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흔에 봄을 준비했다> (원숙자 지음 / 유씨북스 펴냄 / 2016. 6 / 296쪽 / 1만2800 원)
유씨북스
하지만 시골살이의 괴로움도 토로한다. "개구리 울음소리 때문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냇가에 엄마 주검을 묻은 청개구리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며 "개구리 울음은 어쩌면 부모 돌아가신 후 후회하는 인간을 질타하는 소리"라며 우리네 어리석음을 꾸짖는다.
수더분한 시골 냄새가 글발 곳곳에 스며있다. 아마도 일흔에 봄을 심겠다고 시골로 내려온 어른에게서는 이런 향기가 나나 보다. 저자는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라고 치켜세운 이웃 봉화 아저씨의 말을 인용해 이리 쓴다. 이 한 줄이 왜 이리 밋밋하지만 좋은지.
"모종이 땅 냄새를 맡아야 해여, 그래야 안 죽어"(51쪽)'흙냄새'란 단어에 향수를 느끼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시골살이에 대한 동경은 살아보지 않은 사람의 것은 다 환상이다. 저자는 마늘을 심기 위해 새벽 2시까지 마늘을 까며 이렇게 말한다.
"마늘 눈을 보호하며 껍질을 벗겨냈지만 한 접도 못하고 눈이 아프고 어깨가 아프고 허리도 엉덩이도 아파 더 이상 깔 수가 없다. 무엇보다 손끝이 아리고 손목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는 것이다."(61쪽)농산물이 비싸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생각을 바꿔야 한다. 농산물 하찮게 여기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고춧잎을 솎아 누구에게 줄까를 고민한다. 고춧잎이 한보따리에 1000원 밖에 안 한다. 시골의 시어머니가 고춧잎을 한보따리 이고 서울 며느리 집엘 갔다. 며느리는 외출 중. 전화로 "어머니 경비실에 맡기고 가세요" 했다고 한다.
그 섭섭함이 어떠했겠는가. 그래서 저자가 한 고랑을 따면 한보따리인 고춧잎을 누구에게 줄까 고민한다. 한 친구를 생각해 내고 전화로 고춧잎을 준다니까 반색을 한다. 저자는 그런 친구가 있음을 행복해 한다.
"'어마, 그 귀한 걸 나까지 줄 수 있어?'주면서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친구, 받으면서 세상에 둘도 없이 귀중한 걸 받는 사람같이 고마워하는 친구가 있다는 게 가슴이 뿌듯하다."(44쪽)우리가 이런 친구가 되면 어떨까. 저자는 왜 토마토가 채소가 되었는지를 밝혀주는데, 참 흥미롭다. 1893년 미국 연방대법원이 토마토를 채소로 결론 냈는데, 이는 채소여야 과일에 안 붙는 관세를 물릴 수 있기 때문이었단다. 그 이유를 '요리해서 먹는 것'이라고 했다는. 좀 궁색하긴 하다. 결국 토마토가 자본주의 논리에 농락당한 것이다. 저자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라고 비꼰다.
책을 읽으며 이름(원숙자)처럼 저자의 '원숙'한 삶의 무게를 만질 수 있어 행복했다. 같은 시골도 다 같은 방법으로 사는 게 아니다 싶다. 시골살이가 이리 아름다운가, 생각하며 내 삶을 다진다. 시골에서의 내 삶도 그리 행복할 수 있을 거란 바람을 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