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학>
다산북스
서두가 길었다. 과거의 실수들을 구구절절 떠올린 건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을 읽어서다. 시중에 나온 경제/경영책은 대개가 투자라는 이름의 투기를 가르치고, 허황된 꿈을 심어준다는 나의 편견을 잠재워 주는 책이었다. 선량한 책의 저자분들에겐 미안하지만, 내가 가진 그 편견이 아주 근거없는 망상만은 아닐 것이다. 적어도 확률상.
바로 지금, 인터넷 서점을 열고 경제/경영란을 들어가봤다. 책 제목들을 그대로 옮길 순 없지만, 내 말을 따르기만 하면 부자가 되고 말 것이라는 색깔마저 자극적인 책들이 화면을 도배한다. 마치, 어리숙하게 가만히 있는 자들은 늙고 병들어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갈 것이라고 위협하는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면, 나의 착각일까.
기획자 서문은 당돌하게 시작한다.
"우리 더 이상 경제 호구로 살지 맙시다!" 나에게 하는 말임이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를 제대로 알지 못해 어려움을 호소한다. 더군다나 12년이 넘는 의무 교육은 도리어 우리를 경제 호구로 만들어버렸다. 경제를 그저 수험과목 중 하나, 혹은 암기해야 하는 학문으로 받아들이게 하여 대다수의 청년세대들조차 경제 호구가 된 채 사회에 내던져지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는 낯부끄러운 위안과 함께 은근한 동지애가 솟는다. 자, 모든 경제 호구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총 11강으로 구성되어 있다. 금리, 환율, 주식, 부동산을 비롯하여, 인구, 기술과 일자리 등등 실로 방대한 분야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모든 항목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실상, 경제란 원래가 그런 것일테니.
광범위하지만, 각 항목을 다룸에 있어서도 결코 소홀하지 않다. 가령, 주식은 기본적 분석과 기술적 분석으로 나뉘며, 기본적 분석을 소홀히 한 투자는 요행을 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점, 투자를 할 때는 세계적 트렌드를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지속적인 성장 가능성'을 보고 신중하게 투자해야 함을 당부한다.
주식을 공부하기 위해서 참고할 만한 양서들을 추천하고, 소위 '올인'보다는 서로 상관도가 낮은 5-7개의 종목을 골라 분산투자할 것을 권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독자를 위해서, 저자는 1인 가구가 많아지는 인구구조의 특성상 백화점과 대형마트보다는 편의점 업체들의 장기적인 주가 상승이 예상된다는 조언도 놓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조언도 있었다. 주식을 하려거든 자신의 투자 성향을 제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 '안정형'의 경우, "은행에 예금만 맡겨야 하는 사람인데 이런 분들이 주식에 투자하면 손실이 날까 봐 밤에 잠도 잘 자지 못"한다고.
나는 이것을 진작 알았어야 했다. 십여년 전, 은행 직원이 권하는 적립식 펀드에 별 생각없이 가입했다가 손실을 보고 말았다. 소액이었음에도 여태 그것을 기억하며 곱씹는 건 바로 내 성향 때문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경제 호구가 된 일이 한두 번은 아니다.
경제에 관련된 복잡한 용어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서도, 납득이 갈 만한 자료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며 한국 경제의 전체적인 흐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또한, 각 장(chapter)마다 실제 매체에 보도된 기사들을 수록하고 분석하여, 독자 스스로 수많은 정보들을 비판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을 기르도록 돕고 있다.
경제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한창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인공지능과 로봇까지 이어진다. 필연적인 일자리 구조의 변화와 직업의 미래에 대한 담론은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교육 시스템의 바람직한 방향과 저자가 생각하는 다음 세대를 위한 올바른 교육철학 또한 제시하고 있다.
내 삶의 경제를 다잡는데도 도움이 되지만, 한국사회의 이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데도 책은 한몫을 하고 있다. 한국 가계자산 중 75%가 부동산이고, 한국 국부의 80%가 부동산자산으로 구성되어 있음에도, 과거 정부는 세 부담 형평성이라는 이름 하에 근로소득세의 부담만 가중시켰다. 이는 결국 부자 증세가 아닌 보편적 증세임이 증명되었다. 또한, 4대강 사업에 투입된 22조 원은 결국 국민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지속적으로 묻고, 따져봐야 할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저자와 다른 의견을 가져 이 책이 불편한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제시하는 구체적 자료들을 보며 자신의 의견을 재검토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결국 저자의 의견에 모두 반대하게 될지라도, 같은 자료로 다른 의견을 도출하는 것 역시 흥미로운 과정일 듯하다.
유럽 어느 국가에서는 십대 때부터 이미 경제와 금융을 큰 비중을 두고 가르친다니 부러울 따름이다. 한국도 머지않아 그리 되길 바라지만, 일단은 나의 무지를 탓하며 스스로를 구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만이 최선이겠다.
이 책을,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 한다며 나를 다그치던 엄마께 꼭 권하고 싶다. 그러나 엄마가 읽으실리는 만무하니, 경제 호구이거나 경제 호구가 될 위기를 가까스로 피하며 살아가는, 가끔은 스스로의 선택이 옳은지 자문하며 머리 아파하는 나의 동지(!)들께 권하고 싶다.
선대인의 대한민국 경제학 - 5천만 경제 호구를 위한
선대인 지음, 오종철 기획,
다산북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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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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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서라도 집 사야한다"는 엄마에게 권하고 싶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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