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배경으로 한 영화 <지슬>의 한 장면
자파리 필름
2003년 노무현 정권은 두 건의 과거 국가폭력, 제주 4·3과 수지 김 사건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명림로 403에는 제주 4·3평화공원이 있다. 10만여 평의 부지에 세워진 공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4·3 평화기념관이 눈에 들어온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에 1만 6천여 사료를 소장·관리하고 있는 기념관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서는 적게는 2시간에서 많게는 4~5시간이 걸린다.
짧지 않은 시간, 고통스러운 과거를 둘러본 관람객들은 출구에 도달할 즈음 녹초가 되곤 한다. 그러나 출구에 다다른 관람객들은 발길을 멈추고 한 영상을 바라보게 된다. 영상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등장한다. 영상 속 그는 2003년 10월 31일 현직 대통령으로서 55년 전 제주도에서 발생했던 이른바 4·3사건을 국가를 대신하여 사과하고 있다. 4·3사건이 무엇이기에 현직 대통령이 이미 55년이나 지나버린 일에 대해 사과한 것일까?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 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3월까지 약 5개월 동안 이루어진 초토화작전에서만 대략 2만 5000~3만여 명이 학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수다. 근래에는 제주 4.3을 반공이데올로기라는 이념과 제주인이라는 환상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특정집단의 대량학살로 일종의 제노사이드(genocide)로 보는 견해가 지지를 받기도 한다.
4·3기간 제주도에서는 무차별적인 학살이 자행되었다. 한 마을 전체를 학살하기도 했고 동굴 속에 수류탄을 던져 숨어있던 사람들을 모조리 죽이기도 했다. 그리고 연좌제의 일종인 '대살(代殺)'도 자행되었다.
토벌대는 무장대와 민중의 연계를 막는다며 중산간 마을 주민들을 해안마을로 강제 소개(疏開)시키고 100여 곳의 중산간 마을을 불태웠다. 소개령 후 마을에 남아있던 주민들은 무차별 학살을 당해야 했다. 해변마을로 소개해온 사람들 또한 가족 중 한 명이라도 없다면 '도피자 가족'이라 하여 총살을 피할 수 없었다. '대살'은 도피한(또는 도피한 것으로 간주된) 자를 대신해 부모와 형제를 죽였다는 의미다. 연좌제인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제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한다. 연좌제의 금지다. 많은 이들이 연좌제라면 "3족(三族)을 멸하라"와 같이 조선시대에나 존재했던 형벌이라 생각한다.
조선시대 기본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연좌제가 규정되어 있었다. 대역죄(大逆罪)를 저지르면 본인뿐 아니라 본인의 직계(直系)가족, 처가(妻家)의 직계가족 등 삼족을 멸하도록 했다. 더 나아가 9족에게까지 연대책임을 물어 죽이거나 귀양을 보내기도 했다.
가족의 일원이 저지른 잘못을 가족 구성원에게까지 묻는 연좌제는 대표적인 전근대적 형벌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이라는 현대의 역사에도 대살과 같은 연좌제가 버젓이 자행되었다. 오히려 조선시대의 연좌제는 경국대전이라는 법률에 따라 집행되었지만 제주 4·3은 법률도 무시된 채 무차별적으로 자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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