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미수습자 양승진 선생님의 아내 유백형씨가 남편이 그려진 액자를 들고 있다.
이희훈
1985년 8월 17일 토요일. 경기도 안성, 지하 1층에 있는 백운다방. 오렌지색 투피스. 검은 줄무늬 양복.
아내(유백형)는 아직 생생하다. 남편(고 양승진)을 처음 만났던 날, 만났던 곳, 입었던 옷... 유도를 했다던 교사 1년차 스물아홉 청년은 덩치가 산만했다.
"아휴, 땀을 많이 흘리시네요.""아, 네네..."어색했던 맞선 자리. 아내는 뚱뚱하고 말수 적은 그 청년이 맘에 들지 않았다. 전화번호도 주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안녕히 가세요."일주일 후,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전화를 받은 엄마의 다급한 손짓. 어서 받아보라는 재촉이었다.
"여보세요.""네, 지난주에 만난 양승진입니다.""네, 안녕하세요.""혹시 지금 커피 한 잔 하실래요?"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봤다. 오후 10시 30분.
'뭐야, 이 시간에...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옆에 앉아 귀동냥을 하던 엄마의 들릴 듯 말 듯한 속삭임.
"만나봐, 어떻게 한 번 보고 사람을 안다니?"화장도 하지 않고, 대충 겉옷을 걸쳤다. 안성 터미널 앞 2층 소라다방. 구석에 있던 덩치 큰 청년이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시간도 늦었는데 불러내서...""아니에요. 저녁식사는 하셨어요?""네."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이야기가 오갔다. 이윽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내일 서울대공원 가실래요?""네? 네... 그래요."일요일, 8월 땡볕의 서울대공원. 김치찌개를 먹던 청년은 또 땀을 뻘뻘 흘렸다. 가방에서 꺼낸 손수건을 툭 건넸다.
서울대공원을 걷고, 평택에서 영화를 보고, 안성에 와서 대림동산에 들렀다. 다리가 아파 벤치에 앉았는데 청년이 "잠시만 기다려보라"며 슈퍼 쪽을 향해 걸어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의 손엔 아이스크림 하나가 들려 있었다.
'두 개도 아니고 하나야?'
자세히 보니 쌍쌍바. 큰 덩치의 청년은 톡 하고 아이스크림을 갈라 한쪽을 건넸다.
"날씨가 많이 덥죠?"청년의 이마에는 여전히 땀이 송골송골. 아내는 속으로 웃었다. 썩 멋있진 않지만, 그 나름의 자상함, 그 나름의 재미. 아이스크림을 나눠먹은 두 사람은 자리에 일어났고, 대림동산을 나오는 길에 처음 손을 꼬옥 잡았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 두 사람은 1986년 3월 23일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지는 제주도였다.
[2014년 4월 15일] "좋겠네, 제주도 또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