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가자, 술 마시자"... 여자 타투이스트의 '일상'

[인터뷰] 타투하는 페미니스트 그룹 ‘펠리스 잉크’의 푼타·사포씨

등록 2017.08.11 11:16수정 2017.08.11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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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여성이 죽었다. 지난 7월 5일 서울시 강남구에서 왁싱숍(제모 업소)을 운영하는 여성 노동자가 살해됐다. 예약까지 하고 이곳을 찾아온 남성 손님은 순식간에 돌변했다. 성폭행을 시도하고, 여성 노동자를 살해한 뒤 체크카드를 훔쳐 도주했다. 이 사건은 7월 31일 피의자가 구속기소 되면서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강남역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1년 3개월이 흘렀다. 세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언제까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할까. 여성이 '혼자' 일해도 안전한 사회는 여전히 요원한가. 질문이 이어졌다.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왁싱샵여혐살인사건'이란 해시태그의 파도가 넘실댔다.

온라인 커뮤니티의 물결은 현실 세계로 밀려왔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지하철 강남역 10번 출구 근처에서 집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여성혐오 범죄'를 둘러싼 사회적 공론화를 원했다. "침묵도 가해"라며 "우리는 살고 싶다"고 외쳤다.

7일, 타투하는 페미니스트들의 모임 '펠리스 잉크(Felis Ink)'에 몸담고 있는 타투이스트 푼타(가명)씨를 만났다. 그는 이번 사건을 '젠더사이드(gendercide, 특정 성별을 겨냥한 살해)'로 규정지었다. 즉, "BJ(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왁싱숍 노동자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한 동시에 여성 혼자 영업한다는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가해자는 그 여성이 범죄로부터 취약한 환경에 있고, 그 여성이 약자인 점을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푼타씨는 '왁싱숍 살인 사건'을 거울로 반사하듯 성별을 바꿔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이래야 사안의 맥락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에 여성 BJ가 남성 왁싱 노동자를 찾아가 방송했을 때, 성희롱할 수 있었을까요? 성희롱을 했다고 하더라도 제3의 여성이 찾아가 그 왁싱 노동자를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푼타(가명)씨는 왁싱숍 살인 사건을 ‘젠더사이드(gendercide·특정 성별을 겨냥한 살해)’로 규정지었다. “BJ(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왁싱숍 노동자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한 동시에 여성 혼자 영업한다는 정보를 전달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건”이라며 “가해자는 그 여성이 범죄로부터 취약한 환경에 있고, 그 여성이 약자인 점을 명백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살인을 저지른 것”이라 밝혔다. ⓒ 박동우


"남직원 따로 둬라? 여성은 '보호'받는 존재 아니야"


왁싱, 스포츠마사지 등 미용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타투이스트들이 느끼는 불안 역시 '일상'이다. 밀폐된 작업실엔 손님과 노동자, 둘 뿐이다. 시술을 이어가려면 고객과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불가피하다.

뭇 남성들은 이러한 특성을 마치 음성적 섹스 산업의 연장 선상에 놓인 것으로 해석한다. 여성 노동자들을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펠리스 잉크' 회원인 타투이스트 사포(가명)씨는 "남성 손님으로부터 자기 집으로 출장을 와달라거나, '일 끝나고 같이 술 한잔하자'는 식의 요구를 받는 일이 잦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손님의 '갑질'이 있어도 보복을 당할까봐 두려워 그저 참는 경우도 있다. 언젠가 푼타씨 작업실에 남자 고객 10여 명이 우르르 몰려온 적이 있다. 푼타씨는 "통상적으로 20만 원 이상을 호가하는 타투 시술이 있었는데 더 값싸게 깎아달라고 조르더라"며 "10만 원이라는 말도 안되는 가격까지 내려갔는데, 왠지 그 가격에 해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무서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푼타씨는 1인숍을 운영하던 지난해의 기억을 되새겼다. 그땐 이태원의 다세대주택 구석 한 칸짜리 집을 빌려 작업실로 꾸몄다. 간판도 못 달았다. 서너 평 크기다. 예약손님이 가까이 왔단 연락이 오면 큰길에서 손님을 만나 신원을 살폈다. 굽이진 골목을 거쳐 작업실로 향했다. 창문도 없는 공간, 어떤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모를 공간이었다.

그는 지난 5월에서야 달팽이집에서 벗어났다. 사포씨와 함께 서울 한남동 이슬람사원 인근에 공동작업실을 마련했다. 7평쯤 되니까, 과거 푼타씨가 차렸던 1인숍의 두 배다. 과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푼타씨는 "대로변에 있고, 창문이 열려 있는 가게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 밝혔다.

누군가는 "남자 직원을 따로 두면 (안전 문제가 해소)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여성을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국한시키는 관점이다. 푼타씨는 "남성의 보호를 받는 여성을 일종의 소유물로 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사포씨 또한 "여성의 존재는 그 자체만으로 죽음을 자초하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여성들이 불안과 위협을 느끼는 상황 자체에 대한 고찰 없이 '남성 보호자를 구하라'는 건 문제의 본질을 짚지 못한 것일뿐더러,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해결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푼타씨는 간혹 일이 늦게 끝나 새벽 1~2시에 귀가하는 경우가 있다. 집에 가려면 클럽이 밀집한 거리를 통과해야 한다. 도처에서 남성들이 캣콜링(cat calling, 남성이 불특정 여성을 상대로 휘파람을 불거나 희롱하는 행위)을 일삼는다. 고단한 기운도 잠시다. 긴장과 경계로 얼굴이 굳어진다. 이마에 눅진한 진땀이 밴다.

"지나가면서 휘파람을 불거나 인사하는 행위, 아니면 계속 말 거는 게 많은 위협으로 느껴져요. '나랑 같이 술 마시러 가자', '같이 놀자', '클럽 가자', '(전화)번호 좀 달라', '어디 살아?' 그런 걸 물어보죠. 유독 달라붙어서 물어보는데, 끝까지 싫다 하면 욕을 퍼붓는 이도 있어요."

사포(가명)씨는 '맞춤형 타투'에 능통하다. 그는 “타투는 자기 탐구 과정의 하나”라며 “설령 지금 느끼는 정체성이 뒷날 달리 생각될지라도 당장 나의 고민을 몸에 남기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위”라고 말했다. ⓒ 사포


"여자애가 왜 머리가 짧아" 외모 품평하는 사회

이나영 중앙대 교수(사회학)가 학술지 '문화와 사회'에 투고한 논문 <여성혐오와 젠더차별, 페미니즘>(2016)을 보면, 여성혐오(미소지니)를 둘러싼 정의가 잘 드러난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낙인찍거나 남자보다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모든 생각들"을 통틀어 일컫는다.

성별 이분법적 사고와 성역할을 둘러싼 뿌리 깊은 편견은 타투이스트의 확장성을 가로막는다. 가령 손님들은 남성 타투이스트들에겐 선이 굵고 진한 타투, 큼직한 타투를 그려줄 것을 청한다. 반면 여성 타투이스트들에겐 선이 얇고 비교적 투명한 타투를 새겨달라는 문의 전화가 이어진다.

여성 타투이스트의 역량이 남성 타투이스트에 못 미칠 것이란 인식도 한몫 자리잡고 있다. 맨스플레인(mansplain, 남성이 여성에게 훈계하는 행위)에 빠진 고객이 대표적이다. 사포씨가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몇 주 전 어느 남성 손님이 제게 계속 타투를 가르치려 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면 양반입니다. 다른 분은 제게 특정 장르의 타투를 언급하곤 '시술해본 적 있냐', '할 수 있느냐', '솔직하게 말해달라'며 계속 제 실력을 의심했어요. 경력 8년 차인 전문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죠."

타투를 새긴 여성이 성적 유희의 소재로 전락하는 경우도 빈번하게 생긴다. 타투 관련 콘텐츠를 게시하는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에 사진 한 장이 올라온 적 있다. 등판에 큼직한 타투를 새긴 여성의 모습이었다. 푼타씨는 "상당수 댓글이 '엉덩이가 예쁘다', '몇 살이냐', '티팬티 입었네' 등이더라"고 말했다.

최근 열린 '강남역 10번 출구' 집회에선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개인방송을 구실로 내세운 남성 등 몇 사람이 시위하는 모습을 촬영하다 현장요원으로부터 제지를 받았다. 기자에게서 소식을 접한 푼타씨가 말했다.
 
"만일 거기서 여성들이 얼굴을 드러내고 시위한 사진이 실렸다면 그대로 성적 대상화돼 성희롱에 가까운 온갖 모욕성 댓글이 달렸을 거예요. BJ들은 사안의 맥락을 파악하지 못한 채 화제성만 찾아서 방송을 찍으려 해요. 만일 영상에 그 여성들의 신상이 올라갔을 경우 어떤 공격을 받을 것인지는 장담 못하는 거죠."

그는 지난 4월 온라인 미디어 <닷페이스>에서 선뵌 인터뷰 영상에 출연한 바 있다(관련 링크). 영상이 공개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누군가 자기 얼굴을 갈무리해 디시인사이드에 올렸단다. 흠칫했다. 웹페이지를 열었다. 삽시간에 수십 개의 악플이 달렸다.

짧게 자른 염색 머리, 진한 화장, 왼쪽 눈썹에 피어싱 2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꾸몄을 뿐이다. 세간 사람들은 눈칫밥을 먹인다. 물건을 사러 가게에 들어가면 자신을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낀다. 일부 어린이는 엄마의 팔을 툭 치며 묻기도 했다. "저 사람 이상하게 생겼다"고. 병원 의사는 "문신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며 핀잔을 줬다. 미용사는 푼타씨의 머리를 자르기에 앞서 슥 얼굴을 훑는다. "여자애가 왜 이렇게 머리가 짧냐"며 나무란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이기심이 곳곳에 스몄다. 외모를 품평하는 건 참기 어렵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넷이서 택시를 탄 적 있다.

"택시 기사가 차례대로 네 명의 얼굴을 평가하는 거예요. 기분이 나빠서 중간에 모두 내렸죠. 항상 제가 잡는 택시가 꽝이진 않을까 노심초사해요."

지난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열린 ‘페미답게 쭉쭉간다’란 페미니즘 문화제에서 타투이스트들이 무료 배포한 스티커. '펠리스 잉크' 그룹의 작품. ⓒ 펠리스 잉크


타투, 담배, 섹스... 우린 '조신'하지 않습니다

지난 3월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페미답게 쭉쭉간다'란 페미니즘 문화제가 열렸다. '펠리스 잉크'가 대외적으로 이름을 알린 순간이었다. 소속 타투이스트들은 몇 가지 문구를 넣은 스티커를 만들어 무료 배포했다. 나는 타투를 새기고(has tattoos) 술 마시고(drinks) 담배를 피며(smokes) 섹스를 원하는(wants sex) 여성이라고. 조신한 여성으로 남으라 하는 주류의 관념을 향한 정면 도전이었다.

"페미니즘이 추구하는 지향 중의 하나가 '내 몸은 나의 것'이고 '사회가 규정 지은 여성성의 틀에 나를 가두지 말자'는 메시지잖아요. 내 몸의 주도권은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주제의식을 지니고 굿즈(goods)를 만든 적 있었어요." - (푼타)

여성과 타투. 모두 사회적 편견의 최전선에 서 있었다. 푼타씨의 제안으로 1월 연대체가 탄생했다. 10명의 타투이스트가 동참했다. 이들은 공개적으로 '퀴어 프렌들리(Queer Friendly)'와 '페미니스트(Feminist)'를 표방하며 영업한다. 주요 고객은 근육질의 우람한 남성이 아니다. 평범한 2030세대 여성과 성 소수자들이다.

푼타씨와 사포씨가 함께 차린 한남동 작업실은 각종 시술 기구와 소품들로 오밀조밀 꾸며져 있었다. 각자의 책상 앞엔 손님들과 머리를 맞대 창작한 타투 도안들을 붙여 놨다. 나침반과 태양, 고래, 투구게 등 다종다양한 그림들로 빼곡했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과 동갑내기였던 청년은 무지개색 연기에 노란 리본을 그린 타투를 피부에 수놓았다. 희생자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다짐에서다. 이 청년은 "세월호 참사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망각과 기억2: 돌아봄>을 본 뒤 내 삶에 그들의 무게를 달아놓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퀴어로서 인권운동을 하는 내 정체성을 잊고 싶지 않다는 의미도 깃들었다"고 말했다.

소위 '맞춤형 타투'는 고객의 농밀한 삶을 풀어내는 작업이 전체 과정의 절반을 차지한다. 타투이스트는 인생, 자기 정체성에 얽힌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닫혔던 각자의 마음을 활짝 열고, 좀 더 솔직해지기로 결심한다. 짙은, 날것의 대화다. 사포씨는 특히 성 소수자들에게 유익한 행위라며 적극적으로 타투를 권한다. "자기 탐구 과정의 하나"라며 "설령 지금 느끼는 정체성이 훗날 달리 생각될지라도 당장 나의 고민을 몸에 남기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행위"란다.

"손님이 주로 이야기하는 것, 좋아하는 문화적 요소, 강렬하게 남은 기억 등을 끄집어내 타투 도안으로 녹여냅니다. 가족 간의 관계, 꿈에 대한 이야기, 좌절과 기쁨의 감정을 공유하고, 감명 깊게 읽은 책이나 영상을 언급하면 재빨리 적어뒀다가 나중에 챙겨 보기도 하지요."(사포)

나침반과 태양, 고래, 투구게 등 다종다양한 타투 도안들이 작업공간 책상 앞에 붙여져 있다. 연필, 볼펜 등으로 직접 그렸다. 타투이스트 푼타(가명)씨의 작품. ⓒ 박동우


문신(文身)은 '글월 문(文)'을 몸에 삽입하는 것. 일종의 기록이다. 이들은 최근 사진집 발간 프로젝트에 나섰다. 신체에 타투를 새긴 여성 또는 성 소수자들을 만나 간단히 인터뷰하고, 피부에 안착한 잉크 그림을 촬영한다.

타투를 둘러싼 낡은 인식을 깨고, 대중들에게 친근감을 주려는 의도다. 연말에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20~30명가량 만나기로 계획을 잡았다. 지금까지 다섯 명과 인터뷰했다.

무수한 진동음을 일으켜 육신에 노크한 이들은 기어이 자기 실존을 체득했다. 푼타씨는 "인권 문제에 자각하고 관심 갖는 사람으로서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결심했단다.

책상 뒤편에서 작품을 일러주던 그의 왼팔에 그려진 시커먼 타투가 눈에 들어왔다. 흡사 알 속에서 웅크린 여자였다. 고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새긴 도안이었다. 잔뜩 제 몸을 움츠렸던 여성은, 이미 땅을 박차고 기지개를 켰다.
#왁싱숍 #타투 #페미니스트 #펠리스잉크 #여성혐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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