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작 소나무 숲이 없는 송림사

[팔공산 역사기행③] 송림사

등록 2017.10.10 11:53수정 2017.10.10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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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달리 소나무 숲이 없는 송림사

저 유명한 팔공산 갓바위에서 주말에만 팔공산 일대를 운행하는 시내버스인 팔공3번을 타면 팔공순환도로를 달린다. 버스는 갓바위 주차장을 빠져나온 다음, 동화사 쪽으로 방향을 잡아 시원스레 달린다. 어느덧 동화교에 이르자 양쪽 길은 계곡을 찾은 사람들과 차량으로 북적였다. 그런데 승용차가 아닌 버스를 탑승한 탓에 승용차로 달린다면 볼 수 없었을 풍경들을 모두 볼 수 있었다. 특히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았기에 계절의 향기가 짙게 물들어 있는 주변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기행을 떠날 땐 자가용이 아닌, 버스와 발걸음을 이용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른다. 이런 기행이야말로 더욱 눈에 보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연이어 버스는 팔공순환도로를 달렸다. 때로는 구불한 길이 나타났고, 때로는 정겨운 시골풍경이 나타나기도 했다. 쭉쭉 뻗은 가로수를 정면으로 보며 달리는 기분은 상쾌했고,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신비로움 속에 외경심을 불러일으켰으며, 차창 가까이의 초목들은 생명력을 한껏 뽐내고 있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이런 정서를 느껴보는 것은 쉽지 않은 경험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팔공3번의 노선을 두고 '황금노선'이라 부르고 싶었다.

이내 버스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자 고려시대 초조대장경을 보관했던 부인사를 지나 칠곡 동명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다. 동명 방면의 길은 넓게 펼쳐져 있었는데 길 주변은 대부분 식당으로 채워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송림사 입구에 도착했다.

개울이 흐르고 햇볕이 내리쬐는 마을의 좁은 길을 천천히 걸어 마침내 송림사에 이르렀다. 처음 마주한 송림사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로, 신라 때 창건된 고찰이었다. 다만 송림이라는 이름과 달리 소나무가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여느 탑과 달리 특이한 갖춤새를 뽐내고 있는 5층탑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탑신(塔身) 위에는 꽤 화려한 장식이 솟아있었다.

심지 굳은 인상의 송림사 5층 전탑

탑의 기단부를 제외하면 단순한 돌이 아닌 벽돌로 쌓아올렸는데, 경주의 분황사 탑을 연상케 했다. 실제 이 탑은 통일신라 때에 조성되었고 고려 때에 중수한 흔적이 있으며 탑 내부에서 보물급의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강렬한 태양과 하늘 아래 우뚝 선 탑은 풍만하면서도 심지가 굳은 인상이었다.


사실 송림사 역시 우리나라 여느 사찰처럼 소실과 중수의 과정을 겪었는데, 이 탑만큼은 굳건히 이곳의 유래와 역사를 말없이 증언해주고 있는 셈이다. 아무튼 그동안 흔히 볼 수 있던 탑들과는 여러모로 달라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웅전은 송림사에서 가장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었다. 고풍스럽기보다도 세월이 묻어나는 그 자연스러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더욱 아련하게 했다. 대웅전 건물의 네 면 중 옆과 뒤쪽에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그림의 내용은 소를 얻은 어떤 소년이 스님이 되고, 점차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으로 보였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불과 양쪽에 보현보살,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는데, 세 불상 모두 큼직하면서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세 불상은 근래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송림사 대웅전은 문화재의 보고(寶庫)가 된 셈이다. 한편, 대웅전 앞에는 가지가 두 갈래로 뻗은 독특한 형상을 한 고목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대웅전 바로 옆의 산령각에는 허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산신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이 걸려 있고, 그 오른쪽에는 명부전이 있다. 또 명부전의 바깥 3면에는 지옥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경내 전체를 둘러본 나는 송림사의 연혁을 좀 더 알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이를 알려줄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집에 돌아와 옛 기록들을 들추어보니 이곳에는 고려시대 <삼국유사>의 저자로 유명한 일연스님의 제자였던 보감국사가 잠시 머물렀다는 기록을 찾을 수 있었다(<동문선> 참고).

송림사 일주문을 나와 시간에 맞추어 팔공3번을 타기 위해 서둘렀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버스를 놓치지 않고 탑승할 수 있었다. 아마 이 버스를 놓쳤더라면 1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마침 이곳 송림사에 오기 위해 갓바위에서 탔던 그 버스였다. 마음씨 좋은 기사 분은 나를 알아보며 여러모로 친절을 베풀어주셔서 참으로 감사했다. 팔공3번은 매년 11월까지 운행한다.
#팔공산 #송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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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공부하고 있는 시민. 사실에 충실하되, 반역적인 글쓰기. 불여세합(不與世合)을 두려워하지 않기. 부단히 읽고 쓰고 생각하기. 내 삶 속에 있는 우리 시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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