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전체 어린이가 시인, '시조여행' 10권째 펴내

진주 봉원초교 신애리 교사, 4-3반 지도 ... 17일 출판기념회

등록 2016.12.16 11:08수정 2016.12.16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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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우리 집을 하얗게 밝혀주네/엄마랑 작은 양초 초코파이 올리고/짝짝짝 손뼉을 쳐요 '토토야! 생일 축하해"(김다빈 "촛불").

"한밤중 들려오는 드르렁 대포소리/전쟁이 난 것 같아 펑펑펑 소리난다/콧속에 대포가 들었나? 시끄러운 코골이"(김서현 "아빠").

"지우개가 슥슥슥 열심히 일을 한다/연필이 잘못하면 삐용삐용 출동해/블랙홀 나타났어요 글자를 빨아들여"(강태현 "지우개").

"하얗게 불타오른 촛불아 같이 놀자/오늘은 토요일야 엄마가 놀아도 된데/우리가 모두 모이면 해님도 오시겠지"(하빈 "촛불).

진주 봉원초등학교 4학년 3반 학생들이 쓴, 재치와 기발함이 만발한 시조(時調)다. '어린이 시인'들이 한 해 동안 썼던 시조를 한데 묶어 시조집 <차곡차곡 쟁여 놓은 우리들의 곳간>(어린이시조나라 간)을 냈다. 반 전체 학생이 시인이다.

담임 신애리 교사가 한 해 동안 지도해 어린이들을 시인으로 만든 것이다. 신애리 교사는 3월 첫날 "우리 반은 시조를 쓰는 반이야, 매일 아침 자습시간에 시조를 쓰는 활동을 하게 될 것이고, 12월에 여러분 모두가 멋진 시조시인이 되어 있을 걸"이라 말했다고 한다.

처음 이 말을 들은 어린이들은 깜짝 놀라며 "시조가 뭐야, 우리가 어떻게 시조를 잘 쓸 수 있을까"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신 교사는 아이들의 시조 짓기를 도왔고, 그들의 실력은 날이 갈수록 일취월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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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봉원초등학교 신애리 교사는 4-3반 학생들의 시조를 담은 <차곡차곡 쟁여놓은 우리들의 곳간>을 펴냈다. ⓒ 윤성효


전국 (시조)백일장에서 봉원초교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전국학생백일장에서는 22명이 참여해 21명이 예선 통과하는 실력을 뽐냈다. 어린이들은 전국 백일장과 문예지 공모에 80회 이상 참여하기도 했다.

심재상 교장은 "지난 3월부터 교실에서 시조를 쓰기 시작하더니, 4월부터 우리 학교로 날아오는 상장 중에서 글짓기 상장이 가장 많아서 글짓기 잘하는 학교로 소문이 자자하다"고 했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시조짓기가 "창의력과 긍정적 사고, 정서적 안정감을 키워주는 보약"으로 보고 있다. 구진모 학생 어머니 방준실씨는 "매일 아침 책상 앞에 앉아서 끝없이 상상의 세계를 펼치고 좋은 문장과 단어를 찾는 활동을 통해 바른 생각과 착한 마음을 품게 되어 마음과 정신을 함께 살찌우게 되었다"고 했다.

최영은 학생의 어머니 송람희씨는 "우리나라 입시제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아이들에게 맞는 교육은 무엇인지 한참 생각할 때, 선생님의 지도 방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며 "1년 동안 열심히 시조를 써준 친구들에게 박수를 보낸다"고 했다.

신애리 교사는 "4학년 3반 천재 작가들과 함께 한 1년은 너무 빨라서 아쉽다. 10년, 20년 지난 뒤에는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우리 음악과 우리들을 사랑하는 건강한 문화인으로 성장해 주길 기대한다"고 격려했다.

10년째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 해마다 책으로 묶어

신애리 교사가 어린이 시조짓기를 하고 한데 묶어 책으로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0회째다. '선생님과 함께 가는 시조여행 10권'이 이번에 나온 것이다.

신 교사는 2007년 촉석초교 5학년 1반 담임할 때 어린이들과 '시조여행'을 하기 시작했고, 그 해에 38명의 작품을 담아 <꿈나무들의 속삭임>으로 묶어냈다.

이후 신 교사는 신진초교, 동성초교를 거쳐 2014년부터 봉원초교에서 어린이 시조짓기를 해오고 있다.

그동안 <꼬마 선비들의 시조소리>, <개구쟁이들의 놀이터>, <해님이 방긋 웃네 시조야 놀자>, <알록달록 보석상자>, <들꽃처럼 피어라>, <나무야 시조나무야>, <앗 UFO다>, <꼬물꼬물 시조벌레>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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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애리 교사는 2007년부터 어린이 시조짓기를 열어 해마다 시조집으로 묶어 냈고, 올해까지 총 10권을 냈다. ⓒ 윤성효


심재상 교장은 "한 권도 아닌 열 권째라니 그동안 선생님의 노고와 희생에 대해 교육동지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린다"며 "초등교육의 텃밭에 뿌린 시조의 씨앗들은 앞으로 10년, 20년이 아닌 100년을 꿋꿋하게 커가는 거목으로 성장할 것이라 믿는다"고 했다.

서관호 어린이시조나라 발행인은 "신 교사는 온갖 백일장에 어린이들을 데리고 가고, 많은 상도 타게 해주었으며, 이렇게 책까지 만들어 평생의 보물로 간직하게 해주었다"며 "시조로부터 받은 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사랑, 그것은 분명 어린이들을 영원히 행복하게 해주리라 믿는다"고 했다.

신애리 교사는 "약속 중에 가장 지키기 어려운 약속이 자신과의 약속이라 한다. 열 권의 책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봉원초교는 17일 오전 시청각실에서 어린이 시인과 학부모, 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조집 출판 기념회'를 연다.
#시조 #봉원초등학교 #어린이 #신애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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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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