개헌론은 자칫 박근혜 게이트에 대한 관심을 희석시키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 있어 차기 정부에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도 동원된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다음 네 가지 반론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5년 마다 되풀이되는 역대 대통령의 비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건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노 전 대통령은 헌정사상 가장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그의 비극은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노무현 개인의 문제인가? 검찰권력의 문제인가? 이명박의 정치보복이 문제인가? 가족과 측근의 문제인가? 헌법상 막강한 권력이 부여된 대통령제가 초래한 비극은 아닌가?

둘째, 헌법은 좋은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를 상정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쁜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 그 폐해가 가장 적도록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주기적 선거를 통하여 권력이 교체될 수 있는 정치체제라고 할 때 왜 헌법을 무시하고 유린하는 나쁜 정권이 들어섰을 때는 감안하지 않는가. 특히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 반헌법적 행위를 할 경우, 이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헌법 내부의 규정으로 이런 행위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좋은 장치는 없는가? 만약 있다면 헌법개정은 필연적이 아닌가?

셋째, 2~3%의 지지율 차이로 승자가 모든 것을 가져가고 패자는 전부를 잃게 돼, 패자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권리와 이익이 정부 정책에 전혀 혹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 승자독식의 대통령제가 과연 최선의 정치제도일까? 다른 대안은 없는가? 최대 50% 안팎(양자구도), 혹은 그보다 훨씬 적은 지지율(3자구도)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권력을 잡는 것으로 광장의 촛불민심이 고스란히 실현되는 것일까?

넷째, 개헌은 탄핵종료 이후의 대선국면에서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출발하는 것이고, 특검과 국정조사를 통해 박근혜 게이트의 진상규명을 하고 공범자, 부역자를 처벌하는 절차와는 별개라는 반론이다. 오히려 반개헌론이 정략적이라는 것이다. 개헌이 되면 대통령 권력을 줄여야 하고 국회의원 선거주기와 맞추기 위해 임기를 단축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당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헌법수호'를 들고나온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대통령이 대선국면에서 개헌을 공약했지만 막상 대통령이 된 뒤에는 '임기말'에나 개헌을 꺼냈고 차기 대선주자들이 다시 공약을 하지만 유찰되는 일이 반복되는 형편이다.

지금의 우리 대통령제 아래에서는 좋은 대통령이 선출되어 헌법을 성실하게 준수한다 하더라도, 그 뒤에는 크게 먹든 적게 먹든 '그들만의 비선실세 최순실'이 있기 마련이다. 선출된 권력이 오랫동안 맺어온 사적 인연에 권력의 떡고물을 조금만 살짝 풀어 놓아도, 그의 주변에는 엄청난 '파리떼'가 몰려든다. 하물며 최순실은 대통령 뒤에서 대통령을 배후 조종하며 대통령 권력의 전권을 넘겨받아 국정을 농단했다. 최순실이 보유한 권력의 크기를 확인한 대기업과 그의 주변 사람들은 최순실 앞에서 일렬로 줄을 서서 돈을 갖다 바쳤다.

막강한 대통령 권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언제든지 이런 일은 발생할 수 있다는 데 헌법적 결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범인을 때려잡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고, 그런 범죄자가 왜 발생했는지에 소홀하면, 제2, 제3의 최순실은 또 나오기 마련이다. 박근혜가 마침내 '대통령제'에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주장이 촛불민심에 와 닿을 여지가 크다고 보는 이유다.

a 촛불! 바람불어도 꺼지지 않아!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주고받고 있다.

촛불! 바람불어도 꺼지지 않아!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시민들이 촛불을 주고받고 있다. ⓒ 이정민


헌법을 개정하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가. 개헌이 어떻게 촛불민심이 원하는 바에 답을 줄 것이라고 할 수 있는가. 수백만의 시민봉기로 일궈낸 '혁명정부'가 왜 꼭 개정된 헌법에 따라 세워져야 하는가? 그 첫 번째 답은 나쁜 대통령이 선출되었을 때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 두 번째는 승자독식이 아니라 득표율만큼 최대한 정부에 참여하는 연립정부를 제도화시켜야 할 필요성이다. 셋째는 정부가 여론을 존중하고 민심의 변화에 민감하게 부응하도록 함으로써 정부와 국민의 요구를 긴밀히 연결시키는 것이다.

넷째는 급격한 시대변화와 극도의 국가혐오 현상으로 국민의 기본권이 대폭 확장되어야 할 필요성이다. 다섯째는 정치를 의회중심의 토론문화를 활성화함으로써 첨예한 사회적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는 심의 민주주의를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섯째는 국민이 명실상부 이 나라의 주인이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확실한 건 지금의 우리 대통령제 헌법 하에서는 이런 요구조건을 달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김무성 전 대표는 진보 좌파 세력의 집권을 막고 보수정권 재창출을 목표로 내걸었다. 개헌을 고리로 친문과 친박세력을 제외한 모든 정치세력과의 연합을 통해 외연이 확장된 보수정권을 세우겠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이런 세력들의 연립정권으로는 한국 사회가 당면한 극심한 사회적 불평등과 대기업재벌 중심의 경제체제, 파탄상태의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따라서 이에 맞서 진보좌파는 물론, 건전한 중도보수세력까지 아우르는 연립정권을 수립하여 우리 사회를 하위 90%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 내는 정치적 동력을 확보하는 것이 촛불민심을 '헌법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보수의 새판짜기에 맞서 개헌싸움을 피해서는 안 된다. 지금과 같은 깨지기 쉬운 일시적인 야권공조가 아닌 상시적인 연립정권으로 공생과 공존의 정치를 추구하는 것을 헌법적으로 제도화시키는 개헌전(改憲戰)에서 이기는 것이 박근혜 게이트를 넘어, 헬조선을 걷어치우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는 혁명정부의 시작이 되리라 믿는다.

#탄핵 #개헌 #촛불민심 #박근혜게이트 #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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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헌법 연구로 고려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요신문 기자, 고려대 평화와 민주주의 연구소 연구교수, 경상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를 지냈으며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서 '갈상돈 박사의 뉴스브리핑'을 담당하기도 했다. 현재 사단법인 지방혁신연구원 이사장으로 있으면서 시사평론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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