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폭력 벗어나기, 잘 헤어지면 된다고요?
한국여성의전화
8367명(그리고 449명).
지난해 '연인 간 폭력사건'으로 형사 입건된 인원과 구속자 수다. 지난 7월 30일 경찰청에 따르면, 이러한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된 인원은 2015년 7692명보다 8.8% 늘었다. 또 올해 6월까지 검거인원은 4565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189명)가 증가했다.
지난 2016년 한 해 데이트 폭력으로 연인을 실제 살해하거나 살인미수를 포함한 범죄자도 52명이나 됐다. 또 2011년부터 4년 간 연인에 의해 살해된 피해자는 233명에 달했다. 평균 46명이 해마다 데이트 폭력으로 숨진 것이다. 이마저도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 같은 데이트 폭력 근절을 위해, 지난 7월 30일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데이트 폭력 등 관계집착 폭력행위의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다고 밝혔다. 피해자가 데이트 폭력이나 스토킹을 신고하거나 신변보호를 요청하면 경찰이 즉각 현장에 출동해 폭력행위를 제지하고 가해자를 분리하는 등의 대응조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표 의원은 "연인 간의 사랑싸움 정도로 여겨졌던 데이트 폭력은 최근 점점 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며 "관계에 대한 집착으로 시작된 위협이 흉악한 범죄로 번져나가기 전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더불어민주당 여성가족위원회 위원장인 남인순 의원 역시 최근 원내 지도부에 '데이트 폭력 방지 특위'를 원내 기구로 구성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대 초중반 '데이트 폭력'이란 용어 자체가 생소했던 사실을 비춰보면 '안타까운'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그사이 데이트 폭력은 점점 늘어 갔고, 이에 대한 경각심도 비례로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더 넓게, 지난해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의 충격 이후 '여혐 범죄'에 대한 충격과 자각 역시 전례 없이 팽배한 상황이다. 하지만 답보 상태를 유지하는 것도 존재한다. 남성들이 가진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 말이다.
지난 7월 28일 <경향신문>에 실린 "[사유와 성찰] '데이트폭력' 비판적 인문학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칼럼은 이러한 인식의 일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어김없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일단, 남성들이 행하는 데이트 폭력의 주된 이유로 '신자유주의'를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 '신선'하다.
데이트 폭력이 '신자유주의 때문'이라고? "(전략) 여러 전문가들이 분석하는 바에 의하면 데이트폭력에 대해 수많은 여성들이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친밀성'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것이 데이트폭력을 허용하게 한다는 얘기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최근 데이트폭력의 빠른 증가 추세에 관한 것이다. 나는 신자유주의적 소비사회로의 급격한 변화가 그 주된 이유일 수 있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제시하고자 한다. 소비사회 이전부터 남자는 구릿빛 피부의 근육질 몸으로 표상되어왔다. 한데 소비사회는 근육남을 표상하는 짐승남이 백옥 같은 피부에 가느다란 턱선을 한 '꽃미남'과 합성하는 이미지로 남자를 소비한다. 즉 '짐승남+꽃미남'의 이미지가 소비사회가 이상화하는 남자의 몸이다. 문제는 거의 모든 남자가 이런 규율체계에서 '루저'가 된다는 점이다."신자유주의가 데이트 폭력의 주된 이유라니, 참으로 신묘한 해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짐승남+꽃미남'을 사회(여성이?)가 소비하면서 보통의 남자들이 '루저'가 되고, 그로 인해 남성들이 박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이 창조(?)적인 주장이 포함된 칼럼을 쓴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데이트폭력' 해결에 "인문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 주장 자체는 일견 긍정적인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궤변에 가까워 보인다.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들에게 차후 이론적 배경(?)을 제공하지나 않을까 무서워질 정도다. 칼럼 내용을 더 보자.
"모든 것을 상품화하고 그것이 최고의 가치가 되어버린 야만적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여성뿐 아니라 남자들도 루저의 체험 혹은 예감에 빠져버린다. 그리고 그 체험 혹은 예감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 배제의 폭력에 시달리게 한다. 극소수의 성공한 이들을 롤모델 삼아 끊임없이 자기계발에 매진하지만 현실은 대부분 '실패'라는 절망감으로 구현된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낡은 남성성'에 대한 욕구가 메아리친다. 이 시대에 대한 종말론적 위기감이 분출하고, 지난 군사정권 시대가 호출되며 극우주의와 '강한 남성'의 이데올로기(과잉 마초주의)가 결합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종종 일상적 폭력으로 해석될 수 있는 영역들에서 폭력 현상을 급증시켰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왕따에 대한 집단폭력이나, 연인 혹은 배우자에 대한 데이트폭력이 그런 예다."자, 그러니까 루저 체험을 경험한 남성들이 사회적 배제의 폭력에 시달리게 됐고(심지어 시대에 대한 종말론적 위기감까지 분출하면서),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상의 폭력이 가능한 영역에서 여성들에게 폭력으로 가하게 됐다는 것이다. 아뿔싸. 이 논리가 그럴싸하려면, 이미 여성들은 몇 번이고 폭력 혁명을 일으켜야 했을 것이고, 지금도 남성들보다 더한 폭력 성향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위기의 남성' 호명하고 위로하는 인문학, 필요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