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릿느릿 걸으며 살금살금 봄 마중가듯 걷는 길

성심원과 성심인애원

등록 2017.04.11 09:43수정 2017.04.11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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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산청군 산청읍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으로 성심교를 건너며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이다. 마을은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성심원과 성심인애원으로 어우러져 있다. ⓒ 김종신


마실가듯, 소풍 가듯 4월 7일 가볍게 걸었다. 경남 산청군 산청읍으로 들어가기 전 왼편으로 성심교를 건너며 '바람이 불어오는 마을'이다. 마을은 한센인과 중증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인 성심원과 성심인애원으로 어우러져 있다.

경남 산청 성심원 십자가의 길 시작점. ⓒ 김종신


다리를 건너 왼편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중증장애인 생활시설인 요양원 건물 맞은편 가정사 4동 앞으로 갔다. 십자가의 길 시작점이다. 십자가의 길 14처 각 장면은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고 십자가를 지고 골고타의 죽음에 이르는 중요한 사건을 역은 내용을 형상화한 조형물이다. 비록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길을 따라 걸었다.


하얀 벚꽃 한 송이 나를 살포시 내려다본다. ⓒ 김종신


건물 주위에 영산홍 꽃봉오리들이 곧 환하게 진분홍빛으로 주위를 물들일 준비를 한다. 초록 잎이 세상에 활짝 펴기 전 수줍은 모양으로 반긴다. 하얀 벚꽃 한 송이 나를 살포시 내려다본다.

가을에 노랗게 물들었을 은행나무는 잎사귀를 떨구고 민낯이다. ⓒ 김종신


가을에 노랗게 물들었을 은행나무는 잎사귀를 떨구고 민낯이다. 그 아래 노란 민들레들이 병아리떼처럼 옹기종기 앉아 있다. 민낯의 은행나무 사이로 햇살이 곱게 드리운다. 뒤편으로 벚나무들이 팝콘같은 선분홍빛 꽃들을 축포처럼 피웠다.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본다. 딱 봄이다. 향기도 빛깔도 봄이다. ⓒ 김종신


아름드리 벚나무 아래에서 하늘을 본다. 딱 봄이다. 향기도 빛깔도 봄이다. 바람 한 점에 하늘에서 꽃눈이 내린다. 사월에 맞는 크리스마스처럼 기분 좋다.

가는 길 곳곳에 들풀들이 연둣빛으로 출렁인다. ⓒ 김종신


가는 길 곳곳에 들풀들이 연둣빛으로 출렁인다. 연둣빛 물결에 봄 멀미를 할 듯하다. 봄까치꽃이 진정하라며 박하사탕을 건네듯 하늘색으로 달랜다.

어느새 소나무들로 가득한 숲으로 들어섰다.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는 14처 조형물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 김종신


어느새 소나무들로 가득한 숲으로 들어섰다. 십자가의 길에서 만나는 14처 조형물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는다. 푸른 소나무가 주는 짙은 그늘이 시원하다. 긴 의자에 쉬었다.


십자가의 길 끝에는 붉디붉은 동백꽃이 반긴다. 프랑스 루르드의 한 동굴에서 발현하신 성모님을 재현한 루르드 성모상이 동백나무 사이로 있다.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지나가는 경호강을 바라본다.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숨을 고르고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 김종신


숨을 고르고 다시 왔던 길을 걸었다. 십자봉으로 가는 갈림길에서 왼편 지리산둘레길 산청센터로 걸음을 옮겼다. 샛노란 유채꽃이 뜨락에서 햇살 샤워 중이다. 진보라 빛 광대나물들이 작은 마을을 이룬 듯 길 가장자리를 뒤덮는다.

진하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주빛 목련이 더욱 빛난다. ⓒ 김종신


진하게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자주빛 목련이 더욱 빛난다.

아래를 내려다 보자 하얀 벚꽃 사이로 성심원 대성당이 보인다. 그 아래 수녀님들이 봄을 휴대폰과 사진기에 담고 있다. ⓒ 김종신


아래를 내려다 보자 하얀 벚꽃 사이로 성심원 대성당이 보인다. 그 아래 수녀님들이 봄을 휴대폰과 사진기에 담고 있다.

개나리꽃이 마치 하늘의 별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다. ⓒ 김종신


아름드리 벚나무로 내려가는 길은 노란 개나리 사이로 납골묘원을 지난다. 개나리꽃이 마치 하늘의 별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있다. 별처럼 떨어진 개나리 사이로 벚나무 아래 평상에 앉았다.

바람 따라 꽃눈이 내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밑바닥이 온통 하얗다. ⓒ 김종신


바람 따라 꽃눈이 내린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는 소설 <설국>의 첫 문장처럼 밑바닥이 온통 새하얗다. 하늘을 배경으로 꽃눈을 내리는 벚나무를 넋 나간 사람처럼 보고 또 보았다.

수녀원 앞에는 편백은 커다란 해시계처럼 서 있다. ⓒ 김종신


대성당 벚나무들과 작별하고 수녀원 쪽으로 내려갔다. 수녀원 앞에는 편백은 커다란 해시계처럼 서 있다. 독신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프란치스코의 집 2층 화단에는 밝게 붉은 복숭아꽃이 옆으로 키 작은 순으로 4그루 앙증스럽게 서 있다.

요양원과 가정사 사이 소나무들이 생동하는 봄을 앞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한창이다. ⓒ 김종신


요양원과 가정사 사이 소나무들이 생동하는 봄을 앞두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한창이다. 느릿느릿 걸으며 살금살금 봄 마중을 했다. 묵은 고민을 흘리기 좋은 걷기 좋은 산책로에서 싱그러운 봄기운을 가득 담았다.

덧붙이는 글 산청군블로그
<해찬솔일기>
#성심원 #성심인애원 #봄맞이 #십자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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