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투어 한번 해 봐? 나를 자극한 책

[서평] 전통시장 활성화 방안으로 나온 <대한민국 전통시장 100>

등록 2017.04.19 10:06수정 2017.04.19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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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전통시장 100> 책표지. ⓒ 가디언 출판사

남창옹기시장(울산광역시 울주군)의 노점 풍경입니다. 깻잎을 봉지에 담으려다 젊은 여자에게 뭘 물어보는 빨간 조끼 할머니와 여러 개의 배 무더기 앞에서 고민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기다리고 서 있는 할머니, 손님이 없어 따분하신지 턱을 괴고 안아 있는 노란티셔츠 할머니, 이들 뒤에서 웃음꽃을 피우며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등 정겨운 모습에 한참 동안 본 사진입니다.

흰색 옷을 입은 여자가 "저건 얼마예요?"라고 다른 채소를 물어보다가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돌려 대답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여자는 아마도 가격도 묻지 않고 깻잎을 달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양이 많다 싶어 "0천원어치인데 다 줄까?" 묻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사는 저 여자도 아마도 나처럼 재래시장을 좋아하나 보다 지레짐작해봅니다.


<대한민국 전통시장 100>(가디언 출판사)은 현존하는 우리나라 전통시장(재래시장)100곳을 탐방한 책인데요.

어떤 시장들이 있을까(소개됐을까)? 내용을 읽기에 앞서 호기심으로 넘겨 훑다가 큰 애를 업고 다니던 때부터 20여 년간 이용하고 있는 원당시장(고양시 덕양구 성사동)의 낯익은 노점들과, 여러 사람들이 어우러진 풍경, 시장에서 들을 수 있는 소리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사진 한 장을 보며 이런저런 상상을 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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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창옹기시장의 노점. ⓒ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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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서문시장 국수거리에서 국수를 먹고 있는 사람들. ⓒ 박재영


또 다른 사진을 소개합니다. 시골 오일장의 추억을 풍성하게 간직하게 한 내 고향 원평장(4일과 9일, 전북 김제시 금산면 원평 일대)에서 팥죽(팥칼국수) 먹던 때가 떠올라 앞에서 소개한 사진과 함께 한참 봤던 사진인데요. 지난해 12월, 화재로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 대구서문시장(대구광역시 중구 큰장로), 그 시장의 국수거리라고 합니다.

대구서문시장 국수거리 또는 국수골목에서 유명한 것은 칼제비(칼국수와 수제비)라고 하네요. '양이 풍부하고 가격도 저렴한 서문시장의 칼제비는 점심때에는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153쪽)'고요. 한 달 전쯤, 화재로 문을 닫았던 서문시장 야시장이 다시 열렸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오더군요.

조선시대 선조 때 형성되어 한때 8대 장 중 하나였다는 말까지 있는, 3·1만세 현장이자 동학농민군들이 장날을 이용해 궐기했을 정도로 비중이 컸던 내 고향 원평장은 이제 쇠락할 대로 쇠락해버려 아쉬움이 크기만 합니다. 사진 속 장소가 화재로부터 벗어났는지 잘 모르겠는데, 그곳에 가 사진 속 사람들처럼 앉아 먹어도 보고, 오일장 추억도 정리해 보고 싶네요.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곤 합니다. 장날 아침이면 어른들 사이에 번지곤 하던 잔칫날을 앞둔 날의 설렘과 비슷한 그런 기분 좋은 술렁임이. 5일마다 어김없이 열리는 장인데도 장날마다 장날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고 어른들의 기분이 들떴던 것은 지난날 우리의 시장들이 물건을 사고파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겠지요.

지난날 우리 삶의 중요한 현장이었던 시장들은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급속하게 진행된 도시화로 지방인구가 줄면서 쇠락하거나 없어지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특히 내 고향 원평장처럼 지방의 토속적인 오일장들이 많은 영향을 받았는데요.


1990년대 등장해 우리의 소비패턴을 바꾼 대형할인마트나 체인점 슈퍼마켓, 2000년대 이후 급속하게 팽창한 인터넷시장 등으로 도시의 전통시장들까지 쇠락하거나 없어지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다행히 최근 정부의 지원과 지방자치나 관련 단체들의 노력으로 저마다의 특징 있는 공간으로 거듭남으로써 활기를 띠고 있는 시장들이 늘고 있습니다. 1913 송정역시장이나 전주남부시장처럼 청년몰을 도입하거나, 서귀포매일올레시장이나 정선아리랑시장처럼 관광지나 특산물, 축제와 연결함으로써 활로를 찾은 문화관광형시장들도 늘고 있고요.  

'안성장은 대구장, 전주장과 더불어 3대 시장으로 꼽힐 정도로 상업 활동이 왕성했다. 객주들이 즐비했고, 장날이 되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의 시장에 없는 것이 안성장에 있다', '안성장은 서울의 시장보다 두세 가지 더 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허생전>의 허생이 물건을 매점매석하기 위해 안성장을 찾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물류의 중심지로 호황을 누리던 안성장은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쇠락하기 시작했다. 1905년에 부설된 경부선이 안성을 비껴 평택과 대전을 지나면서 물류를 위한 지리적 이점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안성의 경우 오늘날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남사당놀이가 유명했다. 안성의 남사당놀이가 오늘날까지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안성장의 규모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86쪽~88쪽

추억 많은 내 고향 오일장에 대한 남다른 추억과 아쉬움 때문에,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와 장점들 때문에 대형마트보다 선호하는 재래시장을 다룬 책이라 어떤 책보다 반갑게 읽었습니다. 이런 이 책의 눈에 띄는 장점 중 하나는 그 시장만의 특산물과 함께 그 시장만의 역사를 풍성하게 들려준다는 것입니다.

전국적으로 전통시장은 1800여 개. 이중 오랜 전통을 이어오며 역사적 의미와 가치가 큰 전통시장 100곳을 우선 선정했다고 하는데요. 몇몇 시장에 그치지 않고 100곳 시장 모두의 역사를 들려줍니다.

덕분에 남대문시장, 종로광장시장, 서울평화시장, 성남모란민속시장과 같은 서울·경기권 규모 크고 유명한 시장들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시장의 역사를 알게 됐는데요. 그간 궁금했으나 쉽게 알 수 없었던 여러 시장들의 역사를 언제든 펼쳐볼 수 있어서 좋네요.

시장구경과 함께 절대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 시장 소개를 하면서 빠뜨리면 절대 섭섭한 것이 먹을거리에 대한 것이지요. 그 시장에서만 맛볼 수 있거나 그 시장을 대표하는 유명한 먹거리들을 100곳 시장 모든 편에서 소개하는 것도 이 책의 두드러진 특징이랍니다.

'화평동 냉면거리는 한국전쟁 이후에 형성된 거리이다. 그러나 인천 냉면의 역사는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으로 답동에 있던 사정옥이라는 냉면집은 일본인들도 단골로 삼을 정도로 유명했다. 심지어 서울 명동에서도 장거리 전화를 걸어서 냉면 배달을 시킬 정도였다. 한때 냉면 수십 그릇을 자전거나 기차를 이용해 서울로 배달했다고 전한다. 초기에는 냉면 가격이 5전이었다. 이런 인천 냉면의 명맥을 이은 것이 화평동 냉면이다. 화평동 냉면에 세숫대야라는 수식어가 붙은 것은 냉면이 세숫대야처럼 큰 그릇에 나오기 때문이다. 그릇의 크기에 걸맞게 면과 육수, 고명이 듬뿍 들어 있다. 메밀과 고구마전분을 섞어서 뽑은 면으로 만든 냉면으로, 육수는 양지머리를 푹 삶아서 낸다. 여기에 열무김치를 비롯해 계란, 양배추, 오이, 당근 등의 채소가 푸짐하게 얹어진다.' - 111쪽.

교통사정은 시장 형성과 발달에 중요한 요소인데요. 예로부터 해상과 육상이 발달한 인천지역은 그래서 많은 물자들이 모였고, 일찍부터 여러 시장들이 발달했다고 합니다. 개항 무렵부터 중국과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관련 근대 건축물들도 많이 세워졌다고요. 그래서 인천국제신포시장(인천광역시 중구) 주변에는 우리나라 근대 역사를 품고 있는 건축물들이 많다고요.

또 다른 특징은 시장탐방과 함께 들르면 좋을 시장 주변 볼거리들을 함께 소개한다는 것. 누구나 스마트폰 하나로 많은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그 정보와 닿지 못하면 모르는 것은 여전히 모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정보의 간극이 커질 수밖에 없고요. 시장 주변 볼거리까지 알려줌이 참 유용하게 와 닿네요.

QR코드를 수록한 것도 책의 특징. <대한민국 전통시장 100>은 전통시장 지원 방안 하나로 소상공시장진흥공단과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공동으로 기획, 2016년부터 공개하기 시작한 국내 유일의 콘텐츠 '국내 시장 백과'를 바탕으로 한 책입니다. 네이버에 훨씬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모든 시장편에 QR코드를 수록함으로써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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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양식의 답동성당. 신포시장 인근에는 근대건축물들이 많다(책속 설명) ⓒ 박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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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후 1945년경으로 추정되는 양평장의 모습. 시장은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였을 뿐만 아니라 축제의 장이기도 했다.(네이버 국내 시장백과 설명) 책에 실리지 않은 사진이지만 100곳 시장 모두에 수록된 QR코드를 통해 접근, 만날 수 있는 사진이다. ⓒ 양평군청


앞서 소개한 사진 두 장처럼 재래시장을 느낄 수 있는 생생한 시장 사진들이 많아 보는 재미가 남다른 책이기도 합니다. 책에 의하면 무려 500여 컷. 이미 한 달 전에 모두 읽은 책인데, 사진 보는 재미에 다 읽고서도 책장에 꽂지 못하고 때때로 펼쳐보며 시장 구경하듯 보고 있는 책이랍니다.

아마도 현존하는 유일한 재래시장 가이드인 이 책을 길잡이 삼는 사람들이 많아져 재래시장에 발길이 넘쳐나길 기대해 봅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 전통시장은 현재 1800여 곳. 현존하는 모든 시장들을 소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100곳은 좀 적다 싶네요. 2권을 기대합니다.
덧붙이는 글 <대한민국 전통시장 100 >(글: 이경덕. 사진: 박재영) | 가디언 | 2016-12-19 | 정가 25,000원.
#전통시장(재래시장) #국내 시장 백과 #시장풍경 #장날 #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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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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