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 쏟아져 나온 청소년... 이제 박근혜의 문제가 아니다

[게릴라칼럼] 232만 촛불 광장 수놓은 청소년·학생들의 목소리

등록 2016.12.04 20:52수정 2016.12.0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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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저녁 광화문을 행진 중인 '박근혜 하야 전국 청소년 비상행동' 학생들. ⓒ 하성태


3일 오후, 청와대 앞은 성지였다. 앞선 2일 법원이 청와대 인근 100m 앞까지 행진과 집회를 허용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제6차 범국민행동 사전 집회의 일환으로 세월호 유가족들이 앞장서 청와대 앞을 점령했고, 분노한 시민들이 뒤따랐다.

청와대가 직접 보이는 청와대 사랑채 인근까지 진출한 시민들. 경찰들이 막아선 건 당연지사다. 경찰은 '평화로운 집회 성숙한 시민의식!'이란 문장이 쓰인 플래카드까지 내걸었다. 2년이 넘어서 겨우 청와대 인근까지 당도할 수 있었던 세월호 유족들은 오열했다.

그렇게, 세월호 참사 당일 벌어진 '대통령의 7시간'이 이번 국정농단 사태를 통해 드러난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무능과 직무유기로 드러나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한숨과 눈물, 분노는 더 짙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시각, '세월호 세대'라고 부를 만한 학생들도 광장에 나섰다.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플래카드는 필수였다.

대표적으로, '박근혜 하야 전국 청소년 비상행동'이 이날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제4차 '전국 청소년 시국대회'를 열었다. 수백 명의 학생이 동참했다. '중고생 혁명'도 이날 오후 2시 대한문 앞에서 시국선언과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주제가도 개사해 불렀다.

이날 청소년들은 광화문광장부터 청와대 앞까지 종횡무진이었다. 선두에 플래카드를 들고, 앳된 목소리로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외치며 거리 곳곳을 누비는 이 학생들에게 어른들은, 시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이 학생들의 "배후"를 의심했다. 하지만, 거리에서 직접 목격한 학생들은 최소한 '박사모'나 어버이연합 집회보다 질서정연했고, 논리적이었으며, 심지어 누구의 의심처럼 돈을 받지도 않아 보였다. 오후 11시 이후 경복궁역 앞에서 정리 집회를 갖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집으로 향하는 학생들은, 그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동생, 조카, 후배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누가, 이들을 한 달 넘게 광장으로 부르고, 촛불을 들게 하는가.  

청소년들이, 학생들이 원하는 사람답게 살 세상 


지난달 5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중고생들이 "박근혜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 권우성


"저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이야기하는 것이 싫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하야 뒤가 더 중요하다 이야기하는 것이 싫습니다. 제 삶의 문제가 박근혜 대통령 한 명의 책임입니까? 최순실 한 명의 잘못입니까? 저에게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미친 것은 박근혜, 최순실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부모님, 반장, 친구들, 선생님, 회사 사장,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박근혜, 최순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내 안의 박근혜를 발견하고 내 옆의 최순실에 분노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돈이나 자신의 소유물로 보지 않고 사람을 돈과 이익으로 환산하지 않고 독립적인 존재로 보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경쟁 속에서 남을 밟고 올라서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고 사람답게 살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자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달 12일 경남 진주의 촛불집회 연단에 선 한 학생이 발언한 내용 중 일부다. 중고생들이, 대학생들이 더 잘 안다. 이 사회의 불평등한 구조와 제 이익을 위해 그 구조에 복무하고 있는 어른들의 작태를. 이 시대의 아이들, 학생들이야말로 원하지도 않은 '경쟁'의 정글 속에 마지못해 내던져진, 그 정글에서 숨만 쉬고 있는 존재들 아니던가. 

"그들(부모님, 반장, 친구들, 선생님, 회사 사장, 그리고 매일 마주하는 사람들)은 박근혜, 최순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사람답게 행동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젊은, 어린 세대가 어른들에게 전하는 따가운 일침. 더욱이, 그 학생들은 최소한 '공부'를 하고 있는 상태다. 도덕과 윤리는 물론이요, 저 진주 지역 학생의 말마따나 "사람답게 행동" 하라는 교육을 받고 있는 중이다. 그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다 못해 이제는 '국정 역사교과서'를 가르치겠다고, 자기 아버지들의 친일과 독재, 반인권 역사를 구태여 미화시키겠다고 나선 이들이 누구인가. 

학생들이 광화문광장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어 간다. 수능이 끝난 고3과 수험생들까지 동참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세간에 알리는 촉매제 역할을 했던 이화여대 학생들의 기나긴 투쟁은 물론 얼마 전 서울 용산구 청파로에 위치한 학교 본관부터 광화문광장까지 수 백여 명의 학생들이 행진 시위를 벌였던 숙명여대 학생들까지, 대학생들은 시국선언과 동맹 휴업 등으로 광장의 촛불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 역시 정유라의 부정입학보다 "사람답게 행동" 하고픈 의지가 먼저일 것이다. 그렇게 20대 학생들은 물론 '세월호 세대'인 10대 학생들까지 촛불에 동참하고, 젊은 부모들과 함께 광장을 찾은 아기들이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유행어처럼 내뱉는다. 232만 촛불이 그렇게 영글어 가고 있다.

"(청소년들의) 촛불도 100만이 되면 횃불이 된다"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열린 '고등학교 3학년 연합' 시국선언에서 한 청소년이 시국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 ⓒ 박장식


"OECD 국가 중 투표권이 만 19세 이상에만 부여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정치권은 개헌 운운하기 전에 촛불 든 청소년에게 투표권을 주도록 법을 개정하라! 정치권이 회피한다면, 촛불 든 청소년들은 스스로 투표권을 쟁취해야 한다."

3일 서울대 조국 교수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시위에 참여한 조 교수 역시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눈여겨봤으리라. 18세 이상에게 투표권을 부여한 국가는 전 세계 90% 이상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 등 대다수 국가가 포함됐고, 만20세 기준이었던 일본도 최근 70년 만에 선거법을 개정해 선거 가능 연령을 만 18세로 낮췄다. 학생들에게 투표권을 주자는 의견이 선관위나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게 투표권은 청소년과 학생들의 인권이나 권리를 개선해 나가는 데 있어 상징적인 조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입시위주의 교육 때문에 국가나 사회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가르쳐주지 않은 것에 대해 실천한 것에 대해 상도 주고, 칭찬을 아낌없이 해도 모자랄 판에 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어른들의 생각 때문에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줄어들고 있다. 오히려 이런 사회 참여에 대한 교육이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젊은 세대의 투표율이 올라간다."

지난달 13일 시국선언을 발표한 '고등학교 3학년 연합' 학생의 인터뷰 중 일부다. 투표권이나 투표율도 그렇지만, 필히 수반되어야 할 것은 결국 이 사회의 변혁일 것이다. 그 어떤 세대보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습득하는 정보량도 많은 학생들이 그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들이 이 시대의 어른들에게 "사람답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촛불을 들고 광장을 행진하는 학생들의, 청소년들의 눈빛이 이를 증명한다.

언젠가, "경쟁주의에 내몰린 아이들이 어른들을 공격할 것"이란 내용의 칼럼을 쓴 바 있다. 어제 '232만 촛불'이 모인 광장 무대에 선 한 사회자는 "촛불이 100만이 되면 횃불이 된다"고 했다. 어제 그 횃불이 청와대 앞까지 진출했다.

지금이야말로 '박근혜 퇴진' 이후 한국사회의 변혁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논의할 때다.  그 횃불이, 지금의 청소년들과 학생들이 든 촛불과 횃불이 박 대통령이 아닌 또 다른 어른들에게 향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어제 타오른 232만 촛불의 또 다른 중요 메시지다.
#232만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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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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