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생리용품, 생리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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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피를 흘린다. 피를 흘리며 밥을 먹고, 피를 흘리며 일을 한다. 매달 찾아오는(정말이다, 나는 찾아간 적 없다) 생리는 누군가에겐 두려움의 대상이고, 누군가에겐 억울함의 근원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쾌적하게, 덜 괴롭게 피를 흘릴 수 있을까. 수많은 여성이 고민할 법한 그 '어떻게'의 답을, 나도 생리컵에서 찾았다.
올봄에 호주에서 지내는 친구로부터 받은 생리컵을 4개월째 쓰고 있다. 생리컵에 입문하고 나서도 보다 편한 주기를 지내기 위해 여러 연구를 거듭했고, 자타공인 '프로생리컵러'가 되었다. 그간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생리컵 사용담을 소개하려 한다.
[하나] 1단계는 '깊숙이 쏘옥', 잊지 마세요 먼저 일러둘 것은 '케바케(케이스 바이 케이스, 경우에 따라 다르다는 뜻)'라는 말이 그냥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리컵을 쓰면 보통 일반 생리대를 사용할 때 생기는 화학물질로 인한 생리통이 완화되길 기대한다. 그런데 생리컵 후기를 살펴보면 전에는 없던 허리통증과 골반통증이 생긴 사용자들이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생리컵을 처음으로 사용하던 달, 심각한 허리 통증과 골반통에 시달렸다. 이렇게나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는 물건을 사람들은 도대체 왜 저리도 찬양하는가, 나는 미디어의 달콤한 거짓말에 속은 것인가, 별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우리의 질은 일정선을 넘으면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컵을 제대로, 끝까지 집어넣으면 이물감은커녕 가끔 내가 생리를 하고 있는지도 잊게 된다.
두 번째 달에는 허리통증과 골반통증이 신기하게 사라졌는데, 생각해보니 첫 달에는 소심하게 삽입하는 바람에 생리컵이 애매하게 걸쳐져 있는 상태였고, 때문에 방광압박감, 허리와 골반 통증 등등 총체적 난국이 벌어진 거였다. 생리컵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깊숙이 넣어야 한다. '정말 이 정도까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깊숙이, 쏘옥.
[둘] 생리통 물리쳐줄 골든컵? 써봐야 안다 그래서 생리컵은 생리통 완화에 도움이 되는가? 나의 경우 생리통이 거의 없거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달에 은은하게 살살 아픈 정도였는데, 생리컵을 쓰면서 날카롭고 예리한 통증이 생겼다. 경도가 높은(단단한, 탄력이 강한) 컵을 사용하기 때문에 일종의 방광압박을 느끼는 것이다.
생리 첫날과 둘째 날에만 통증이 느껴지는 것에서 짐작해보면 자궁경부의 위치도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자궁경부의 위치는 생리주기 동안 바뀐다. 나의 경부는 생리 첫날과 둘째 날에 낮게 위치했다가 점점 높아지는데, 경부가 낮게 위치할 때 컵이 아래로 밀려서 압박감이 더 예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컵은 '디바컵'으로, 경도(딱딱한 정도, 혹은 탄력이 강한 정도)가 높은 편에 속한다. 경도가 높은 생리컵은 탄력이 좋기 때문에 질 내에서 쉽게 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예민한 사람의 경우 방광 압박감이 들 수 있다. 또 초보이용자의 경우 삽입하기 좋게 고이 접은 컵이 질 안에 입장하기 전에 갑작스레 펼쳐져 질 입구를 다칠 수 있다.
본인에게 맞는 생리컵의 경도는, 안타깝게도 써봐야 알 수 있다. 이게 생리컵의 최대 단점이다. 써봐야 알 수 있는 것.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생리컵 브랜드를 '골든컵'이라고 부르는데, 처음 산 컵이 골든컵인 행운을 경험할 수도 있고, 두 번 세 번 옮겨타는 수고 끝에 골든 컵을 찾게 될 수도 있다. 이르면 이번 달(8월), 생리컵이 국내에 공식 출시되면 지금 쓰고 있는 것보다 말랑한(경도가 낮은) 생리컵으로 바꿀 계획이다. 다음 컵은 골든컵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