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 돌린 특검, 답답한 이재용과 박근혜

[분석] 문형표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이재용 승계작업' 연관성 드러나

등록 2017.06.08 20:12수정 2017.06.08 20:21
1
원고료로 응원
a

박영수 특별검사가 지난 3월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기자실에서 최종 수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국정농단의혹 특별검사팀이 '박근혜 게이트' 핵심, 삼성 뇌물사건 입증을 위한 첫 고비를 넘겼다.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성사를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했다는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인정,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했다. 또 그의 지시를 받고 찬성의결을 유도,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쳤다는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 대한 공소사실(업무상 배임죄)을 유죄로 판단했다(관련 기사 : 이재용 도운 문형표 징역 2년 6개월).

이날 특검은 ▲ 제일모직 1 대 삼성물산 0.35 라는 합병비율은 부적절했고 ▲ 복지부가 부당하게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과정에 개입했다는 주장을 입증해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손해를 입은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삼성 대주주 일가는 그만큼 이익을 얻었다고 했다. 국민연금의 개별 의결권 행사 과정에 복지부가 개입했고, 이 일은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했다고도 봤다. 삼성 뇌물사건의 1단계를 인정한 셈이다.

'삼성물산 합병 부적절' 뇌물사건 1단계 인정한 법원

a

첫 재판 출석하는 이재용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4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삼성 뇌물사건의 핵심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작업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이 핵심계열사인 삼성전자 지배력을 강화, 그룹 전반을 장악하기 위해 무리하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했다고 본다.

합병 전 이 부회장 등 대주주 일가는 제일모직 주식 42.19%, 삼성물산 1.41%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삼성물산은 삼성전자 주식을 4.06% 확보한 반면, 제일모직은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 부회장으로선 제일모직에게 유리하게 합병을 진행, 삼성물산 지분율 높여야 삼성전자 지배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1대 0.35라는 비율이 문제였다. 2015년 5월 삼성물산 합병 계획이 드러나자 곳곳에선 1대 0.95, 1대 0.42, 1대 0.46 등 다른 숫자들이 쏟아졌다. 모두 삼성물산의 가치를 더 높게 평가한 결과였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도 1대 0.35 합병이면 손해를 본다는 판단이 나왔다. 대주주인 국민연금이 반대할 경우 합병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았다. 특검은 이 일이 삼성에게 매우 주요한 현안이었고, '부정한 청탁' 대상이었다고 주장한다.


변호인단은 삼성물산 합병이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무관하다고 반박한다. "삼성물산의 구조적 수익성 하락을 극복하고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 활동"이란 얘기다. 이들은 합병비율에도 문제가 없었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 1차 공판에서 변호인단은 "특검은 여러 (기관에서 나온) 적정합병비율 중 하나를 선택해 주장하고 있다"며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었다는 것은 굉장히 선동적인 주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삼성 사건을 다룬 법원의 첫 번째 판단은 '삼성물산 합병으로 이 부회장이 이익을 얻었다'였다. 이 판결은 박 전 대통령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최순실 지원'이란 뇌물을 받고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란 대가를 주기로 했다는 특검 주장과 이어진다. 반면 '이 부회장이 합병으로 얻을 이익이 없으니 대가관계 합의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변호인단 주장은 휘청였다. 뇌물 사건의 상대방인 박 전 대통령에게도 답답한 일이다.


답답해진 박근혜와 이재용... 특검도 웃을 수만 없어

a

첫 재판 출석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뇌물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오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417호 형사대법정에서 열린 첫 정식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런데 문형표 전 장관 사건 1심 판결에는 범행동기가 빠져있다. 재판부는 그의 공소사실 상당수를 유죄로 보면서도 '대통령 지시를 전달받고'란 대목은 판단하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 여부는 삼성 뇌물사건의 핵심 쟁점이다. 특검은 이 부회장과 박 전 대통령이 '검은 거래'에 합의한 이후 상황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명한다. 물론 당사자들은 거래 자체를 부인하고 있다. 심리도 아직 진행 중이라 8일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의 범행동기를 공란으로 남겨뒀다. 앞으로 특검이 더욱 입증에 주력해야 할 부분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 합병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도 남아있다. 문 전 장관 사건 재판부는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은 만큼 이 부회장이 이익을 얻었다고 판단했다. 이때 이익은 단순히 비용의 문제일 수 있다. 삼성 뇌물사건을 완성하려면, 특검은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이 부회장 변호인단은 합병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로 직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사건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 관련 증거조사를 일부 마쳤고,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아직 초기 단계다. 특검은 어떤 카드로 재판부를 설득할 수 있을까. 8일 판결에 안심할 수만은 없는 이유다.
#박근혜 #이재용 #삼성 뇌물 #특검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정치부. sost38@ohmynews.com


AD

AD

AD

인기기사

  1. 1 3일마다 20장씩... 욕실에서 수건을 없애니 벌어진 일
  2. 2 참사 취재하던 기자가 '아리셀 유가족'이 됐습니다
  3. 3 [단독] '윤석열 문고리' 강의구 부속실장, 'VIP격노' 당일 임기훈과 집중 통화
  4. 4 23만명 동의 윤 대통령 탄핵안, 법사위로 넘어갔다
  5. 5 이시원 걸면 윤석열 또 걸고... 분 단위로 전화 '외압의 그날' 흔적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