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멸치볶음

맛의 기억

등록 2017.04.02 11:35수정 2017.04.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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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매일 차려주시는 밥상, 우리는 그 어머님의 밥상을 어머니의 의무라고 여겨서 당연한 듯 받기만 했습니다. 그 어머니의 방상에 지금이라도 칭찬과 감사가 필요합니다. ⓒ 이안수


#1


미국에서 수의사로 일하고 있는 딸을 둔 어머님이 오셨습니다.

따님은 한국에서 수의학과를 졸업하고 다시 미국으로 건너가 수의대학원을 졸업하고 수의사 국가자격시험에 응시해야 하는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에야 동물병원에 취업해 자리를 잡은 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엄마, 갑자기 멸치볶음이 먹고 싶네. 보내줄 수 있겠어?"

이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갖은 정성을 다해 만든 멸치볶음을 부쳤습니다.


다시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멸치볶음 잘 받았어. 고마워. 그런데 엄마가 만든 거 아니지?"


당황한 어머님이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내가 아니면 누가 만들어줄 수 있겠어."

#2

"따님의 입맛이 변한 건가요?"

저의 물음에 어머님께서 자초지종을 말씀하셨습니다.

"딸의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고 미국까지 보낼 그 반찬을 잘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요즘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레시피를 찾아서 조리했습니다."

딸이 기억하는 엄마의 맛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저의 멸치볶음은 고춧가루를 사용해요. 기름에 고춧가루를 넣고 약불에 타지 않게 조심스럽게 볶은 다음 멸치를 넣고 간장과 설탕을 반반씩 넣어습니다. 이것에 제 스타일에요. 고추장 양념을 보글보글 끓이다 멸치를 넣는 법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고춧가루 멸치볶음은 제가 이렇게 하면 맛있겠다고 여기는 고유한 방식이에요."

그런데 왜 미국 딸의 요청에는 그 엄마 방식을 따르지 않았을까?

"우리 가족들은 칭찬에 인색해요. 제가 평생 음식을 해주었어도 남편은 한 번도 맛있다는 소리를 한 적이 없어요. 남편의 그 성격을 닮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고요. 상을 차릴 때마다 속으로는 가족들이 내 음식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 함이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좋다, 싫다'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식탁 앞에서 항상 조용한 가족이었지요."

돌이켜보면 음식은 단순히 허기의 충족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욕망과 결핍, 증오와 화해, 향수와 인정 등 모든 것이 각인된 기억의 창고인 셈이지요.

"만약 딸이 그때 '엄마, 이거 맛있네'라고 한마디만 해주었어도..."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엄마 #손맛 #멸치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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