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생인 나에게도 결정권이 있다니...

[매실이의 독일살이 노동일기-3]

등록 2017.04.19 11:50수정 2017.04.2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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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 호텔 조식서비스 일을 시작하다


예상치 않게 시작된 독일 사회에서의 나의 첫 노동은 관광지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호텔에서 조식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내가 일하게 된 호텔 사장은 하이델베르크에 4개의 유명 호텔을 운영했다. 하이델베르크 성 앞, 시내거리 두 개, 시청 앞 하나.

각 호텔마다 매니저는 달랐지만, 조식 시스템은 똑같아서 한 군데서 일을 배우면 어느 호텔에서든 일을 할 수 있었다. 한 주일 전쯤 근무일정이 나오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다면 미리 조정할 수 있었다. 호텔 조식은 오전 7-11시에 진행되는데 빵, 치즈, 잼, 과일, 케잌과 음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숙박객들의 편의를 살피는 일이었다.

처음 나에게 일을 알려준 Eva라는 친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호텔 매니저로 일했다. 서비스업에 종사해서일까 굉장히 밝고 명랑한 친구였다.(뭔가 보기 드문 부류의 독일 친구) 첫 날 만난 에바는 화려한 꽃문양의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일터에서 요구되는 의무복장인가 싶었는데, 원래 화려한 옷을 굉장히 좋아하는 친구였다.

후에 일하면서 나 또한 복장에 대해서는 통제없이 자유로웠다. 나는 조식서비스가 시작되는 오전 7시까지 출근하면 되었고, 담당 매니저가 1차 뷔페는 모두 준비해놓는 방식이었다. 조식 마감인 오전 11시까지 뷔페의 음식들을 살피며 부족한 것들을 채워놓고, 숙박객들이 원하는 차나 커피를 제공해주거나 식후 테이블을 정리하고 식기 세척기에 넣는 일을 도맡아 했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알바를 해봤던지라, 업무가 어렵게 느껴지진 않았다. 첫 날 에바에게 설명을 듣고서는 바로 다음 날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독일에서 말하는 '미니 잡'은 파트타임 형식의 아르바이트로 월 최대 450유로를 벌 수 있고, 노당자가 별도의 세금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보통 학생 또는 주부 계층이 주로 미니잡에 종사하고 있었다. 첫 날 슐로스 호텔에서 일을 배우고, 둘째날은 시청 앞 호텔로 출근하여 인상 좋은 매니저 Fabian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선 일을 시작했다. 아! 첫 급여를 받았을 때의 그 뿌듯함이란...

내가 일하는 4시간은 온전히 내 결정권 안

2주 정도의 적응 기간동안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고, 일의 속도가 생각만큼 늘지는 않았다. 각 호텔마다 물건이 정리되는 형태나 커피머신 사용법도 달랐고, 또 매니저마다 조식 제공하는 스타일이 약간씩 달랐다. 심지어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방식도 달랐다.

Hilfer(보조)인 나는 일을 익힐 때까지는 각 호텔의 방식을 따라야했으므로, 꼼꼼히 보고 듣고 배웠다. 한국에서 알바 할 적에는 일단 신입으로 들어가 일거수일투족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괜히 내 판단대로 했다가 실수하면 만회하기가 어려우니 미리 물어봐야지 싶었던 것이다.

이곳에서도 그와 비슷한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예를 들어 차나 커피 음식 순서를 어떻게 대접하면 좋을지, 혹은 뷔페 음식을 전혀 손대지 않은 채 남은 경우 보관하는 방식에 대하여 질문이 많았다.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는 물어보는게 제일이다 싶어 말이다.

그 질문 저변에는 일개 알바생(?)인 나에겐 '어떤 결정권'이 없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호텔에서 평균 음식소비량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지, 고객 편의를 어떻게 고려하고 있는지, 그에 따라 책정된 비용 등등의 정보는 나에겐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하는 와중 안내 데스크에 있는 매니저에게 허락을 구하듯 종종 질문하곤 했다.

허나 때마다 매니저는 친절하게도 '진, 네가 생각하는대로 해도 돼~"라고 말해주었다. 내가 일하는 4시간은 온전히 내 결정권 안에 있는 영역인 셈이었다. 뷔페 차리는 음식 양을 조절하고, 손님의 요구에 어느 선까지 응할지는 조식서비스를 담당하는 내 몫이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은 매니저에게 문의하면 되었고, 정보가 필요하다 싶은 내용에는 언제든 흔쾌히 답해주었다. 한국에서도 상급자와 일해보았지만 같이 일하는 대다수의 경우, 상급자의 스타일에 무조건 따라야 하거나 혹 지시가 내려오는 대로 그저 '남의 일'에 내 에너지를 투여한다는 느낌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안에서도 오롯이 내 몫으로의 역할을 배분해준다는 것이, 같이 일하는 멤버 간의 작은 신뢰이기도 했고 내가 나의 일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고 배워가는 묘한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이방인인 내가 독일 하이델베르크에 여행오는 이들에게 아침 일찍이 환한 미소로 전해주고픈 마음은 이런 것들이라는 것... 나는 그래서 일주일 두서번 내가 일하는 4시간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어떤 언어를 써야 좀 더 정확한 뉘앙스로 표현이 될까, 혹은 차나 커피는 어떤 방식으로 내어주는 것이 받는 입장에서 좀 더 기분 좋을까 등등의...

이런 고민들이 독일 사회에서 타의적 노동이 아닌 자발적 노동으로 가게 하는 작은 시작이었다. 

덧붙이는 글 첫 근무 후 받은 급여, 이 외딴 나라에서 나도 이제 '노동하는 인간'이 되었구나!
#독일 #워킹홀리데이 #청년 #시민사회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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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국문학+시민정치문화를 전공했고, 현재는 독일 중서부 뒤셀도르프에서 유아 청소년 교육 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아동기관에서 재직중입니다. 경계를 넘나드는 인간의 일에 관심이 많고, 더 나은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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