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동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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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한무제는 전제 통치를 확고히 해, 자신의 후손들이 안정적으로 한나라 황제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한무제의 심중을 꿰뚫은 정치가 동중서가 한무제의 입맛에 맞게 만든 사상이 바로 법가 이론을 유학으로 살짝 포장한 '신유학' 사상입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한나라 동중서가 만든 사상을 '신유학'이라 부르면서 공자가 만든 원래의 '유학'과 구분합니다. 한국에는 '신유학'이 전해졌기 때문에 한국 사람은 공자의 유학과 동중서의 신유학을 구분하지 않고 유학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요. 중국 사람은 공자의 유학과 동중서 신유학은 전혀 다르다고 여깁니다.
공자는 논어에서 초자연적인 하늘의 일이나 사람이 죽은 후의 일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세상일을 해결하는 이데올로기로 '인'이라는 사상을 만듭니다. 하지만 한나라 한무제와 동중서는 하늘을 인정하고 하늘의 신이 황제와 대화(감응, 感應)한다는 '신유학'을 만듭니다.
동중서는 세상을 올바르게 이끌어가는 초자연적인 뭔가가 있으며, 그 초자연적인 무엇이 하늘(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늘(天)이 세상을 관리하는데, 바로 이 하늘의 아들이 천자(天子), 즉 황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황제는 사람이긴 하지만, 하늘의 아들 천자(天子)이기 때문에 하늘의 명령을 대신해 법을 만들어 나라를 통치한다고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황제도 사람인데 어떻게 하늘의 아들이냐고 의심하자, 동중서는 음양오행설을 인용해 천인감응설(天人感應說)을 만듭니다. '황제는 하늘과 대화하며 하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통치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황제의 권위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황제의 명령이 곧 하늘의 법이니 백성은 황제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한비자의 법가 이론에 정당성을 더하는 방법으로 유교가 이용된 거지요. 한나라 황제 한무제 입장에서는 동중서의 이런 '신유학' 사상이 마음에 쏙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한무제는 '신유학'을 국가의 기본사상으로 정하게 되고, 동중서의 '신유학'은 그후 중국 전제사회의 전통사상이 돼 2000년 동안 이어집니다.
법이 권위를 얻는 방법국가 통치자가 아무리 '황제가 하늘의 아들이고 그래서 황제가 만든 법이 하늘의 법이니, 백성은 반드시 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해도 백성이 법을 지키지 않자, 국가 통치자는 법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엉뚱한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중국 명나라 교지와 조서(봉건시대 통치자가 신하에게 주는 임명장과 국가정책 지시서) 첫 문구는 항상 '하늘의 뜻을 황제가 전한다'라고 시작합니다. 하지만 황제가 하늘의 뜻을 대신해 백성에게 명령한다는 사실을 백성들이 믿지 않자, 좀 더 적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인 방법으로 황제의 권위를 세우게 됩니다.
명나라는 황제의 교지나 조서를 신하에게 전달할 때, 교지나 조서를 넣은 상자를 끈으로 매달아 승천문(현재의 중국 천안문)에서 아래로 내려보내고, 신하는 승천문 아래에서 두 무릎을 꿇고 마치 하늘의 명을 받듯 두 손으로 받게 합니다.
여담으로 승천문에서 끈에 매달린 상자를 아래로 내려보내던 관리가 실수로 끈을 놓쳐 상자가 땅에 떨어져 깨지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의 뜻을 제대로 땅에 전하지 못한 관리를 죽일지 살릴지 논쟁한 기록도 있답니다.
사회적으로는 <육전통고> 법전, 개인적으로는 <뇌규> 책중국에서 '신유학'은 이후로도 점점 발전해 세밀한 철학으로 완성돼 개인 일상생활과 정부 행정 법규의 기본 지침이 됩니다. 청나라 시대 염진형이란 사람이 '신유학'을 기본 지침으로 하는 방대한 일상생활 도덕과 행정 법규를 13년 동안 정리해 <육전통고>를 만듭니다. 개인의 생활과 정부의 행정이 <육전통고> 내용대로 행해지고 시행된다면 세상은 천국이 되는 거지요.
하지만 동시대에 <뇌규(賂規)>라는 책도 만들어집니다. '뇌규'는 현대어로 '뇌물'이라는 의미입니다. <뇌규>는 관리의 지위에 따라, 또 계절(연말연시, 명절)에 따라, 또 사업의 규모에 따라, 또 죄의 종류에 따라 얼마의 뇌물이 필요한지 세부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뇌물 금액 지침서입니다.
그러니까 동시대에 어떤 사람은 신유학 도덕과 행정 법전 <육전통고>를 만들고, 또 어떤 사람은 뇌물 지침서 <뇌규>를 만든 거지요. 아마도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어떨 때는 법전 <육전통고>를, 또 어떨 때는 뇌물 지침서 <뇌규>를 인생 지침서로 삼아서 세상을 살았을 겁니다.
필요에 따라 결혼하고 이혼합니다공자가 꿈에도 그리워했다는 주나라 주공의 책 <주례>에는 '예는 서민들에게 베풀지 않고, 형벌은 사대부에 미치지 않는다(礼不下庶人,刑不上大夫)'라고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 있습니다. 인(仁)을 실행하는 예(禮)는 일반 백성과는 관련이 없고, 법을 지키는 일은 지배계급과는 관련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지배계급은 예(禮)를 알기에 법이 필요 없고, 일반 백성은 예(禮)를 모르기에 법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은 자신이 속한 위치와 상황에 따라 법을 지킬 수도 안 지킬 수도 있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자신과 상대방의 권리를 서로 보호하기 위해 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이 필요하다면,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게 나의 이익과 관련이 없다면 당연히 법을 준수하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