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는 표현, 마법처럼 끌리네

[인터뷰]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 김선관 센터장, 폭력피해여성들이 펴낸 <마법의 그림책>이 나오기까지

등록 2017.06.21 21:17수정 2017.06.21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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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폭력피해여성들이 펴낸 ‘마법의 그림책’ 본문의 내용 일부

폭력피해여성들이 펴낸 ‘마법의 그림책’ 본문의 내용 일부 ⓒ 오병종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다. 중학교 졸업 후 가출했다. 목포 다방에서 빚을 많이 졌다. 일을 했지만 빚만 늘었다. 조사를 받았다. 법원에서 억울했다." 

그리고 옆 페이지에는 해당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마법의 그림책>은 펼치는 곳마다, 아픈 여성들의 상처가 있다. 희망이 있다. 폭력피해여성들이 펴낸 <마법의 그림책>이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자신들의 상처치유 과정에서 그린 그림과 글이어서 '마법'처럼 끌린다(관련기사 : 폭력피해여성들, 자신의 상처 치유한 '그림책' 발간).


사단법인 전남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 김선관 센터장이 <마법의 그림책>을 출판하는데 힘을 보탰다. '내 안의 숨은 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나다'라는 부제의 <마법의 그림책>의 원 그림들은 서울과 여수에서 차례로 전시할 예정이다. 오는 22일 서울 전시를 앞두고 있다. 전시회 시작은 북콘서트부터 하게 된다.

책을 펴낸 후 북콘서트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 김선관 센터장을  만났다.

a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 김선관 센터장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 김선관 센터장 ⓒ 오병종


- '내 안의 숨은 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나다'가 부제목이고 <마법의 그림책>이 제목이다. 그런데 지은이가 '징검다리 건넌 그녀들'이다. 누구인가?
"사단법인 전남여성인권지원센터 부설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아래 여수자활센터)에서 상담과 도움을 받아온 폭력피해여성들이다.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여성, 북한이탈 여성, 성매매 경험 여성들인데, 이들이 상담을 받으면서 새 삶을 찾으려고 자활센터에서 그림과 글공부를 했다. 4년간 활동했는데 그 중에 16명이 이번 책의 저자들이다."

- 여수자활센터에서 폭력피해여성들과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
"자활센터에는 어려운 여성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상담을 하고 피해여성들을 구제하는 도움을 주면서 자연스럽게 자활지원센터에 도움을 받으러 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 여성들에게 뭔가 재미를 붙이려고 시도한 게 '책읽기'였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북카페'가 있는데, 거기서 처음에는 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권했다. 황순원의 <소나기>를 소리내서 읽었다. 특히 돈이 안 드는 거니까 쉽게 시작했다. 중학교 교과서에 이 소설이 실린지도, 황순원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이들인데 무조건 읽었다. 그러다가 소설이 아닌 자신의 얘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a  새정안의 그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새정안의 그녀.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 오병종


- 그래서 글과 그림 공부를 하게 되었는가?
"책만 낭독하다가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자고 했다. 거기다 일부 여성은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당해 한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한 경우도 있어서 글쓰기 공부를 선택했다. 글쓰기도 어느 정도 하다 보니까 한계가 있었다. 자신들의 상처 받은 심리를 언어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쑥스러운 면도 있었다. 그래서 추가로 그림을 생각한 거다."

김 센터장은 대학원에서 미술치료를 공부했다. 미술치료를 접목해 집단상담에 활용한 사례를 논문으로 발표해 석사학위를 취득한 경험이 '그림 그리기' 선택을 용이하게 했다. 수필가와 화가를 강사로 모셔서 매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주 1회 4년째 해오고 있다. 한 차례 참여자들은 대략 열명 안팎이다.


이들은 첫 해 아트북으로 자신들의 책을 손수 만들었고, 다음 해부터는 매년 칼라 프린트로 사진첩처럼 10권씩 만들어서 소장하곤 했다. 그러다가 강사로 참여하신 전문가 선생님들의 권유와 출판사에서 나서준 덕분에 이번에 이런 책이 나오게 된 것이다.

a '마법의 그림책' 내용 일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중국을 거져 북한을 이탈한 여성의 작품이다.

'마법의 그림책' 내용 일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중국을 거져 북한을 이탈한 여성의 작품이다. ⓒ 오병종


- 그림과 글쓰기 공부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나?
"어떤 사람은 글쓰기로 어떤 주제건 내주면 일사천리로 술술 잘 쓰는 반면에, 그림은 좀 멀리하는 경우도 있고, 또 글로는 표현이 잘 안 되지만 그림은 일필휘지로 단번에 그려내는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인 차이가 여러 층이다. 특히 그림의 경우 자기 이야기와 그려놓은 그림과 연관지어서 많은 얘기를 한다. 그런 점에서 그림그리기와 글쓰기를 병행한 건 잘 선택했다고 본다."

- 서울에서 먼저 북콘서트와 그림전을 개최한다. 홍보를 전국적으로 하려는 때문인가?
"그런 면이 있다. 중요한 관심사인데도 폭력피해 여성에 관한 이런 작업들은 흔치 않다며 주변 전문가 분들이 이런 특별한 책은 전국적인 관심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권유했다. 지역에서만 끝낼이 일이 아니라고 격려를 해주었다. 서울 행사를 출판사도 적극적으로 나서 줬다."

- 여수에서 피해 여성들의 실태는 어떤가?
"여수에서 성매매 피해여성, 가정폭력이나 성폭력 피해자는 많다. 집계의 어려움이 있다. 우리는 1천명 이상이라고 본다. 알려지기를 꺼려하고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처음엔 어디 하소연 하기가 어려운 게 가정 폭력 같은 경우다. 하지만 점차 이전보다는 더 많은 피해자들이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a  폭력피해여성들이 펴낸 ‘마법의 그림책’ 본문 내용 일부

폭력피해여성들이 펴낸 ‘마법의 그림책’ 본문 내용 일부 ⓒ 오병종


- 피해여성들의 사정을 들어보면, 피해의 시작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딱한 사정들이 많다. 대부분 어릴 때 비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많이 발생한다. 성장기에 부모 사랑을 받을 시기에 갑작스런 이혼도 해당된다. 충분한 정서적 도움을 못 받고 자란데다 경제적 어려움이 따르고, 결국 가출에 성매매 업소 유입으로 이어진다. 그러면서 사기 당하고, 폭력 당하고, 안 좋은 상황들이 겹친 경우가 많다."

- 피해 여성들은 어디에 도움을 요청하는가?
"여수에도 가정폭력상담소, 성폭력상담소, 성매매피해여성상담소가 각각 따로 있다. 어디든 가면 연결을 해준다. 동사무소에서도 복지사가 배치되어 있어, 복지사를 찾으면 안내해준다. 주변의 가까운 사회복지시설에서도 복지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경찰 안내도 받을 수 있다."

a  전시회는 작품성있는 그림들도 선보인다. 그림 설명을 하면 거침없이 자신의 얘기를 풀어 낸다.

전시회는 작품성있는 그림들도 선보인다. 그림 설명을 하면 거침없이 자신의 얘기를 풀어 낸다. ⓒ 오병종


- 자활센터에서는 피해여성들이 충분히 자활 과정을 잘 거친다고 보는가?
"자활센터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검정고시 과정을 마치고 대학에 가는 경우도 여럿 있다. 우리 도움으로 직장을 갖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기도 한다. 근데 피해 여성들은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 약한 편이다. 이들에게 도움을 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충분한 인력과 시스템이 갖춰져 케어를 잘 해주면 좋은데, 요청되는 만큼 충분한 케어를 못해 안타깝다.

예컨대, 성매매 여성의 경우 로망이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세세히 잘 도와주지 못해 자활 중 안타깝게도 상당수가 다시 업소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인력과 시스템이 약해서 제대로 돌봐주지 못해 되돌아 가는 걸 보면 마음이 아프다. 상처받고 아픈 사람은 많은데 차료해줄 시설과 장비, 사람이 부족하다고 보면 된다. 안타깝다."

- 다시 책 얘기다. 이번 책 발간, 보람도 크겠다.
"이 책으로 인해 전국의 피해 여성들이 희망을 갖도록 하는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처음에 '이게 책이 될까?', '뭐하려고 이걸 하지?' 하며 시큰둥했는데, 끝까지 함께했거나 성심 성의껏 그림책 프로젝트에 참여한 친구들은 성취감을 느끼고 있다. 이미 출판사에서 후속 출판 작업을 또 들어갔다. 최근에 우리가 그렸던 작업들이 편집중이다. 연이어 책으로 나온다는 정보에 계속 참여하려는 적극성을 보이는 여성들이 많다."

김 센터장은 독자들이 <마법의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고 이들과 함께 공감해주길 바란다. 이 책 발간을 계기로 폭력피해여성들에게 관심이 커지길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관심이 결국 폭력 피해 여성들 자활을 돕는데 사회적 힘으로 모아지고, 예산과 시스템이 보완되리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김 센터장은 자활센터를 노크한 모두가 어둡고 아픈 곳에서 환한 곳으로 나와 언젠가는 '징검다리를 건넌 그녀들'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오는 22일(목) 오후 7시 반 서울 양평로 모자빌딩 5층 '새물결아카데미'에서 북콘서트를 갖는다. 북콘서트 이후 같은 장소에서 책에 게재된 원화 전시회를 27일까지 연다. 추후 여수에서 똑같은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a  서울 북콘서트와 전시회 포스터

서울 북콘서트와 전시회 포스터 ⓒ 오병종


덧붙이는 글 <여수넷통>에도 게재합니다.

마법 그림책 - 내 안의 숨은 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나다

징검다리를 건넌 그녀들 지음, (사)전남여성인권지원센터 엮음,
새물결플러스, 2017


#마법의 그림책 #김선관 #여수여성자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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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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