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공모-책과 함께 머문 하루] 나는 어쩌다 북스테이 낮섬을 하게 됐나

등록 2017.09.14 10:00수정 2017.10.12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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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뭐 하고 사냐? 요즘요? 그래, 책 만든다는 건 계속 만들고 있어? 네. 참, 서점에서 일한다고 했었나? 그것도 하고요. 다른 것도 해? 글도 쓰고 취재도 하고요. 또 뭐하는데? 북스테이도 하고. 북스테이? 그게 뭔데?

오랜만에 걸려온 회사 선배의 전화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 회사 선배였다. 신의 직장, 근속연수 최장수 기업을 나온 지 벌써 2년이니까. 칼졸업, 칼입사, 칼승진(?)을 계속하다보니 어느새 6년이나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입버릇처럼 '정년까지 다녀야죠'라고 이야기하던 내가 느닷없이 사표를 내자 하루에 몇십 통씩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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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ay 낮섬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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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ay 낮섬 ⓒ 박초롱


왜 그만뒀냐. 대책은 세웠냐. 그만두니까 어떻냐. 먹고살 만하냐. 머무르는 이들은 머무를 이유를 찾기 위해, 떠나고 싶은 이들은 떠날 이유를 찾기 위해 내게 전화를 했다. 누군가는 '나오니까 불행해요. 회사에 꼭 붙어있을 걸 그랬어요'라는 답을 원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퇴사만이 살길이다! 비상탈출구는 여기야!'라고 말해주길 바라는 거 같았다.

그런 전화도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뜸해졌다. 그런데도 꾸준히 내게 전화하는 이들은 있었다. 나를 정말 아끼거나 혹은 가보지 않은 길이 여전히 궁금한 사람들. 하여, '퇴사 후 그녀는 과연?'이라는 자극적인 '찌라시' 버전으로 말해보자면 이렇다.

퇴사 후 2년, 나는 지금 홍대에서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루 동안 마음 놓고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양껏 읽을 수 있는 책을 제공하는 서비스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 넓은 옥상 전체를 빌릴 수 있는 이곳의 이름은 '낮섬'이자 '낯섦'이다. 한 번도 온 적 없는 이국의 어느 집에 온 것 같은 낯섦을 주고 싶었다. 볕이 쨍한 어느 낮, 한적한 섬에 누워 한가롭게 책을 읽는 장면을 상상했으면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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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ay '낮섬'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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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tay 낮섬 ⓒ 박초롱


직접 만든 책장과 책상에는 책이 빼곡하다. 편협한 주인장의 취향에 따라 문학과 철학, 미술책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오는 손님의 취향에 맞춰 책을 한 권씩 선물한다. 책 읽기에 최적화되었다는 독서등과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아로마향도 피운다. 이곳의 콘셉트는 다 '책'이다.

어쩌다 북스테이를 하게 되었을까? 선배에게 전화가 걸려올 때마다 내가 전한 근황을 따라가보면 그리 이상하지도 않았다. 퇴사 후에는 1인 출판사를 차렸고, 두 명의 동료들과 함께 계간잡지를 만들었고, 출판 홍보 프리랜서로 일하거나 서점을 지키는 아르바이트를 했으니까.


글 쓰는 일로 돈을 벌었다. 문자 그대로 손만 뻗으면 어디에나 책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커리어를 따라가다 보니 북스테이를 하게 되었다'는 문장은 정확하지 않은 것 같다. 책이 좋았고, 책 곁에 있고 싶었고, 그래서 그 방향을 향해 걷다 보니 북스테이를 하게 된 것뿐이다. 둘은 다르다.

"그래서 어때? 할만해?"

다행히 북스테이를 찾는 사람이 꽤 있었다. 이것 외에 세 개 정도의 직업을 유지하면 먹고 살만큼은 된다. 그러나 좋아하는 걸 찾아서 목숨 걸고 하라는 20세기 자기계발서적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고, 마음을 따라가다 보니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속 편한 시나리오를 쓰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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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 pixabay


내가 좋아서 하는 일로 버는 돈은 집세와 공과금을 내고 아껴서 장을 보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사고 친구들과 맥주 한 잔씩 할 정도다. 결코 보험회사들이 겁주는 100세 인생에 대비할 만한 재무계획을 세울 정도는 아니다. 시간이 많이 생기고 스트레스가 줄었지만 들쭉날쭉한 수입에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미농지로 만든 귀가 '사! 벌어! 다시 사! 다시 벌어!'라는 자본주의적 속삭임에 팔랑거릴 때도 많다.

그렇지만 행복하다. 행복이 삶의 목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다행스럽게도 내가 추구하는 가치를 좇으면서 행복하여 내적인 평안도 이루고 있다. 안정적인 울타리 밖에서 벗어나 남들이 지옥이라 일컫는 '조직 밖'에서 사는 것이 내 성격과 신념에 맞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웬만한 일이 일처럼 느껴지지 않아 즐겁고, 내가 하는 대부분의 일이 조직이 아닌 나의 성과로 남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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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xabay ⓒ pixabay


'회사를 나왔더니 행복하다'라는 문장은 틀렸다. 세상 쿨한 엄마의 말을 빌려보면 '평안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고 '젊어서 고생을 사서 하는 게 아니라 나이불문 고생을 사는 인간들이 있을 뿐'이다. 성향에 따라, 꿈에 그리던 삶의 모습에 따라 삶의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회사를 나와서 행복한 게 아니라 살고 싶은 대로 살아서 행복하다.

회사 다니느라 바쁠 때 나의 꿈은 어디 섬 같은 데 틀어박혀 책이나 실컷 읽는 것이었다. 쨍한 볕 아래 파라솔을 치고 반쯤 누운 자세로 느리게 이 책 저 책을 뒤적거리고 싶었다. 이곳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에서 그 낯섦을 즐기고 싶었다. 하여, 그 열망을 이제와 북스테이 낮섬[낯섦]으로 해갈하고 있다. 나는 당신을, 완전히 낯선 곳으로 데려가고 싶다.
덧붙이는 글 책과 함께 머문 하루 북스테이 체험 수기 응모작
#북스테이 #퇴사 #직장인 #게스트하우스 #낮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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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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