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15년 10월 6일 오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에서 수감된지 240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나 구치소를 빠져나오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원 전 원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2심 실형선고로 구속 되었다.
이희훈
보수단체와 보수정권의 '유착'은 오래된 의혹이다.
보수단체 전열이 정비된 직접적인 계기는 2008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대규모 반대 시위로 정국이 들끓자 두 차례나 사과 담화를 발표해야 했다(2008년 5월 22일, 6월 19일).
모든 음식점의 쇠고기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농산물품질관리법 개정안이 통과된 뒤 비판 여론은 수그러들었지만, 정권 수뇌부는 이 사건을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진보단체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보수단체의 '조직력'을 두고는 여러 가지 뒷말이 나왔다.
국정원의 손을 거친 보수단체의 신문 광고원세훈 국정원장이 이명박 정부에서 4년간 자리를 지키는 동안 '댓글부대'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우군'을 만드는 데도 전력을 다했음이 검찰의 국정원 수사 과정에서 새롭게 드러났다.
원세훈 원장은 취임 첫 해(2009년) 부서장회의에서 보수단체 지원을 노골적으로 주문했다.
"보수단체에 대한 운영비 지원 문제도 재검토하세요. 좌파 정권이 없어졌는데 정권이 바뀌어도 똑같으면 뭐야? 자유총연맹이라든가 이런 데는 구청 같은 데도 다 사무실 제공해주고 그랬어요. 좀 다시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 원세훈 원장의 지시는 중요한 선거가 다가올 때마다 구체적으로 내려왔다.
"각 부서장들은 관계 단체들에,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씩 오찬간담회를 해서라도, 일주일에 한 번, 두세 번이라도 가서 거기 주요 멤버들 돌아가면서 또 시군별로까지도 불러가지고, 자꾸만 그 사람들에게 우리 우호세력을 그정확하게 알리란 말이야. 혹세무민된 거 정당화시키자는 얘기다. 그거 활동상황 보고를 해요. 그게 내가 볼 때는 오프라인 쪽에서 중요하고, 온라인 쪽에선 우리 직원들이 나서서 계속 대처하고..."(2011년 11월18일 부서장 회의)
국정원의 '민간인 댓글부대' 운용이 최근에야 밝혀진 것처럼 보수단체와의 커넥션 규명도 '걸음마'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보수단체의 왕성한 활동 배후에 국정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정황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지난달 24일 검찰은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의 원세훈 원장의 파기환송심 결심 재판에 몇 건의 신문광고를 추가 증거로 제출했다. 2011년 보수단체 자유주의진보연합이 낸 신문 광고들(7월 21일 문화일보, 8월 2일 동아일보, 12월 28일 조선일보)인데, 이 모두가 국정원의 '손길'을 거쳤다.
<문화일보>의 의견 광고는 당시 한진중공업 고공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던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을 지지하는 재야단체들의 '희망버스' 캠페인을 '절망버스', '폭력버스'라고 비판하는 내용을 담았는데, 이 문안을 다듬어준 곳이 국정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