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상관 없을 누군가의 '노동'에 관심 둬야 할 이유

[서평] 우리 사회 노동전 <연장전>

등록 2017.10.16 10:06수정 2017.10.16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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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전> 책표지. ⓒ 한겨레출판

누구나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서 먹고 살아야 한다. 평생 일하지 않아도 호화롭고 여유롭게 사는 금수저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노동하는 사람은 누구나 연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의 연장에는 그 누군가의 노동과, 삶이 스며있다. 이런 연장을 통해 누군가의 노동을 들여다보거나, 그리하여 헤아려 보는 것은 어떨까.

<연장전>(한겨레출판 펴냄)은 누군가의 노동과,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연장으로 우리의 노동현실을 들려주는 책이다.


아마도 비정규직을 비롯한 우리 사회 약자들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노동운동가 박점규가 썼다. 그에 멋진 풍경 사진보다 사람이 있는 사진을 더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좋아할 사진가 노순택이 사진을 더했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은 미용사, 굴삭기 기사, 조경사, 노래노동자, 청소노동자, 정비사, 주물공, 인터넷 설치기사, 형틀목수, 공인노무사, 어린이집 교사, 수영강사, 손해사정사, 집배원, 용접사, 화물기사, 재봉사, 간호사, 사진가, 요리사, 제화공, 만화가, 콜센터 상담사, 인권운동가 이렇게 24곳 노동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그들을 각각 인터뷰했다. 누군가 주문한 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는지, 동선을 따라 다니며 노동 과정들을 스케치하듯 들려준다. 출근 시점부터 퇴근까지를 들려주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잠든 시각에 일을 하는 노동이라면 저자들 역시 그처럼 깨어서 취재하는 식이다. 그래서 24편의 글들에선 현장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지하철 정비 노동자를 취재할 때 그가 무심코 보여준 방진마스크에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노동을 하는데도 정규직 노동자에겐 얼굴을 모두 보호할 수 있는 전면마스크가 지급됐고, 비정규직 노동자에겐 호흡기만 보호하는 반면마스크가 지급됐다. 고용의 차별이 안전의 차별, 생명의 차별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럴 때 정규직 노동자는, 이럴 때 비정규직 노동자는, 이럴 때 국가는, 이럴 때 저널리즘은, 무엇을 항의하고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까.' - 들어가는 말(노순택)에서.

전동차는 제어 방식에 따라 저항차, 초퍼차 그리고 인버터제어전동차로 나뉜다고 한다. 이중 저항차는 서울 지하철이 개통될 당시인 1974년에 일본에서 수입한 1세대 모델이라고 한다.

여섯 번째 정비사 편. 전동열차(아래 전동차) 정비사 유성권씨와 심현진씨를 인터뷰했다. 물론 한밤중에다. 이들은 저항차부터 1980년대 영국에서 수입된 2세대 모델인 초퍼차, 그리고 1990년대에 도입된 인버터제어전동차까지, 우리나라에서 현재 운행되고 있는 전동차 모든 모델들을 정비한다고 한다.


오래 일했기 때문에? 그래서 어떤 차나 막힘없이 정비할 수 있을 정도로 경험이 많아서? 아니다. "이병박 전 대통령이 25년 폐차 규정을 없애, 늙고 병든 저항차가 아직도 운행되고 있기 때문(78쪽)"이라고 한다. 

거의 매일 지하철을 이용하는 내게 '이명박 전 대통령이 25년 폐차규정을 없앴고, 그로 현재 오래된 전동차가 운행되고 있다'는 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여간 불안하게 와 닿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은 출간된 직후인 7월 중순에 읽었다. 그때 이후 지하철은 편하게 이용하는 대중교통이 되지 못하고 있다.

책을 참고하면, 사고를 일으킨 전동차들은 90년대 도입된 인버터제어전동차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오래전에 도입됐다는 늙고 병든 저항차까지 운행되고 있다는 현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2017년 8월 15일 현재 서울지하철 개통 43주년이라고 한다. 이처럼 그리 짧다고만 할 수 없는 세월을 달려온 서울지하철 초창기 도입된 차라면 박물관에 들어가야 할 자료이어야 하지 않을까?

'서울메트로는 2008년 경정비, 모터카, 철도장비,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하청업체에게 넘겼다. 돈을 아낀다고 정비 인력을 줄인 것이다. 전국 7개 지하철공사는 방호, 역무 운영, 전동차 정비, 구내 운전 등 시민의 생명과 관련된 안전 업무까지 간접 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맡겼다. 7개 공사의 비정규직 비율은 28.5%로 늘어났다. 대전지하철 22개역 중 20개 역이, 광주지하철 19개 역 중 17개 역이 민간에 위탁된 비정규직 역이다. 2016년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서울시 지하철 1~9호선에서 연평균 3000여건, 하루 평균 8건의 스크린 도어 고장이 발생하고 있다. 87.9%가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에서 일어났다. 아윤의 논리가 안전의 문을 흔들고, 효율의 논리가 생명의 바퀴를 멈춰 세웠다.' - 79~80쪽.

올해 지하철 사고가 유독 잦다.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그중 신호대기로 지하철 2호선이 한 시간 동안 멈춰버렸던 4월 28일의 사고 전동차는 26년 된 것이었고, 앞서 1월 22일에 잠실새내역에서 화재가 발생한 전동차는 27년 된 노후모델이었다고 한다. 이 두 사고만 보더라도 25년 이상 된 전동차들은 얼마든지 불편하거나 위험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2006년 9월에 2차례, 4시간 가량 운행 중인 전동차 기관실에 타고 기관사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들은 말했다. "10량짜리 전동차 한 대가 러시아워에 책임지는 승객은 자그마치 3천명이나 된다"고. 그래서 더욱 불안하게 체감하며 오늘도, 내가, 어쩔 수 없이 이용해야만 하는 지하철이다.

누군가 혹은 그들만의 노동, 그 부당한 현실은 사실은 이처럼 나와 연결되어 있었다.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며 종종 외면하기도 하는 누군가의 사정에 귀 기울여야, 우리 사회 부당한 노동현실이 최대한 많이 알려지고 바뀌어야만 하는 이유다. 그래서 이런 책은 고맙게 읽히기까지 한다.

이 책 <연장전>에 마음이 많이 쏠렸던 또 다른 이유는 책을 통해 만나는 노동들이 대개 친구 또는 지인이거나 이웃 누군가가 하고 있는 일이라는 것. 정작 그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는데, 책이 알려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기봉씨가 주로 쓰는 가위는 단가위, 장가위, 숱가위 3종이다. 모두 10년이 넘은 가위들로 하나에 20만 원이 넘는다. 독일제 재규어 미용가위는 60만 원을 호가한다. 양날이 빗처럼 갈라져 있고, 갈라진 날에 홈이 4개씩 파여 있는 가위로, 새기커트(머리카락 끝을 뾰족하게 깎는 커트)를 할 때 칼과 함께 쓴다.

사람의 머리카락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해서 비싼 가위도 2, 3년 쓰면 무뎌진다. "습기를 머금었던 머리카락이, 건조한 계절에는 습기가 날아가면서 단단해져 가윗날도 더 많이 닳아요. 머리를 깠다보면 날이 밀린다는 느낌을 받죠." 대부분의 미용사들은 수리를 맡기지만, 그는 가윗날을 연마용 숫돌로 갈고, 코팅용 숫돌로 다듬어 사용한다. - 20~21쪽,

이처럼 그 연장을 쓰는 당사자나 알 수 있을, 혹은 내가 아는 누군가가 밥벌이를 하며 하루 종일 만지는, 그래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도 그 연장을 쓰는 당사자가 아닌 까닭에, 그리고 미용사 기봉씨의 가위들처럼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눈여겨보거나 일부러 생각해 본 적 없는 연장들에 대해 들려주고 있어서 흥미로운 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 책처럼 우리 사회 부당한 노동 이야기를 할 때 종종 언급되곤 했던 노동(현장)들은 주로 청소노동자나 콜센터 상담원, 간호사, 대형마트 계산원, 요양보호사 등이었다. 최근 택배원이나 우체국 집배원, 인터넷설치기사 등의 부당한 노동현실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연장전>은 글을 시작하는 부분에 이미 언급했듯 조경사나 미용사, 형틀목수, 사진가, 노래노동자, 조경사 등 그동안 거의 이야기되지 않았던 노동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중에는 평소 좀 부러워하던 분야거나, 자주 보면서도 아는 것이 없는데 알려주고 있어서 호기심을 앞세워 읽은 이야기도 있다. 그래서 더욱 끌리며 읽은 책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연장전> -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 (박점규 글, 노순택 사진) | 한겨레출판 | 2017-06-30 ㅣ정가 14,000원.

연장전 - 우리 시대 노동의 풍경

박점규.노순택 지음,
한겨레출판, 2017


#노동(노동문제) #지하철사고 #비정규직 #박점규 노순택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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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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