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건 아니랍니다>표지.
푸른숲
프리랜서 편집자인 가노코 히로후미의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라는 책은 일본의 매우 특별한 노인요양시설 '다쿠로쇼 요리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외부와의 접촉은 철저히 차단한 채 '객사할 각오'로 버티는 험악한 치매 노인과의 만남이 시작이었다.
노인은 오랫동안 씻지 않아 오물이 두 다리를 타고 흘러내렸고 그녀와 그녀의 집에는 악취가 진동했다. 등은 굽었고 옷은 갈아입지 않으니 그 모습이 영락없이 요괴같다고 해서 마을 주민들을 그 노인을 '요괴할멈'이라고 불렀다. 주민들이 노인요양시설로 가기를 권유했으나 노인은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다. 간병 전문가 시모무라는 이 '엄청나게 굉장한' 할머니에게 빠져들었다.
"치매에 걸린 것이다. 의연한 모습으로 걸렸다." (20쪽)'객사할 각오'란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거기서 계속 살아가겠다는, 세상에 대한 선전포고다. 자신이 살 장소에 깃발을 세우고 그 밑에 털썩 주저앉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여유 있고 당당하게 주먹밥을 씹어 먹겠다는 오기의 표명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통쾌하지 않은가. 우리는 힘들게 이 세상에 태어났다. "즐기자! 발버둥을 치더라도!" (156쪽)시모무라는 알고 있는 모든 시설에 연락을 취했지만 단 한군데도 이 노인을 받아주지 않았다. "할머니 한 분도 보살필 수 없다니, 그게 무슨 복지예요! 무슨 간병이에요! 당신들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야!"(23쪽)라고 분노를 쏟아낸 그녀는 단 한 명의 노인을 위해 팔을 걷어붙인다. 시모무라는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결국 노인요양시설을 만든다. '요리아이'의 시작이다.
'요리아이'의 철학은 노인 한 명이라도 그의 삶을 온전히 책임진다는 것이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혼란과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그들에게 공감하고 그들과 맞추려고 한다. 무분별하게 그들을 구속하거나 제지하고 흐름을 방해하면 안 된다고 믿는다. 강 하나하나에는 나름의 흐름이 있듯이 바다로 향하는 인생의 여정은 각자 다르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치매가 '업병'이라니, 정말 그런가요?시모무라의 동료인 간병 전문가 무라세는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제목으로 강연을 다닌다. 그는 노화현상의 하나에 지나지 않는 '치매'를 마치 업병(전생의 악업 때문에 생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병)처럼 취급하고 '예방'을 외치는 풍조에 대해 "정말 그럴까요?"라고 되묻는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늙음'이란 정말 그런 걸까. 그렇게 추한 것일까. "내가 그렇게 방해가 되는 사람이냐?"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의 내부에서 들려온다. 땅 속 깊이 묻힌 항아리 안에서 울리는 통곡처럼 들려온다. 듣지 않는 쪽이 행복할지도 모르는 목소리다. 한번 들으면 귀에서 떠나지 않는 목소리다. 귀를 막아도 들리는 목소리다. 사회에서 내몰린 많은 사람들이, 개가, 고양이가, 고립된 세계에서 내지르는 목소리다." (190쪽)치매라는 질병에 안 걸리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혹여 발병하더라도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치매 어르신들을 모시다보면, 많은 사람들이 치매라는 질병에 대해 과도한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새겨보게 된다.
치매 초기 단계는 약물치료를 병행할 경우 일반인과 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 중증이라 하더라도 가족들만 간병을 전담하는 대신 적절한 보건복지서비스를 연계하고 사회가 책임지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얼마든지 안정된 노후를 보낼 수 있다. 오히려 치매를 더럽고, 위험하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무서운 질병으로 생각하는 과도한 공포심이 이 병에 대한 적절한 대처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모두의 생명 '요리아이의 숲' 치매 환자라고해서 사회와 격리되어 시설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살아온 익숙한 터전에서 평범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요리아이'의 간병인들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을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는 사회는 언젠가 치매에 걸리지 않은 사람도 거치적거리는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며 "쓸모가 없어 도움이 안 되는 존재로 또는 국력을 떨어뜨리는 밥도둑으로. 아무리 예방하려고 노력해도 소용없다. 자기는 치매에 걸리지 않았다고, 자기는 치매에 걸린 사람이 아니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소용없다"(191쪽)고 충고한다.
'요리아이'는 치매 환자라 하더라도 존엄성을 잃지 않도록, 그들도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연스럽게 생활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갖추고자 한다. 치매 환자를 시설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일상세계로 끌어내는 것이다.
이를테면 '배회'의 문제를 안고 있는 치매 노인도 방치하면 문제가 되지만 함께 걸으면 '산책'이 된다. 이것은 '치매에 걸려도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노인들의 욕구와도 맞아떨어진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요리아이'는 간병을 지역사회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망이 곧 안전망이 되는 복지를 꿈꾼다.
비록 치매에 걸렸을지라도 익숙하고 평범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생활이 가능할까. 유쾌한 치매 세계로의 초대, '요리아이'는 그것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모두의 생명 '요리아이의 숲'을 방문하며- 다나카와 슌타로여기는 다양한 생명들의 거처꽃을 피우는 생명, 하늘을 나는 생명명상을 즐기는 생명, 사납게 포효하는 생명바닥을 더듬는 생명, 비수를 쏘아대는 생명기력을 다하여 일하는 생명, 그리움에 젖어 눈물 흘리는 생명여기는 역시 다양한 생명의 정류장오는 사람이 있고 가는 사람이 있고젊은 잎, 붉은 잎, 시든 잎, 떨어지는 잎춘하추동 형형색색으로 물들며 시간을 보낸다. 여기는 즐겁고 소중한 특별 노인요양시설 (286쪽)
정신은 좀 없습니다만 품위까지 잃은 건 아니랍니다 - 살면서 늙는 곳, 요리아이 노인홈 이야기
가노코 히로후미 지음, 이정환 옮김,
푸른숲,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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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시골 농촌에서 하루 하루 잘 살기 위해.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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