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 자신에게는 바꿔 물어야 겠다.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뭐니?"
앨리스
인생의 부스러기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그림으로 먹고 산다는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은 여행을 종종 떠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시시콜콜 다 늘어놓지는 않는다. 여행은 인생의 화려한 부스러기인 것처럼 그의 여정은 여행의 몸통이 아니었다. '떠나는 이유'에서 그는 길 위에서 치고 올라오는 감정들, 떠오르는 음악들, 읽고 싶어지는 책들, 그리고 그리운 사람들에 대한 느낌을 그때마다 적어 내려갔다.
그래서 한 번에 쭉 들이키듯 책을 보지 않아도 커피를 마시다가도 누군가를 기다리다가도 짬짬이 읽을 수 있게 해놓았다. 나는 이 책에서 추천음악이 나오면 틀고 페이지를 넘겼고 커피를 마시다가 다시 페이지를 넘겼고 잠시 잠들었다가 깨어 남은 페이지를 마저 넘겼다.
여행은 인생의 묘약"약사는 무심히 작은 봉지 하나를 건넸습니다. 봉지에는 '파니스 마르티우스'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중략) 무엇보다 이 과자에는 사랑의 고통을 아물게 하고 기억을 되살려주는 효능이 있다고 하였습니다."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약사가 건넨 과자 하나. 그건 바로 '사랑의 묘약'이라고 했다.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데 언제 닥칠지 모르니 미래를 위해서라도 간직하는 게 좋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행이야 말로 우리 인생의 묘약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누군가는 갑갑한 사무실에서 여행을 떠날 생각에 하루를 버티고 긴 휴가를 다녀온 사람들은 그 기억으로 힘든 현실을 버티어 나간다. 생채기가 난 나에게 건네고 싶은 한 조각의 묘약, 그건 바로 여행이다.
달라서 아름다운 모양새"푸켓은 그런대로 괜찮았습니다. (중략) 그 많은 돈을 꼭 내야 했는지, 푸켓으로 꼭 가야 했는지, 신혼여행은 꼭 가야 했는지, 결국 결혼은 꼭 해야 했는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좀처럼 끝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땐 참 어설픈 여행자였습니다. (중략)아무리 나만의 여행을 원해도 똑같은 일정과 옵션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결혼도 패키지 상품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렇게 갇혀 있는 줄도 모른 채 맴돌고 있는 걸 자유라고 믿고 살았습니다."신혼여행이라고 하면 대부분은 휴양지의 풀빌라로 떠난다. 아늑한 숙소와 아름다운 해변이 펼쳐지는 곳에서 며칠의 시간을 꿀처럼 맛본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을 위해 치르는 돈은 그다지 달콤하지 않다. 기백만 원을 들여 떠난 여행. 하지만 그게 진정 자신이 원한 여행의 모습일까? 밥장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래전 신혼여행 사진을 들춰보며 왜 그게 꼭 푸켓이어야 했는지 왜 가이드가 있는 틀에 박힌 모습이어야 했는지를 묻는다. 나도 그랬다. 남들이 짜놓은 플랜에 맞춰 떠나는 여행은 원치 않았다. 게다가 그 한 번을 위해 몇 백만 원을 쓴다는 게 내키지가 않았다. 전국일주를 하듯 떠난 국내여행은 훨씬 오래 기억에 남았다. 다녀와서도 아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사람마다 각자 생김새가 다르듯이 우리네 여행은 다채로울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밥장은 질투가 날정도로 부러운 그림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걸 그의 책을 읽으며 느꼈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고 있는 내가 보기에도 그의 표현은 시적이고 아름다운 데가 있었다. 게다가 누군가에게 직접 들려주듯이 써내려간 문체와 적재적소에서의 완급조절까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느낀 질투는 어느새 한 가지 깨달음으로 변해있었다.
'아, 나는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날 때가 되었구나.'
떠나는 이유 -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밥장 글.그림.사진,
앨리스,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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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 당신에게 '떠나는 이유'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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