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복 옥중서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돌베개
저자 신영복 선생은 2016년 1월 15일 향년 75세로 별세했다. 오랜 수인 생활로 햇빛을 받지 못해 걸린 희귀 피부암인 흑색종이 전이되었기 때문이다. 감옥에서 자살하지 않고 삶의 희망을 붙들며 감사한 이유가 '신문지 크기의 햇볕' 때문이라던 선생의 글귀가 떠올라 가슴이 먹먹하다.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 낸 전형적인 반공이데올로기 희생양이다. 1968년 8월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남산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간첩"이 되어 사형을 언도받고 무기수로 20년 20일간 옥중 생활을 했다.
통혁당 잡지 <청맥>의 핵심 멤버 중 한 사람이던 선배 김지락을 만난 일, 선생이 이끌던 대학 독서모임, 연합서클 세미나 지도 이력이 모두 "반국가단체 구성죄"가 되었다. 육군 중위였던 선생은 군사 재판을 통해 1심과 2심에서 사형이 선고되고 마지막에 무기형이 확정되어 긴 징역살이를 시작한다. 스물일곱 음력 생일날 잡혀 들어가 마흔일곱 음력 생일인 88년 광복절에 특별가석방으로 출소했다.
남한산성(육군교도소)에서 만난 것은 '죽음'이었습니다. 함께 생활하던 사형수 중 다섯 명이 사형 집행되었고 한 사람은 그곳에서 타살되었습니다. 나도 물론 사형수였습니다. - 담론 210쪽"노예지 뭐. 교도소 특유의 그 묵직한 악취, 회색 벽과 나이 많은 간수의 발을 씻기는 젊은 재소자. 그 옆에 내가 쪼그려 앉아 있으면서, '역사가 썩는 듯한 교도소 냄새, 이 끔찍한 풍경 속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겠나!' 그런 암담함을 느꼈죠. "
인터뷰어 이진순과의 <한겨레> 인터뷰에서 선생은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긴 징역살이 동안 선생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과 조건은 스승이자 사색의 도구이며 감사의 조건이 됐다.
선생은 자살 충동이나 절망을 가족에게 내비치지 않았다. '편지를 검열하는 교도소나 국가권력 앞에, 좌절하거나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고 한다. 백기완 선생이 감옥에서 입으로 되뇌며 천장에 눈으로 '묏비나리'를 써 내려갔듯이 선생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수없이 가다듬고 또 가다듬어 엽서에 옮겨 적었다. 옥중 서간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렇게 쓰여졌다.
박 전 대통령은 유신공주로, 역사적으로 비틀린 시간과 공간 속에 너무 오래 자기를 가두고 살아왔다. 대통령이 되어 역사를 유신 체제로 되돌리려는 헛된 망상을 품고 그릇된 사고 속에 자신을 가두고 고착되었다.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고 과거 박정희의 정치적 역사적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으며 역사와 사회를 바로 보고 배우려는 소통의 의지가 없었다.
반면 겸손한 배움의 자세와 열린 마음을 지녔던 신영복 선생에게는 모든 것이 성찰과 성장의 기회이자 디딤돌이 된다. 선생에게 감옥은 또 다른 학교이자 사람을 배워가는 열린 문이었다.
'어린 시절이나 책갈피 속에서 얻은 왜소하고 공소(空疏)한 그릇에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내용물을 채워주는 것은 역시 생활의 현장에서 직면하는 각종의 체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징역살이는 그것의 가장 적나라한 전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육순 노인에서 스물두어 살 젊은이에 이르는 스무남은 명의 식구(?) 가 한방에서 숨길 것도, 내세울 것도 없이 바짝 몸 비비며 살아가는 징역살이는 사회, 역사. 의식을 배우는 훌륭한 교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체의 도덕적 분식(扮飾)이나 의례적인 옷을 훨훨 벗어버리고 벌거숭이 이(利), 해(害), 호(好), 오(惡)가 알몸 그대로 표출됩니다. 알몸은 가장 정직한 모습이며, 정직한 모습은 공부하기에 가장 쉽습니다.' - 223쪽 감옥은 교실. 1982.10.23.박 전 대통령이 이 책을 통해 감방에서 더 이상 올림머리를 할 수 없듯 의례적인 거짓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정직한 모습으로 참삶을 배우기 바란다. 갇힌 사고의 틀을 깨트리고 가려진 눈을 뜨고 마음의 문도 열어 역사 사회를 배우고 사람살이가 무엇인지 깨우쳐 가기를 바란다.
진실한 자아와 만나는 자기 성찰의 시간을 통해 민중을 속이고 기만한 죄를 씻어내고 속죄하는 시간들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민중과 무고한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빚진 마음으로 주어진 삶의 시간 동안 진실로 감사하기 바란다.
신영복 선생은 한겨울엔 신문지만한 크기의 햇빛을 통해 자살 충동과 절망을 극복하며 감사했다. 또 한여름엔 찜통 감방에서 함께 몸을 부대끼는 타인을 미워하게 될까 봐 자신을 추스르고 마음을 다스렸다. 물론 6인이 써야 할 방을 혼자 사용 쓰는 박 전 대통령에게 칼잠을 자며 인간의 체온을 통해 미움을 다스리는 혹독한 형벌의 수업 기회는 주어지지 않을 것이지만.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 징역의 열 가지 스무 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은 단지 37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 6쪽박 전 대통령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책의 갈피갈피를 넘길 때마다 악어의 눈물이 아닌, 진정한 참회와 반성의 눈물을 흘리길 바란다. 스무 해가 넘도록 열악한 감옥의 생활을 견뎌내면서도 눈부신 사색의 길을 걸어 온 선생의 삶을 통해 인간의 영혼은 그 누구도 그 어느 곳에도 가둘 수 없음을 깨치길 바란다.
하지만 그런 선생의 육신을 가둔 기나긴 징역살이가 선생의 육신을 앗아갔다. 결국 선생의 생명을 빼앗아 간 것은 박정희 정권인 셈이다. 그런 아버지 박정희를 우상화하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통해 역사 왜곡을 서슴지 않던 박 전 대통령에게 선생이 감방에 갇혀 스무 번째 옥중 세모를 맞으며 제수씨에게 쓴 엽서를 소개한다.
스무번째 옥중 세모를 맞으며- 제수님께87년이 저물면 88년이 밝아오고88년이 저물면89년이 밝아오고89년이 저물면90년이 밝아오고90년이 저물면91년이 밝아오고91년이 저물면92년이 밝아 오고(중략)96년이 저물면97년이 밝아오고98, 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387쪽2017년이 저물면2018년이 밝아오고2018년이 저물면 2019년이 밝아오고2019년이 저물면2020년이 밝아오고2021, 2022, 2023......아마도 박근혜 역시 세모를 맞을 때마다 이렇게 셈할지도 모르겠다. 그때마다 이데올로기 희생양이 되어 억울하게 무기수로 징역살이를 해야 했던 아름다운 영혼을 떠올리며 미안함과 감사의 마음으로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정연순 회장도 '박근혜에게 권하고 싶은 책'으로 신영복 선생의 이 책을 소개했다. 정 회장은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 역사를 아름답고 가슴 뛰게 만들었는지 박근혜 전 대통령이 돌이켜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며 "지금 당신이 TV도 보고 감방의 환경이 나아진 것은 감옥에서 조차 끊임없이 사람의 권리를 위해 싸워온 용기 있고 정의롭고 아름다운 사람들 덕분이라는 것을 기억해 달라"는 부탁도 잊지 않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돌베개,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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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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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살이는 훌륭한 교실"... 박 전 대통령에게 도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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