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에 쪽쪽? 유쾌하게 읽은 중2 이야기

[인터뷰] <꼰대탈출백서> 저자 임정훈 시민기자

등록 2017.02.08 21:17수정 2017.02.08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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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가 성년이 된 지 3년이나 지났다. 돌아 보건대, 우리 아이들은 무난한 축에 속한다.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순둥이들이다. 그럼에도 청소년기에는 일이 참 많았다.

딸과 별것도 아닌 것으로 한바탕 싸운 날 잠자다 말고 현관으로 달려가 신발이 제대로 있나(가출했으면 어떡해!) 확인하며 모진 말 퍼부었음을 자책하던 날도 있었다. 피어싱도 모자라 가운데 머리만 남겨 닭벼슬처럼 세우고 나타난 아이를 불량품 정도로 몰아 부친 적도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20여 년째 교사인 임정훈의 <꼰대탈출백서>(우리교육 펴냄)는 청소년 두 아이의 엄마 시절을 추억(?)하며 읽게 한 책이다.

'아무리 좋기로 수업시간에 짝꿍까지 바꿔 앉아 쪽쪽 거려? 하이고 요즘 선생님들 참 힘들겠다. 초등학생도 아닌 중2가 걸핏하면 수업시간에 똥을?' 밥은 굶어도 화장은 필사적으로 하겠다는 아이들이나, 선생님께 야동을 보겠노라 당당히 말하는 아이들 이야기인 1부, 정말 재밌게 읽었다.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유쾌한 웃음과 함께.

부모와의 문제로 가출했음에도 오직 급식에 목숨을 걸고 등교하는 아이나, 아버지를 죽이고 싶다는 각본을 쓴 아이, 쓰던 필통을 발기발기 찢는 것으로 어떤 감정을 조절하는 아이의 이야기는 아프게 남아 있다. 책상이나 자기 몸에 자해로 세상(어른들)을 향한 외로운 항변을 하는 아이들도 안쓰럽게 남아 있다.

둘째가 중1이 되면서 아이들과 별것 아닌 것들로 어긋나거나 충돌하는 일이 잦아졌고, 그로 아이들이 영영 잘못될지 모른다는 아득함에 성장소설 몇 권을 샀다. 아이들을 이해하는 어떤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덕분에 내가 아이들을 너무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다른 엄마들보다 많이 이해한다고 자부했는데 나도 어쩔 수 없는 꼰대란 걸 알게 됐다. 그리하여 <오마이뉴스>에 '1318 청소년을 위한 책', 연재를 시작했다. 아이들(청소년)에 대한 제대로 된 관심과 이해를 위해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책들과 청소년들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생각만큼 많이 소개하지도 못했고, 취지도 많이 살리지 못했지만 연재 덕분에 얻은 것들이 많다. 뭣보다 가장 큰 수확은 청소년들을, 아니 아이들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와중에 내 아이들도 태풍과 같은 청소년기를 비교적 무난하게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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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끼 밥, 급식의 힘이 거기에 있었다. 무상 급식은 가출한 학생도 학교에 나오게 한다. 이것이 진짜 '밥심'이다.-128쪽. ⓒ 임정훈


"요즘 애들이 얼마나 무서운데 그렇게 간섭해. 그러다가 무슨 일 당하려고! 저런 것들은 집에서도 포기한 것들이야. 그냥 경찰서에 연락해버려!"


연재를 하며 아이들 생각을 좀 알고 싶어 낯선 아이들과 자주 이야기했던 때문에 지금도 가끔 전혀 모르는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곤 하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이처럼 말하며 청소년들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는 그들과 가까이 걷는 것조차 '위험한 일'로, 청소년들을 금방이라도 터질 듯 위험한 폭탄 같은 존재로 간주하며 지레 경계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구나 청소년기를 지났으며, 지나는데 말이다. 이런 시각의 어른들이 안타깝고, 씁쓸하다.

그런데 사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난날 나의 모습이기도 하고 지금도 나도 모르게 자꾸 생겨나는 꼰대리즘은 어쩔 도리가 없다. 그래서 <꼰대탈출백서>를 더욱 많은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요즘 아이들과 요즘 교실 풍경을 이처럼 적나라하고 진솔하게 들려주는 책이 또 있을까? 공감하고 설득 당하며(?) 읽은 책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청소년기 아이들을 이미 키워낸 사람들은 아이들의 신선하고 건강한 에너지를 듬뿍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등학생이나 청소년기 아이들을 둔 부모들은 읽은 만큼, 책속 아이들에 마음 여는 만큼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어른들의 문제는 보지 못하고 청소년들을 우선 질타하는 어른들이나, 청소년들을 불순하고 위험한 존재로 우선 단정 짓고 마는 (앞에서 언급한) 어른들이 특히 많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부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했던 글들이란다. 연재 당시 워낙 많은 독자들이 읽은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자 스스로 독자들에게 이미 출간 소식을 알렸다(관련 기사: '오글오글' 중2병? 이들은 완벽한 '무죄'입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을 정리해 저자에게 물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다움을 요구만 하는 어른들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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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이나 고데기, 서클렌즈 등을 사용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불량품이나 문제아로 취급하고 징계대상으로만 바라보는 학교들의 낡은 사고방식은 진작부터 변해야 했다...-58쪽. ⓒ 임정훈


- 규칙과 학생 사이 '선생님'이란 존재가 참 힘들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가장 힘든 것은?
"'규칙' 때문에 힘들다. 학교는 너무 촘촘한 규칙으로 학생들을 옭아맨다. 2000년부터 감옥에서도 수인들의 머리를 깎지 않는다. 하지만 학교는 여전히 학생들의 머리부터 옷차림, 신발, 가방 등은 물론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기본적인 것들을 '학생답게'라는 우리에 가둬 아주 촘촘히 규제하고 단속한다. 그걸 '교육'이라 말하고 '생활지도'라고 부른다.

학생들 스스로 무언가 할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기다려주지 않는다. 근대 학교제도가 생긴 이래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최근 주목받는 혁신학교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외는 아니다. 그 속에서 무기력하게 순응하며 살아가는 학생들을 지켜보는 일이 교사로서 참 힘들다.

광화문에 나가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비판하는 촛불을 드는 교사조차도 교실에서는 독재자처럼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어라"며 명령하고, 군림하며 규칙을 강요한다. 그런 우화 같은 모습의 실재가 학교여서 우울하다."

- 수업 시간에 쪽~쪽! 커플, 쭈그려 앉아 고데하는 여학생이나 화장 못했다고 온종일 마스크 쓰고 공부한 학생, 눈 싸움 하고 학교에 오겠다는 아이…. 정말 각양각색의 아이들, 이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사회 또는 어른들에게 '학생들을 위한 변명'을 한다면?
"규칙만 앞세우면 이해되지 못할 아이들이 많지만, 규칙을 조금 접고 들여다보면 반짝이는 그들만의 무엇이 보여 덕분에 행복해지기도 한다.(웃음) <어린왕자>에 이런 말이 있다. '어른들도 모두 한때 어린이였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거의 없겠지만'. 또 <시민 불복종>으로 잘 알고 있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우리는 여전히 자라고 있는 어린이들이어야 하는데도 이미 보통 사람이 되어 있다'고 짚었다. 어른들이 가슴에 새겨야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는 학생들에게 '학생다움'을 강조하는 풍토가 있다.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답다는 것의 의미는 저마다 제각각인데 유독 학생에게만 그 '~다움'을 아주 질기게 강요한다. 스스로 성인이라고 말하는 어른들에게 '어른다움'을 강조하고 그에 어울리는 품격을 갖추라는 요구를 하지 않는 것과 선명하게 대비된다. 학생들을 학생이라는 제한된 틀에 가두고 그 안에서 정체불명의 '~다움'을 요구하는 어른들의 어른답지 못한 사고와 행동들이 변해야 한다. 문제는 어른들이다."

- 요즘 청소년들에게 가장 위험한, 그러니까 '독'은?
"어른들의 눈, 꼰대의 눈으로 보면 요즘 청소년들이 호기심을 갖는 모든 것들이 위험하고 불온해 보일 수 있겠다. 어른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한없이 위험하고 위태로워 보일 수 있는 학생들의 행동이나 문화를 책에 소개했다. 학교는 그런 것들을 사전에 엄히 금지하거나, 사후에 징계, 그것도 부족하면 학교에서 내쫓는 방식으로 문제의 해결을 꾀한다.

원인을 살펴 그에 어울리는 돌봄이나 배려로 접근하지 않고 응보적 관점으로 해결하려 든다. 그런 세상과 어른들의 폭력이 학교 안과 밖에 있는 모든 청소년들에게는 가장 큰 '독'이다. 충분히 실수하고 실패할 기회를 주는 게 어른들의 몫일 텐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런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청소년들은 제 나이에 어울리는 성장과정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 그걸 두고 세상과 어른들은 '너는 왜 그것밖에 못하느냐'고 '왜 어른답게 생각하고 행동하지 못 하느냐'고 꾸중하고 벌한다. 어른 되기를 강요한다. 그래놓고 정작 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면 그게 또 문제가 된다. '대가리 피도 안 마른 것들의 발랑 까진 일탈행위'로 간주하는 것이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청소년들에게 이보다 치명적인 독이 또 있을까."

"꼰대 탈출은 생각의 성장판을 자극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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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라는 제한되고 억압적인 공간과,열다섯 살이라는 아이도 어른도 아닌 어정쩡한 나이에 세상의 모든 것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이들에게 끊임없는 수다와 고백, 폭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덜 통해서 그들 나름대로는 아프고 즐겁게 성장하는 것이다. ⓒ 임정훈


- 몇 년 전까지 청소년 엄마였다. 학교규칙이 학생들과 거리가 많다는 걸 그때 느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개선해야 할 것은?
"학생들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소통, 반영해야 한다. 학교가 학생들의 입을 막아서는 안 된다. 약자의 비명이 강자에게는 불평불만으로 들린다고 한다. 학생들의 다양한 요구와 바람을 학교는 불평불만이라고 외면할 수 있지만, 학생들은 온 힘을 다해 지르는 비명일 수도 있다. 그 소리를 놓치지 않고 듣는 학교(교사)가 필요하다. 당연히 학교규칙은 교사나 학부모의 이해가 아니라 학생들의 요구와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 규칙은 촘촘하기보다는 두루뭉술 할수록 좋고,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게 더 낫다. 그러면 학교도 학생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다."

- 책 제목 <꼰대탈출백서>, 학생들의 꼰대(어른들의 사고방식이나 학교 규칙 등)로부터 탈출 그 몸부림을 담은 것으로도 읽히고, 어른들에게 꼰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 같기도 하고(그런 제목 같기도) 어떤 쪽인가?
"가장 제대로 읽고 이해하신 것 같다(웃음). 어느 한 쪽으로 의미가 기울지 않는다. 학생들이 학교와 사회의 꼰대들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독립'이고 '성장'이다. 반드시 가야할 길이다. 점점 꼰대가 되어가거나 이미 꼰대가 돼 버린 어른들에게도 꼰대 탈출은 생각의 성장판을 자극하는 일이다. 치매 예방이 될지도 모르겠다. 꼰대의 손바닥에서 벗어나 세대 간의 이해와 소통이 서로의 성장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 임정훈 선생님은 몇 % 짜리 꼰대인가? 교사로서 어쩔 수 없는 꼰대 함량을 덜어내려는 노력도 할 것 같다.
""저는 꼰대가 아닙니다"고 말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나도 꼰대다. 혈압이나 당뇨 수치를 조절하듯 꼰대지수(?)를 떨어뜨리려고 애쓴다. 100% 꼰대라면 차라리 편할 텐데, 그걸 거부하니 힘들다. 하지만 100% 꼰대가 절대 알 수 없는 세상을 만나고, 학생들과 소통하는 기쁨이 더 크다. 우리는 교사와 학생 사이가 너무 무겁다. 서로 존중하면서도 좀 더 가벼워지고 편해졌으면 한다. 신념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학생들과 잘 노는 만만한 교사가 되고 싶다. 그걸 통해 내가 그들을 또 그들이 나를 위로하고 토닥토닥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잘 노는 게 쉽지 않다."

- 교직 20여년. 초기 학생들과 학교, 지금의 학생들과 학교. 차이는 엄청날 것 같다. 다시 이런 책은 언제?
"<꼰대탈출백서>는 지난 2~3년간의 기록이다. 3년을 함께 지낸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마음 속에 옹이처럼 남아있던 것들이었다. 열다섯 살이라는 이유로 세상에서 너무 홀대받는 그들이 안쓰러웠다. 그들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이나 위로라 생각하고 즐겁고 아프게 쓴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다시 책을 쓸 수는 있겠다. 함께 지낸 사연은 차고 넘친다. 하지만 학생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데는 좀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지금은 '학교 공간'에 대한 다른 책을 준비 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월 2일 진행했다.
- <꼰대탈출백서>(임정훈 글과 사진)ㅣ우리교육 ㅣ 2016-12-20 ㅣ 14000원.

꼰대 탈출 백서 - 중2를 괴물 취급하는 어른을 위한

임정훈 지음,
우리교육, 2016


#꼰대탈출백서 #청소년(청소년 인권) #숲페(임정훈) #학교 #우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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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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