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하게 공부하는 농부, 그 증표는 '요술 빗자루'

[독일의 농부 ⑩] 홀러농가, 50가지 농식품을 가공하고 100% 입소문 직판

등록 2017.01.02 21:19수정 2017.01.0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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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는 '국민의 별장지기'이자 '국토의 정원사'라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대단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 않으면 농촌 경관이 어떻게 망가지나 한 번 보자며 시위를 하고 호기를 부리기도 하지요."


황석중 지도교수는 연수 내내 가는 곳마다 독일 농부의 위상과 가치를 이렇게 예찬한다. 하지만 그런 독일의 농민조차 전 국민의 2%밖에 안 남았다. 국가경제에서 농업생산이 차지하는 산업의 비중은 1%도 안 된다. 선진국 독일에서도 농업은 저부가가치 산업이다. 농사는 험한 일이기는 마찬가지다. 한국 농부들에게는 '쌔가 빠지는" 농사 일이 독일 농부들에게는 "뼛골 빠지는" 일로 자조하는 표현만 약간 달라질 뿐이다.

그럼에도 한국 농민들은 자괴감에 치를 떨지만, 독일 농부들은 자긍심과 자부심이 하늘을 찌른다. 국민의 식량, 먹을거리, 그러니까 생명을 책임지는 성스러운 공무에 종사한다는 사명감과 책임감이 충만하다.

이런 농부들을 국민들도 믿고 신뢰한다. 농부들이 생산하는 농산물을 의심치 않고 마음껏 구매하고 소비한다. 농업과 농촌을 지키기 위해 농민 직불금 등 농민의 생활지원대책에 국민들은 기꺼이 사회적으로 동의하고 합의한다. 말그대로 농민이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니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지켜주는 셈이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는 이처럼 농업과 농촌의 중요성과 가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두텁다. 이러한 국민의 사회적 교감과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농부들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농촌에서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 수 있으니 농촌을 떠나지 않는다. 농촌의 문화와 경관을 지키는 '국민의 별장지기' '국토의 정원사' 노릇을 능히 수행하며 산다. 자식들에게 가업으로 농사를 물려주는 건 당연하다. 심지어 무덤의 묘비에까지 "자랑스러운 농부였다"라고 당당히 새기며 농부의 삶을 거룩하게 마무리한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6차산업형 가족농, 홀러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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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주 농부이자 목수인, 홀러 농가의 요셉 클라우스호퍼 농장주(* 사진 : 대산농촌재단) ⓒ 대산농촌재단


'소금과 음악의 도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파이스테나우(Faistenau) 지방에도 그런 "뼛골 빠지지만 자랑스러운 농사"를 짓는 순정하고 당당한 농부들이 많다. 그중 홀러 농장은 요셉 클라우스호퍼(Joseph Klaushofer)씨 부부가 함께 꾸려가는 소규모 가족농에 불과하다. 겉으로 보면 그렇다. 하지만 지역에서 꽤 유명하다. 전국적인 지명도도 무시하지 못한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가족농으로 공인받았기 때문이다.

홀러 농가는 겉모습이나 외형적 성과로만 보면 평범한 소농이다. 최고의 농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특별한 비결도 없어 보인다. 농지도 약 7ha에 불과하다. 유럽의 평균적인 농부들에 비해 작은 규모다. 닭 50마리, 젖소 7마리 그리고 벌을 키우는 게 농사의 전부다. 그럼에도 젖소 70~80마리를 기르는 이웃 농가보다 소득 수준이 높다고 한다. 제 입으로 소득을 말해주는 농부는 단 한 사람도 없어 정확한 수입은 알 수 없지만.

굳이 농가 경영을 잘 하는 비결을 들자면 부부가 공동경영주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남편은 농장경영을, 부인은 농식품 가공을 효율적으로 분담해 효과적으로 공동경영하고 있다.  또 6차산업형 농가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낙농, 양계, 양봉 등 1차 농사 외에 햄, 치즈 등 2차 가공, 3차 목공체험, 직판이 유기적·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특히 소농으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고부가가치 농식품 가공품을 개발했다. 일단 하루에 200리터 정도 생산하는 우유는 전량 10kg 정도의 치즈로 가공한다. 1리터에 25센트 정도로 우윳값이 너무 떨어져 도저히 채산성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1kg당 12유로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고품질 치즈로 가공한다.

100% 입소문 직판으로, 품격있는 전문매장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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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봉장 양봉도 하는 농장주 요셉씨는 겨울철 농한기에는 양봉틀 등 목공 부업을 겸하는 목수다. ⓒ 정기석


무엇보다 100% 직판 전략을 고집한 게 주효했다. 가장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은 뭐니뭐니해도 '입소문'이 최고 아니던가. 정성을 들여 개발한 상품의 질이 좋아 자신감이 있었다. 상품이 좋으면 소비자들은 어떻게든 알아서 찾아온다. 그리고 굳이 부탁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홍보도 하고 광고도 해준다. 한번 찾아온 고객은 재구매로 이어진다. 단골고객으로 이어진 소비자도 한둘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소득이라는 돈보다는 더 소중한 자산을 얻은 건 물론이다. 바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두텁게 쌓인 신뢰와 연대의식이다. 농부의 혼이 들어간 생명의 보고인 농산물이나 농식품은 단지 상업적인 거래의 객체나 대상으로 취급하고 평가하면 안 된다. 농업장사꾼이나 기업농의 돈벌이의 도구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부작용과 폐해는 농민은 물론 고스란히 소비자, 국민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요셉 농장주의 부인 브리기타(brigita)씨는 치즈 외에 빵, 요구르트, 햄, 소시지, 로열젤리 등 50가지 이상의 농식품을 직접 개발한 장본인이다. 직판장을 둘러보면 일반적인 그렇고 그런 농가 수준이 아니다. 얼핏 보기에도 콘텐츠와 프로그램이 마치 전문매장처럼 풍부하고 다양하고 이채롭다. 시식과 체험을 해볼 수 있는 교육장은 농가 레스토랑처럼 정갈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다.

농장의 뒷마당은 단연 농장의 중심이다. 마치 잘 가꾸어진 영국 공원의 치유정원같다. 얼마나 농장과 농사에 정성과 애정을 쏟고있는지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농장 한켠에는 이채롭게 양봉장과 목공방이 차지하고 있다. 남편인 요셉씨의 고유영역이다. 겨울철 농한기에도 쉬지 않는다. 겨울이 오면 농부에서 목수로 변신하는 것이다. 양봉틀, 가구 등 목공제품을 스스로 설계·제작해서 판매해 부수입을 올린다.

버틸 수 있는 '여러 다리'를 찾아 교육받고 연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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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마치 영국 공원의 치유정원처럼 잘 가꾸어진 홀러 농가 마당 ⓒ 정기석


농장주 요셉씨는 농장 안내를 하는 동안 마치 스스로 다짐하는 것처럼 되풀이해 강조했다.

"농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버틸 수 있는 다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부인 브리기타씨도 '부부가 함께 버틸 수 있는 다리'를 늘 찾고 있다. 홀러 농장의 가공품 개발을 전담하는 연구원이자 공장장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6차산업형 농가인 홀러농가 입장에서는 남편보다 더 막중한 책임을 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놀라운 점은, 가족농 수준이라고 주먹구구식으로, 기분내키는 대로, 아마추어처럼 상품을 개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에서는 새로운 식품을 개발하고 가공하려면 먼저 농업회의소 등에서 정식으로 교육을 받고 인증을 받아야 한다. 그것도 연간 500만 원 이상의 교육비, 400시간 이상의 시간을 투자해가면서 말이다. 교육을 이수했다고 끝이 아니다. 가공시설은 식품검사국의 교육과정과 위생검사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재미있는 것은 교육을 마치면 수료했다는 징표로 동화 속 요술 할머니가 타고 다니는 마법의 빗자루를 인증서처럼 수여한다. "마법같은 솜씨를 발휘해 훌륭한 식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한다"는 의미라 한다. 그 마법의 빗자루는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홀러 농가 정문에 자랑스럽게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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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자루 농식품 가공교육 이수증으로 받은 ‘마법의 빗자루’(* 사진 : 대산농촌재단) ⓒ 대산농촌재단


여성은 농사의 절반을 책임지는 평등한 공동경영주

빗자루 옆에는 역시 '맛의 왕관(Genuss Krone)' 상장과 금메달이 주렁주렁 빛나고 있다. 마이스터인 요셉씨, 50가지 이상의 식품을 개발한 브리기타씨 부부가 공동경영하는 선도적이고 혁신적인 농가답게 오스트리아 치즈가공 경연대회에서 최고로 선정됐다.

이같은 홀러 농가의 공동경영구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럽의 농가는 특히 여성 농민의 참여를 강조한다. 각종 여성농민 지원 사업으로 여성농민의 사회적인 지위향상부터 꾀하고 있다. 농식품 가공 등 기본적인 직업교육은 물론, 농업경영, 식품 소비자 교육사업, 마을단위 여성 농민의 마을개선사업 등에 여성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이는 그동안의 농민연합의 주장과 제안이 반영된 것으로 특히 독일 주 정부는 여성농민의 날을 지정하고 있는 정도다. 특히 독일, 오스트리아의 여성농민은 '농촌주부 자격증'도 갖고 있다. 2년 동안 매주 하루씩 이른바 농촌가정주부 교육과정으로 농업교육과 가정교육을 받아야 한다.

농업교육은 소 기르기, 텃밭재배, 영양학, 위생학, 원예기술 등이다. 가정교육은 법률, 상속관련지식, 컴퓨터, 조리, 손님 다루는 법, 부기 등 농촌의 가계 생활에 필요한 '생활기술'을 가르친다.

농사의 절반은 여성이 책임진다는 사실을 독일의 농부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한국은 2016년초에야 비로소 여성농민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동경영주 제도가 시작되었다. 한국 농촌이 독일 농촌을 따라가려면 이제 독일식 농정을 시작이라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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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판장 안주인 브리기타씨가 50가지 이상 직접 개발한 치즈, 햄, 잼 등 가공 농식품을 직판하는 매장 ⓒ 정기석


덧붙이는 글 ※ '독일의 농부' : 문화경관 직불금, 농업회의소, 협동조합, 가족농가, 유기농업, 사회안전망 등으로 국가와 정부의 돌봄과 보살핌을 받으며, '돈 버는 농업'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을 위한 '농부의 나라'를 지키며 살아가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 EU(유럽연합)의 '행복한 사회적 농부' 이야기.
#오스트리아 #농부 #농업 #빗자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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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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