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2년 전 탄핵당한 폭군, 박근혜와 참 비슷하다

12월 9일에 몽골로 끌려간 충혜왕, 그도 '복위'를 꿈꿨으나...

등록 2016.12.10 20:53수정 2016.12.1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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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를 향한 국민들의 압박. ⓒ 김종성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과 구속을 요구하는 국민의 함성이 국회의사당까지 흔들었다. 여의도 위의 국회는 이 파고를 견디지 못했다. 결국 12월 9일 오후, 국회는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탄핵심판 신청)를 의결했다. 이로써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다루게 되고, 대통령은 직무정지 상태에 빠졌다.

정확히 673년 전 12월 9일, 그날의 고려 충혜왕도 그랬다. 그도 탄핵소추와 흡사한 상황에 빠졌다. 공교롭게도 그 날짜 역시 12월 9일이다. <고려사> 충혜왕 편(정식 표현은 '충혜왕 세가')에 기록된 날짜는 계미년 11월 22일(갑신일)이지만, 이것은 음력이므로 양력으로 환산하면 1343년 12월 9일이다. 673년 시차를 두고 고려왕과 대한민국 대통령이 비슷한 일을 당한 것이다.

MBC 드라마 <기황후>에서 몽골 기황후(하지원 분)의 연인으로 등장한 충혜왕은, 드라마와 달리 실제로는 문제가 상당히 많은 왕이었다. 귀족들을 견제하고 부유층에 대한 증세를 관철시켰다는 점에서는 괜찮은 왕이지만, 그것을 무색하게 하고도 남을 만한 잘못들을 저지른 사람이다.

충혜왕은 신하의 아내들과 아버지의 후궁에게까지 성폭행을 일삼았다. 그의 성적 비행은 일일이 헤아릴 수 없다. 거기다가 백성들의 재산까지 함부로 침해했다. 연회장을 만들 목적으로 민가 100여 채를 허물었을 정도다.

임금이란 직업이 적성에 안 맞았는지, 그는 직무에도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매일 같이 유흥을 즐겼다. 파티와 사냥과 공연 관람이 그의 주된 일과였다.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집무시간이든 아니든 텔레비전 드라마에 푹 빠지거나 술에 빠지거나 극장 관람에 빠졌을 사람이다.

이뿐 아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열약을 복용했다. 정력 강화제로 쓰인 이 약은 요즘으로 치면 비아그라 같은 것이었다. 일국의 왕이 이런 데에 정신을 쏟으며 살았던 것이다. 드라마 <기황후>에서는 괜찮고 멋있는 군주로 묘사됐지만, 실제로 그는 형편없는 인격의 소유자였다.  

결국 몽골 사신단에 의해 끌려간 충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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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혜왕(주진모 분). ⓒ MBC


충혜왕은 1330년에 열여섯 살 나이로 왕이 됐다. 하지만 행실이 지나치게 문란해서 국정 혼란을 초래한 까닭에, 지금의 평안도 백성들이 "전쟁 날까 두렵다"며 압록강을 건너 피난을 가는 사태까지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충혜왕에게 물러나라고 요구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고려 땅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그 정도로 사태가 심각했다. 그러자 몽골은 이를 빌미로 내정간섭을 실시하여 충혜왕을 체포하고 폐위시켰다. 이때 나이가 열여덟 살이었다.

그가 권좌에 복귀한 것은 1339년, 스물다섯 살 때였다. 한번 호되게 고생했다가 복귀했는데도 그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다. 고치지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복귀한 뒤로는 한술 더 떴다. 패륜과 방탕과 백성 괴롭히기가 이전을 훨씬 능가했다.

충혜왕이 예전 버릇을 못 고치고 국정을 더욱더 혼란케 만들자, 백성들 사이에서는 원성이 자자했다. 그를 증오하고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산됐다. 이런 가운데 충혜왕에 대한 암살 시도도 있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충혜왕 시대뿐 아니라 고려시대 중후반의 민족적 치욕을 부득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대 고려는 몽골의 간섭을 받았다. 그래서 몽골 정부가 고려왕의 상위에 있었다. 우리의 민족적 감정이 상하기는 하지만, 그로 인해 사실상 몽골 정부가 고려왕의 운명을 결정할 권한이 있었다. 그래서 몽골 정부는 고려 백성들이 충혜왕을 증오하자 일종의 탄핵 재판에 착수했다. 

몽골이 충혜왕을 탄핵재판에 회부하는 장면이, 그러니까 탄핵소추와 유사한 장면이 <고려사> 충혜왕 편에 묘사되어 있다. 아까 언급했듯이 그 날은 1343년 12월 9일이다. 충혜왕을 재판에 회부할 목적으로 몽골 정부는 사신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충혜왕이 반발할 것에 대비해 사신단의 파견 목적은 숨겼다.

뭔가 찜찜했던지, 충혜왕은 궁궐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 했다. 궁궐 밖으로 나가 사신단을 맞이해야 했지만, 느낌이 안 좋았던지 마중을 나가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그러시면 안 된다며 나가시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궁궐 대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 뒤에 충혜왕과 몽골 사신단의 접촉이 이루어졌다. 바로 이때였다. 사신단은 충혜왕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그러더니 사신단이 발로 왕을 걷어차고 포승줄로 포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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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충혜왕 편. 빨간 줄을 친 부분은, 문제의 날짜인 갑신일 부분과 “왕을 발로 차고 포박했다”는 부분이다. ⓒ 퍼블릭 도메인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충혜왕이 신하들에게 도움을 호소했지만, 아무도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몽골 사신단이 경호 병력까지 순식간에 제압했기 때문에 누구도 충혜왕을 도울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충혜왕은 몽골로 끌려갔다. 아직은 왕이었지만, 끌려가는 신세가 됐으니 임금의 직무는 정지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1343년 12월 9일의 이 상황은 충혜왕의 퇴진을 바라는 고려 백성들한테는 새로운 상황의 시작일 뿐이었다. 몽골 정부가 충혜왕의 지위를 박탈하고 형벌을 부과하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열여덟 살에 왕위를 빼앗기고 몽골에 끌려갔던 충혜왕은 스물다섯 살 때 왕위를 되찾았다. 이런 전력이 있기 때문에 충혜왕은 몽골에서 열리는 재판에서는 기사회생할 수도 있다는 기대를 했을 수도 있다.

여전히 대통령은 '미련'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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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오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굳은 표정을 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고려사>에 기록된 뒷이야기를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사신단이 칼로 위협하는 속에서 몽골로 끌려간 충혜왕은 몽골 정부에서 열린 재판에서 유배형을 선고받았다. 목숨만은 건지나 싶었지만, 유배 가는 도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고려사>에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독살의 가능성도 있었다고 밝힌다.

충혜왕이 죽었다는 소문이 퍼지자, 고려 백성들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퍼졌다. 기뻐서 뛰어다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제야 고려 백성들은 마음 놓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탄핵소추가 가결된 뒤에 청와대에서 국무위원 간담회를 주최한 박근혜는 "각 부처 장관들께서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비상한 각오로 합심하여 경제 운용과 안보 분야를 비롯해서 국정 공백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잠시 직무를 비우고 어디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그는 국무위원들에게 국정 공백을 최소화해달라고 당부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절반 가까이가 탄핵소추에 찬성하고 친박의 상당수도 찬성한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대통령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헌재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열심히 해달라'는 당부만 했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뉘우치지 않고 있다.

1343년 12월 9일의 충혜왕도 그랬다. 끌려가면서도 그는 저항했다. <고려사>에 따르면 그 순간에도 그는 마음을 정리하지 못했다. "번민이 극심"했다고 <고려사>는 말한다. 탄핵소추 이후의 박근혜 대통령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가 자리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박근혜 탄핵소추 #충혜왕 #박근혜 #탄핵 #박근혜탄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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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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