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손이 담요를 기관총처럼 메고 온 이유

미군 롤 매트도 이보다 단단할 수 없다

등록 2016.12.13 15:52수정 2016.12.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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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보 아니면 장고. 떡 벌어진 어깨에 짙은 눈썹을 가진 그가 청색 작업복 상의를 팔뚝까지 걷어 올리고 이주노동자쉼터에 처음 왔을 때 인상은 그랬다. 허리까지 올 정도로 큰 여행용 가방을 든 그의 팔뚝엔 굵은 힘줄이 솟아 있었고, 미군 롤 매트처럼 단단하게 둘둘 말아서 어깨에 걸치고 있던 담요는 기관총 총구처럼 둥글었다.


솜손이 어깨에 메고 왔던 담요 미군 롤 매트처럼 돌돌 말았다.
솜손이 어깨에 메고 왔던 담요미군 롤 매트처럼 돌돌 말았다.고기복

돌돌 만 담요를 한 손으로 어깨에 걸친 모습은 흡사 방아쇠를 당기기 위해 잠시 호흡을 멈추고 표적을 응시하는 것 같았다. 이주노동자가 쉼터에 오면서 담요 등의 침구를 갖고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게다가 어깨에 메고 오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그가 쉼터 이용을 문의하러 왔을 땐 맨발이었다. 입동도 한참 지나 한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던 때였다. 나중에 안 거지만, 그는 양말을 벗어 신발에 구겨넣고 사무실로 들어왔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이었다. 나 역시 나중에 그가 태국 사람인 걸 알았을 때는 무에타이를 했던 건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지만 그는 워낙 말수가 적었다.

솜손, 그의 이름이다. 외국인 고용허가로 한국에 온 지 채 6개월이 넘지 않는다. 처음 배정받은 회사가 부도나면서 어쩔 수 없이 쉼터를 찾아왔었다. 그랬던 그가 오늘 일자리를 찾아 쉼터를 떠나기에 앞서 사무실에 들렀다.

이번에도 미군 롤 매트 모양의 담요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번처럼 단단해 보이지도 둥글지도 않았다. 심지어 헐렁거릴 뿐만 아니라 구부러질 것처럼 보여서 차라리 한 겹 더 접으면 어떨까 싶을 정도였다. 말이 잘 통하지 않지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어 보았다.

"솜손씨, 이거, 지난번에 쉼터 올 때 갖고 왔잖아요. 이 담요 태국에서 갖고 온 거예요?"
"아니요. 부장님, 삼손 추워요. 이거 갖고 가 했어요."
"지난번 일했던 회사 부장님이요? 그럼 쉼터 올 때 부장님이 담요 싸 준 거였어요?"
"네. 나 몰라요. 잘 안 돼요."


솜손의 회사에서는 그를 '삼손'이라고 불렀다. 회사 부도로 기숙사를 나와야 했을 때, 회사 부장이라는 사람이 해고된 이주노동자들 뒷감당을 했던 모양이다. 부장이라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훈련된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추운 겨울에 회사가 부도났을 때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어쩌면 제 코가 석자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갑작스레 직장을 잃은 솜손을 위해 담요를 챙겨줬던 것이다. 헐렁헐렁한 담요를 얼마나 정성껏 말았는지 미군들이 야전에서 훈련할 때 사용하는 매트처럼 단단하게 보여서 태국에서 군용담요를 갖고 온 줄 알았을 정도였다.


솜손을 고용지원센터에 데려다 주고 다시 이주노동자쉼터까지 안내해 준 것도 그 부장이었다. 솜손이 6개월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회사에서 인정을 받았는지, 한국말도 서툴고 친구도 없다는 걸 알고 안쓰럽게 여겼는지 모르지만, 부장은 솜손과 헤어짐을 상당히 아쉬워했었다.

이제 솜손은 또 다른 직장을 찾아 떠났다. 부장이 챙겨준 담요는 새로운 기숙사에서 추운 겨울을 거뜬하게 나게 해 줄만큼 따뜻할 것이다. 최소한 그 마음은 전달될 것이다.

침구들이 사라지고 따뜻한 마음이 배달되다

쉼터를 운영하다 보면 별별 사람을 다 만나고, 황당한 경우를 경험할 때도 많다. 솜손처럼 웃으며 헤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허탈하게 웃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겨울이다 보니 이주노동자들이 추위를 견디기 위한 나름대로의 생존 전략들을 세우기 마련인데, 얼마 전 경험한 일은 추위와 따뜻함을 같이 느끼게 했다. 솜손이 쉼터에 들어오고 열흘 정도 지나서다.

쉼터를 이용하던 이주여성들이 이불과 담요 등의 침구를 갖고 나가 버렸다. 평소에도 한두 개씩 없어지는 일이 없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얇은 홑이불만 몇 개 남겨 두고 사라져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일로 페이스북에 툴툴거리며 소식을 올렸다. 침구 이야기에 더해서 그간 *국 사람들이 쉼터를 이용할 때 일어났던 사건들까지 들춰내며 화풀이를 했다.

"술 취해서 창문을 깨고, 옷장을 부수고, 식기와 식재료를 갖고 나가고, 외부 빨래를 가져다 하는 등 사연이 많았다. 게다가 군에서 말하는 위치 이동에 대한 개념이 있는지...... 이러다 *국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굳어질지 모르겠다. 마음에 여유라도 없으면 겨울이 더 추울 텐데......."

겨울 나려면 헌 담요라도 구하러 다녀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글을 올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침구를 갖고 사라진 이주여성과 같은 나라 사람이 쓴 사과 글이 올라왔다. 나라를 밝힌 게 아니었는데도 알아차린 사람이 있다니, 오히려 미안했다. 어느 민족보다 정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임을 경험했으면서도 욱하는 심정에 감정을 배설하여 누군가를 일반화시켜 비난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감사하게도 여기저기서 침구를 보내왔다. 사라진 침구들보다 더 좋은 침구들이 따뜻한 마음을 담아 여기저기서 배달되었다. 침구를 보내 온 따뜻한 마음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그대로 전해지는 겨울이었으면 한다.
#이주노동자쉼터 #고용허가제 #미군 롤 매트 #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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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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