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 광장 박근혜 퇴진 캠핑촌 모습
노순택
한국에 오고자 준비하는 예비이주노동자에게 한국은 로망이다. 그래서 한국어를 공부하느라 시간과 돈을 많이 들인다. 예비이주노동자들은 어떤 꿈을 안고 한국으로 오는 것일까? 추측건대 낯설고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젊은 기대, 더 풍족한 물질을 사고 쓰며 폼 나게 살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 돈이 가족에게 가져다줄 풍요와 안정 그리고 미래... 이런 단꿈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 와서 실제로 겪는 삶은 어떤 것일까?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누구든 공평하게 겪는 일은 달달한 꿈에서 단박에 홀딱 깬다. 파도처럼 이주노동자를 덮치는 것은 생경한 사람과 언어, 이질적인 문화, 먹기 힘든 음식, 고단하고 쉼 없는 노동, 자신과 무관하게 굴러가는 세상을 보며 느끼는 소외감과 외로움, 무시하거나 혹은 경멸하는 시선, 차별적인 대우...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통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다 자기가 선택한 거잖아. 그 대신 돈을 버는 거고! 자기나라에서 버는 것보다 엄청 많이 번다며?" 그런데 말입니다! 이주노동자가 받는 '꼴랑' 최저임금이 이 많은 고통을 감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일까? 그 정도 벌이를 보장해 줬으면 그까짓 어려움쯤 감수하라고 일갈해도 좋은 것일까? 최저임금 받는 한국청년들은 혼자 먹고살기도 힘겨운데, 외국 청년들은 같은 최저임금으로 가족 건사하고 미래까지 준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 요즘 우리가 광장에 서서 외치며 굳세게 지키고자 하는 정의와 인권이 걸린 일이니 대답 잘해야 한다.
'쳇, 정의에 인권까지 들먹이니 쉽게 대답할 수 없잖아!' 라고 생각하고 계신가? 그렇다면 차근차근 생각해보자.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왜 초대할까? 어떤 이들은 저개발국가의 젊은이들에게 선진기술을 가르치고 돈 벌 기회를 주기 위한 것 아니냐고 한다. 노동자 도입과 해외원조를 헷갈리면 안 된다. 어쩌면 십년 전에 사라진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제도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이름과는 달리 실제로는 노동력 도입을 위해 운영했던 것이다. 산업기술을 가르쳐준다는 것은 말짱 거짓말이었고 저임금에 노동력을 착취하다 호된 비판을 받고 결국 사라졌다. 그 뒤로는 '외국인고용허가제'가 운영되고 있다. 내국인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고용주에게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해 준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름만 봐도 부족한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초대한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거다.
정부는 이 제도를 운영하기 위해 아시아 15개 나라와 계약을 체결하고 노동자 선발, 국내업체와 계약, 이동, 노동관리 등을 직접 담당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회사의 선택을 받아 계약한 후에 입국해서 3년간 일할 수 있다. 업체가 원하는 만큼 외국인을 받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해마다 경제상황과 노동력 부족 정도를 감안해서 도입규모를 정하고, '업종과 사업장규모'를 제한하고 있다.
참고로 2017년 도입규모는 5만6천명이다. 허용업종을 살펴보자면, 2017년 1월 현재, 상시근로자 300인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원 이하의 제조업, 건설업 대부분, 건설폐기물처리업, 연근해어업과 양식, 소금채취업, 농축산업 등으로 정하고 있다. 또 사업장규모에 따라서, 내국인노동자 수가 1인~5인인 곳은 5인까지, 201인~300인인 곳은 30인까지 이주노동자를 받을 수 있다. 특이한 점은 2016년부터 개성공단입주기업에게 특별 혜택을 주고 있다는 거다. 이런 요건에 해당하는 기업이 14일간 내국인노동자를 구하려고 노력했는데 실패할 경우 외국인노동자를 요청할 수 있다.
상세하게 말하는 이유는 고용허가제가 순전히 우리 사회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기획된 우리 사회의 입장과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임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우리가 초대한 이주노동자에게 우리는 어떤 대우를 해야 할까? 차별 없는 노동조건, 내국인과 같은 법제도 적용과 인권보장이 기본이다. 그런데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더 쥐어짜고 얽어매고 맘대로 부릴 꼼수를 찾느라 골몰하고 있다. 이주노동자 목을 바짝 조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