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음과 고음이 동시에? 몽골에서 만난 발성법 '흐미'

[몽골기행 29] 몽골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National Academic Drama Theatre) 기행

등록 2017.01.25 18:01수정 2017.01.25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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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ew몽골의 서쪽, 알타이(Altay) 지방에서 시작된 이 몽골 특유의 창법은 독특한 발성법으로 인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되었다.
오늘 나와 아내는 몽골인들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 있는 몽골의 민속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우리는 아침에 호텔을 나서면서 호텔 리셉션 데스크 여직원들에게 몽골 민속공연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내가 들고 다니던 몽골어 지도를 보여주며 우리가 가야 할 곳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호텔 여직원들은 외국 여행객이 많은 호텔 직원이라면 누구나 알 것 같은 민속공연장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들은 모여서 서로 정보를 나누더니 지도 상의 한 장소를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우리는 몽골시내 답사를 다니다가 오후 시간이 되어 지도에 표시된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에는 실제로 우리나라 1970년대 영화관 같이 생긴 공연장 건물이 서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변에는 사람들이 전혀 없고 문을 아무리 흔들어보아도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호텔 직원들이 설마 잘못 가르쳐 주었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곳은 오늘 공연을 하는 곳이 아니었다. 구글 지도를 찾아서 확인해 보니 그곳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연시설인 '칠드런스 팔래스(The Children's Palace)'였다. 오늘 흐미(khoomei) 공연을 꼭 보고 싶었는데 계획이 틀어지는 게 아닌가 조바심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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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국립도서관. 몽골어로 된 희귀한 문서와 책들을 보관한 몽골 최대의 도서관이다. ⓒ 노시경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서 다시 울란바토르(Ulaanbaatar) 도심으로 걸어오는데 도중에 몽골 국립도서관 건물이 나타났다. 러시아의 지원으로 지어진 이 오래된 건물은 역사의 품격과 함께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몽골의 고대 불경 등 귀중한 자료와 몽골의 국보급 책들 및 학술∙ 전문서적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이 도서관은 몽골 전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몽골 대표 도서관이다.

나는 육중한 도서관 문을 열고 도서관 내부로 들어가보았다. 큰 문을 지나 다시 작은 문을 밀어 열자 비로소 로비가 나왔다. 러시아도 그렇지만 겨울의 혹한이 무시무시한 몽골에서도 외풍을 막기 위해 외부와의 출입공간인 문을 최대한 작게 만든 것이다. 한낮인데도 로비 안은 마치 저녁이 된 듯 어두웠다. 도서관 사서에게 물어보니 최근에 이 도서관 안에 있던 한국학 정보센터가 없어졌다고 해서 너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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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 일년 동안 쉬지 않고 연극과 민속공연이 펼쳐진다. ⓒ 노시경


몽골 국립도서관을 나와 반대편 거리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몽골 민속공연 이벤트 일정을 알리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는 멋진 분홍색 그리스 식 건물이 바로 눈 앞에 보였기 때문이다. 아내도 이 공연장 건물을 보자마자 저기에서 민속공연을 할 것 같다고 가보자고 했다. 우리가 찾던 민속 공연장이 울란바토르 도심 한복판에 있었던 것이다. 공연장 이름은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National Academic Drama Theatre). 백 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몽골 최고, 최대의 예술공연극장이었다.

마침 공연도 딱 들어맞는 오후 6시에 시작된다고 한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려고 출입문 앞에서 극장 종업원에게 물어보았더니 바깥에 있는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오라고 한다. 아내를 극장 정문 앞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매표소를 찾는데 웬일인지 극장 외부 별도의 장소에는 매표소가 보이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보았더니 극장 오른쪽 맨 끝의 아주 작은 문 안에 매표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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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매표소. 매표소를 찾는 데에 시간이 걸렸지만 매표소 아가씨는 참으로 친절했다. ⓒ 노시경


매표소 창구 위에는 이달의 공연 리스트가 붙어 있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각종 공연 포스터도 아직 그대로 붙어 있다.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민속공연 외에 드라마와 연극도 꾸준히 무대에 올라오고 있었다. 공연표를 보면 몽골, 러시아 등의 극작가들이 쓴 연극이 1년에 12편 정도가 공연되고 있었다. 몽골어로 진행되는 연극을 외국인들이 보려면 상당한 몽골어 능력이 있어야 되기 때문에 매년 7월~10월 중에는 외국인들을 위한 몽골 전통 민속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매표소 여직원은 매우 친절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았지만 대충 눈치로 알아들으니 좌석이 1층, 2층, 3층이 있는데 어느 층 좌석표를 살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말이 잘 안 통하니 이번에도 손가락으로 1층을 표시했다. 아마도 그냥 좌석을 달라고 해도 가장 비싼 1층 좌석표를 주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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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 앞의 몽골 아저씨들. 만남의 장소인 이곳에는 눈빛이 선량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 노시경


극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몽골 아저씨들 여러 명이 극장의 커다란 기둥 아래에 무리 지어 앉아 있다. 이 국립극장 앞이 장소가 탁 트이게 넓어서 약속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것 같다. 그 중에는 눈빛이 그리 선량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도 보인다. 나는 얼른 뛰어가서 극장 입구에서 홀로 기다리던 아내를 데리고 극장 안으로 들어섰다. 극장 내부에는 역대 배우들의 사진과 함께 곧 공연 예정인 포스터들이 붙어 있었다. 시원스럽게 넓고 고풍스러운 공연장 내부와 많은 관람객들이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뜨게 만들었다.

극장 안 내부의 1~3층 관람석은 깜짝 놀랄 정도로 모두 꽉 차 있었다. 우리 앞 좌석에도 외국 관광객들이 있고 특히 서양에서 온 젊은이들이 많다. 예상 밖으로 몽골의 젊은이들도 이 극장을 많이 찾고 있다. 나는 몽골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흐미(khoomei)를 직접 들어볼 수 있게 되었다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넓은 대지를 가진 몽골의 다양한 부족에서 전래된 민속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극장 안에서는 사진 촬영을 딱히 제지하지는 않지만 나는 앞에 앉은 사람들의 머리를 피해가며 살짝살짝 사진을 찍었다. 첫 공연부터 마두금 연주에 맞추어 몽골의 민속음악이 청아하게 극장 안을 울려 퍼지고 있었다. 마두금 연주자 옆에는 종교의례에 주로 사용된다는 몽골 피리, 림프가 연주되고 있었다. 입으로 숨을 쉬지 않고 코로 숨을 쉬면서 피리를 부는 모습이 참으로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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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마두금과 림프 연주. 몽골인들이 말을 타면서 내는 것 같은 강렬한 소리가 난다. ⓒ 노시경


말의 머리처럼 생긴 마두금(馬頭琴), 모린호르(morin khuur) 선율은 흐르는 눈물처럼 애절하다. 마두금은 갑자기 몽골인들이 말을 달리면서 내는 소리 같이 강렬해지기도 한다. 땅을 울리는 강함과 애잔함을 함께 가진 몽골의 소리, 마두금 소리가 마음을 정화시킨다.

마두금은 흉노 시대에 한 남자가 자기를 구해준 말을 그리워하면서 처음 만든 악기이다. 당시 나무로 말머리를 만들고 말 꼬리털로 두 줄을 만들어 연주를 시작했다고 한다. 마두금 속에서 전통 복장의 몽골 여자 가수가 부르는 민요는 몽골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었다. 마두금이 연주되고 몽골의 여인들이 몽골 초원의 노래를 부르는데 마치 내가 몽골의 한 초원 안으로 초대받은 듯한 신비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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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예사. 젊은 여인이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놀라운 유연성을 보여준다. ⓒ 노시경


예상을 못했던 공연은 바로 곡예사(曲藝師)의 곡예(曲藝) 공연이었다. 몽골의 동쪽지역에 사는 부족의 어린 소녀들에게 전해 내려오는 곡예이다.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사람의 한계를 극복하는 최고의 예술성을 보여준다. 작은 탁자 위에 올라선 작은 한 여인이 상상을 초월하는 유연성으로 고난이도의 묘기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며 이 곡예를 보고 있으려니 이 곡예사 여인의 얼굴이 낯이 익다. 내가 여행자료를 수집하면서 만났던 그 사진 속 소녀가 이제는 여인이 되어 지금도 곡예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소녀의 곡예를 보면서 마음이 짠했지만 이제는 다 큰 여인이 되었다. 이제는 자신의 본업에 충실한 여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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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전래과정. 불교가 전래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공연은 뮤지컬 같이 다양한 인물이 출연한다. ⓒ 노시경


불교 전래과정을 소재로 한 민속공연은 공연자들의 복장이 화려하고 공연도 한편의 뮤지컬 같다. 티벳 불교의 유산인 몽골 불교의 전래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부처님과 괴수들이 다양한 탈을 쓰고 함께 춤을 추고 있다. 무대 앞에 선 무희들은 젊고 아름답다. 화려한 의상 속에서 이국의 여인들이 보여주는 짧고 간결한 몸동작의 전통무용이 심미적이면서도 아주 곱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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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통일과정. 몽골의 여러 부족들의 통일 역사를 보여주는 공연이 힘차게 진행된다. ⓒ 노시경


몽골 여러 부족이 힘을 합쳐 몽골의 통일과정을 보여주는 공연이 이어졌다. 다양한 부족들은 전통 복장뿐만 아니라 쓰고 있는 모자나 머리를 묶은 모습들이 다 달랐다. 보고 있는 내가 숨이 가빠질 정도로 춤의 템포는 빠르고 경쾌하다. 몸집 좋은 젊은 남자 무용수들의 활기찬 전통무용은 대단히 빠르고 역동적이며 힘이 가득 차 있다. 공연에 몽골 민족의 민족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들썩거리며 어깨의 율동을 많이 이용하는 몽골 남자들의 춤사위가 우리나라와 비슷하여 놀랍기도 하다.

눈을 감고 배경음악을 들으면 마치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리는 몽골 말들의 경쾌한 말발굽 소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는 것 같다. 초원지대 유목민의 악기들과 어울렸던 소리가 공연장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초원 위에서 살았던 몽골인들의 즐거움과 슬픔, 그리고 그들의 삶이 전통음악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드디어 내가 고대하던 '흐미'를 부르는 가수가 무대에 올라왔다. 결국 초원이 울리는 듯한 '흐미'가 시작되었다. 그 소리는 초원에서 불어오는 맑고 청아한 바람소리처럼 시원하게 오다가도 갑자기 사람들을 초집중하게 하는 찢어질 듯한 고음으로 공연장을 채우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고음 소리는 사람 소리가 아니라 마치 악기 소리처럼 들렸다. 한 가수가 동시에 여러 가지 높낮이의 소리를 함께 내면서 몽골의 서사시를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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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미. 민속공연의 하이라이트인 이 흐미는 독특한 발성법으로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 노시경


대지를 울리는 듯한 저음과 푸른 하늘에 닿을 듯한 맑은 고음이 동시에 발성되는 '흐미'는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린다. 한 사람이 동시에 완전히 다른 고음과 저음을 낸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고음과 저음의 소리가 높고 낮게 반복되는 것만이 아니고 자유자재로 고음과 저음을 왔다 갔다 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정말이지 이 색다른 창법은 전세계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창법의 진수이다.

몽골의 서쪽, 알타이(Altay) 지방에서 시작된 이 몽골 특유의 창법은 독특한 발성법으로 인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까지 등록되었다. 원래 이 음악은 덩치가 큰 남자들이 불러야 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다고 하는데, 오늘 공연에서도 풍채 좋은 남자 가수 한 명이 성대와 기도를 이용하여 '흐미'를 노래한다. 마치 그 소리는 대지 위에 서 있는 영혼을 두드리는 소리 같다.

'흐미'의 멋진 공연으로 극장 안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었다. '흐미'가 끝나자 마지막 공연으로 몽골 전통악기로 이루어진 전통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대합주가 시작되었다. 대합주에는 칭기즈칸이 출전 당시에 연주하게 했던 대마두금도 등장한다. 합주에서의 대마두금은 몽골인들의 삶의 애환과 행복을 전하는 대표적인 전통악기이다.

13세기에 고려 왕자가 원나라의 공주와 결혼하면서 전래된 우리나라 가야금인 야트그도 대합주에서 대표 악기로 연주되고 있다. 우리나라와 몽골 교류의 상징인 이 악기 소리는 우리나라 가야금과 다름없이 선율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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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관현악단 대합주. 다양한 현악기가 특색 있게 잘 어울리는 수준 높은 공연이다. ⓒ 노시경


이 몽골 민속 관현악단은 주로 독주곡을 연주하는 현악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많은 현악기가 모여 조화를 이루는 것이 어렵다고 들었는데, 각 현악기들이 특색 있게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관현악단 수준이 매우 높음을 알 수 있다. 다양한 현악기로 표현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악기 연주가 부드럽고 티가 없다. 마지막 공연까지 보는 내내 감탄을 하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나는 경험을 했다.

나는 몽골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이 몽골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어보면 밤하늘의 별을 보고, 초원에서 말을 탄 후 국립 아카데미 드라마 극장에서 몽골의 전통 민속공연을 꼭 보라고 말하고 싶다. 몽골의 역사와 문화를 품은 이 공연에서는 몽골의 드넓은 대지에서 돌진하는 야생마와 같은 몽골문화의 저력이 느껴진다.

하루의 지친 다리를 쉬며 조용히 앉은 상태에서 잘 준비된 공연을 보니 마음이 편안했다. 정말 원하던 것을 본 후의 뿌듯함 같은 만족감이 가슴 속에 퍼져 들어왔다.

공연을 보고 극장 밖으로 나오니 마음이 상쾌했다. 극장 밖에는 역시 몽골의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파노라마 같은 민속공연을 보고 밖으로 나오자 거리에서 만나는 몽골인들이 다르게 느껴졌다. 전과는 다르게 그들이 차원 높은 문화민족으로 다가왔다. 역시 여행은 상식과 편견을 깨는 만남의 연속이다. 나와 아내는 몽골에서의 마지막 만남을 향해 다시 길을 나섰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에만 송고합니다.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여행기 약 520 편이 있습니다.
#몽골 #몽골여행 #울란바토르 #국립극장 #흐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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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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