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삼합홍어, 묵은지, 돼지고기 수육의 홍어삼합이다.
이상명
처음 먹는 사람은 코를 틀어막기도 하는 홍어. 하지만 먹으면 먹을수록 느껴지는 오묘한 향과 맛. 그 맛을 못 잊어 다시 젓가락을 든다. 누군가는 홍어의 톡 쏘는 맛이 마치 민트사탕 같다고 표현할 정도.
남도 삼합으로 강진, 무안, 장흥삼합을 먹어보았다. 삼합은 홍어, 돼지, 김치가 삼위일체로 이루어진 조화를 이루는 '음식의 끝판왕' 격이다. 결혼식장이나 잔칫집에 가면 빼놓지 않고 나오는 홍어 무침은 물론 비 오는 날 막걸리 한잔과 곁들이는 홍어회는 코끝을 탁 쏘는 그 맛이 하루의 고단함을 씻겨주는 지상낙원이 따로 없을 정도이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홍어회와 홍어 무침 뿐 아니라 홍어는 다양한 요리의 재료로 쓰인다. 홍어앳국, 홍어 전, 홍어 찜, 홍어 튀김, 홍어포 등.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를 조금 벗어나 사거리로 나가면 간판이 보이지 않아도 홍어 식당을 찾을 수 있다. 그 특유의 냄새 때문이다. 홍어를 익숙히 먹어 본 사람들도 홍어 냄새가 나면 코를 씰룩거린다. 사거리 홍어 식당 골목에 들어서면 홍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킁킁대며 고향의 향이라도 찾은 양 즐거운 표정이다. 하지만 홍어를 먹어 본 적 없거나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지옥에라도 온 양 온갖 인상을 쓰고 코를 틀어막으며 지나간다.
남도 사람들은 모두 푹 삭힌 홍어만 즐겨 먹는 줄 알지만, 전남 강진의 시댁 식구들은 삭힌 홍어는 잘 먹지 않았다. 갓 손질한 싱싱한 홍어회 즐겨 먹었는데 쫄깃하고 탱탱하며 신선해서 씹으면 씹을수록 구수한 바다의 맛이 느껴지기 때문이라나. 삭힌 홍어는 이웃 동네 장흥에 가서 먹어봤다. 서울에서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남도의 맛을 보여주겠다며 시댁 어르신이 사주신 삭힌 홍어의 첫맛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눈이 튀어나오고 혀가 뽑히는 듯한 아린 맛이라고 할까. 그때의 충격 이후로 홍어 마니아가 될 정도로 홍어를 좋아한다. 기관지가 약한 내게 홍어는 약이다. 기관지를 깨끗하게 해주고 목을 보호해준다고 하니 맛 뿐 아니라 건강까지 일석양득이 아닐 수 없다.
시어머니가 기가 막히게 끓이셨던 홍어앳국은 그야말로 영양의 보고이다. 고기의 기름은 건강에 나쁘다고들 하지만 생선 기름은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특히나 홍어 애(홍어 간)에서 나오는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으로 이루어졌다. 보기에는 징그러울 수도 있지만, 맛도 일품이고 건강에도 좋다. 먹으면 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잔칫집에서 포식하여 소화가 안 될 때도 홍어 요리를 먹으면 불편했던 속이 어느새 잠잠해진다. 홍어가 위산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이라면 홍어를 드셔보시면 좋을 것 같다. 지방이 아주 적고 고단백으로 이루어져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다. 홍어를 먹어보면 알겠지만, 기름기 많은 다른 생선류에 비해 딱딱하다고 해야 할까 육질이 부드럽지 않은 것을 경험해봤을 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지방 많은 돼지고기 수육과 함께 먹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돼지고기가 홍어의 뻑뻑한 육질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면 묵은지는 조금은 느끼해질 수 있는 돼지고기를 대신해서 입안의 박하사탕처럼 상큼함을 주기 위해 먹지 않았을까. 이 또한 추측이다. 그렇게 홍어, 돼지고기, 김치를 삼위일체로 먹어봤더니 맛이 좋더라 하여 대대손손 전해 내려온 남도 명물 요리로 탄생하지 않았을까.
삭힌 홍어는 도저히 도전 못 하겠다면 숙성기간을 줄이면 된다. 숙성기간이 짧을수록 홍어의 톡 쏘는 암모니아 냄새가 덜 심하기 때문이다. 홍어 초보라면 숙성기간 짧은 홍어부터 시작하여 점차 삭힌 홍어도 먹어보고, 극상의 암모니아 냄새를 풍기는 홍어찜으로 단계를 높여가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숙성 김치나 숙성 와인처럼 향과 맛을 음미하는 홍어 미식가로 변모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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