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덕리 영덕읍 천정리 주민들이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요리 식당에서 식사하고 있다. 이들은 3~4인에 4만9000원짜리 오리요리 풀코스로 55만 원 정도의 식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종술
"왜 한수원 직원이 주민들 밥값을 냈죠?"김 기자는 말을 내뱉고 불안했다. 해코지당할까 두려웠다. 여럿이 달려든다면, 혼자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오만가지 불길한 생각에 땀이 났다. 하지만 기자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국민을 대신해서 묻는 자다. 그는 '모든 시민은 기자'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다. 그래서 마른 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
"(한수원 직원에게) 밥값 계산했죠?"2015년 11월 10일 영덕조각공원 앞 오리전문 식당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영덕 핵발전소 찬반투표를 하루 앞둔 날이었다. 그동안 영덕에선 소문이 파다했다. 한수원이 핵발전소를 유치하려 일부 주민들을 모아 여행 보내주고 선물도 사주고 밥도 사준다는 말이었다. 이날 김 기자는 또 다른 현장에서 만났던 한 지인의 제보 전화를 받고 현장을 덮친 것이었다.
식당 안에는 어르신들이 옹기종기 모여 밥을 먹고 있었다. 테이블엔 음식이 꽉 차 있고 소주병과 음료수 병들도 군데군데 빈 공간을 채웠다. 잔치가 벌어진 것일까? 김 기자가 식당 한 귀퉁이에서 쇼핑백을 발견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질문을 또, 던졌다.
"쇼핑백에 든 선물도 한수원에서 나눠 준 거죠?"돌직구 질문에 한국수력원자력(아래 한수원) 직원은 순간, 얼음이 됐다. 당황한 낯빛이 역력했다. 허둥지둥하며, 동문서답했다. "주민들이 기금으로 움직이고 안내만 했다"고 둘러댔다가 이내 "국책사업으로 하면서 홍보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을 돌렸다. 스스로 '식사대접'을 인정한 셈이 되자 이번에는 또 말을 바꿔 "식비 결제는 하지 않았다"고 발뺌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이쯤에서 어쩔 수 없이 물러서지만 그는 달랐다. 그는 주방으로 튀어 들어가 식당 관계자의 증언을 확보했다.
"식비는 한수원 직원이 계산했다."구체적이었다. 테이블 11개에 3~4인에 4만 9천 원짜리 오리요리 풀코스를 차렸다고 했다. 소주와 음료수 값까지 합해 총 55만 원 어치를 계산했다고 했다. 외상장부도 있는데, 다른 가게서도 똑같이 외상을 하고 나중에 몰아서 결재한다고 했다. 김 기자가 취재하는 모습을 까칠하게 바라보면서 밥 먹던 주민도 역정을 냈다.
"이건(쇼핑백), 집에서 가져온 거다."현장이 발각됐는데도 딱 잡아 댔다. '밥 먹는 데까지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한다'고 성질을 부렸다. 눈 앞에 펼쳐진 사실을 감추고 속이려고만 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이었다.
주민들은 서둘러 식당을 빠져나갔다. 손에 들린 쇼핑백을 다시 확인했다. 틀림없이 한수원 '에너지팜' 마크였다. 김 기자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됐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기사를 썼다. 안전을 담보로 거래가 이뤄진 추악한 '뒷거래 현장'이 처음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관련 기사 :
[단독] 영덕주민들에게 밥 사주고...'주민투표 소문' 사실이었다)
그가 <오마이뉴스>에 특종 기사를 쏘아 올린 뒤 주민투표 대책위 사무실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마음 졸였는데, 김 기자님 때문에 이젠 끝났다."풍문으로 떠돌던 한수원의 식사대접 기사가 나가자 동네가 들썩였다. 이튿날 투표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식사대접 기사 쓴 기자냐"며 김 기자를 알아봤다. "고맙다"며 손을 잡아주는 이들도 있었다.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기자로서 자부심을 느꼈다.
이게 다가 아니다. 투표 당일에도 또 다른 특종을 보도해 영덕군이 떠들썩했다. 사연을 이랬다. 그날 현장을 지키던 김 기자는 투표소 인근에서 수상한 자동차를 발견했다. 자동차 번호판에 적힌 '허, 하'를 보는 순간, 촉이 왔다. 렌터카가 분명했다. 김 기자는 뒤쪽에서 그들의 움직임을 끈질기게 관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