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전 주변에 살다가 자신과 아내, 아들, 장모 등 일가족 전원이 암과 자폐증 등 진단을 받자 소송을 제기한 이진섭씨. 지난 2015년 5월 부산 기장군 자신의 사무실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모습.
이문예
법원은 이씨의 직장암과 아들(25)의 자폐증에 대해서는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갑상선암과 달리 이들 질병은 원전과의 관련성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당시 판결은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의 건강 피해를 인정한 첫 사례가 됐다는 점에서 의의가 컸다.
이씨 가족의 승소는 전씨가 참여하고 있는 전국 4개 원전 주변지역 주민 공동소송의 기폭제가 됐다. 2014년 11월 부산환경운동연합 등이 주도해 1차 공동소송인단을 모집했고, 현재 4차에 걸쳐 모집된 갑상선암 환자 618명과 그 가족 등 총 2516명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소송단은 갑상선암 피해자에게 치료비와 함께 1인당 1500만 원을, 배우자와 부모자녀에게는 각각 300만 원과 100만 원을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소송대리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민심의 서은경(36) 변호사는 "공동소송 원고를 '갑상선암 피해자와 그 가족'으로 한정하고 '원전 반경 10km 이내에 5년 이상 거주' 조건을 정한 것은 이진섭씨 소송의 영향"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주변 지역주민들이 다양한 암 증세를 보이고 있지만 법원이 인과관계를 인정한 것은 갑상선암 뿐이므로 여기 집중하기로 했다는 뜻이다.
동국대 의대 김익중(57) 교수의 저서 <한국탈핵>에 따르면 가동 중인 원전에서 배출되는 주요 방사성물질은 삼중수소, 요오드131, 스트론튬, 플루토늄, 세슘137, 코발트 등이다. 이런 방사성물질은 원전 지역주민들의 호흡기, 음식 등을 통해 몸속에 들어가 '내부피폭'을 일으킬 수 있다. 그러면 각종 암, 불임·유산·기형 등 유전병, 그리고 심장질환 등이 발병할 수 있다. 특히 세계 모든 인종에서 여성 갑상선암 발병이 두드러지는데,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성호르몬의 작용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십 년 피폭' 주장에 한수원은 '기준치 이하' 응수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의 공동소송에서 쟁점은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물질과 갑상선암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를 규명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보통 손해배상 소송에서 가해자의 불법행위를 입증할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지만, 이번 사건처럼 일반인이 쉽게 입증하기 어려운 사안인 경우 피고인 기업 등에 입증책임이 넘어간다. 지난 2012년 대법원의 공해소송 관련 판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피고인 한수원 측이 먼저 피해보상 책임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고, 원고 측이 이를 반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서 변호사에 따르면 한수원 측은 지금까지 '원전에서 방사성물질이 유출된 건 맞지만 이는 극히 미량에 불과하며, 자연 상태에 존재하는 양과 비슷한 (기준치 이하) 방사선량을 갑상선암 발병의 주범으로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태훈 한수원 홍보팀 차장은 지난 8월 18일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저희들은 아니라고(원전이 갑상선암 발병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힐 게 없다"고 말했다.
반면 원고 측은 원전에서 배출된 방사성물질의 양이 한수원 주장보다 많으며, 한수원이 내세우는 '피폭 기준치'는 비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 월성원전 주변지역 공동소송인단을 지원하고 있는 이상홍(43)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2015년부터 우리 측 증인으로 소송에 참여한 크리스토퍼 버스비(72·영국) 유럽방사선위험위원회(ECRR) 과학위원장은 한수원이 내세우는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ICRP) 기준치 산정방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고 말했다. 그는 "ICRP 기준 이하의 저선량(소량) 방사선도 수십 년간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충분히 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게 버스비 박사와 우리 측의 주장"이라고 덧붙였다.
버스비 박사는 또 지난 2015년 8월 부산지법 법정에서 "(ICRP 기준을 따른다 하더라도) 이미 지난 1970년대 고리원전 주변에서 한수원이 주장한 것보다 많은 양의 방사성물질이 배출됐다"고 지적했다. ECRR은 1997년 유럽의회 내 녹색당이 주도해 설립한 단체로, 그간 국제기준으로 사용돼 온 ICRP의 방사선위험측정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 왔다. 반면 1928년 창립된 ICRP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으로부터 운영자금을 받아 방사선 안전기준을 설정하는 국제방사선학회의 위탁기관이다.
2014년 12월부터 시작된 공동소송은 그간 재판부가 계속 바뀐 탓에 아직도 1심 심리가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새 재판부 아래 다시 심리가 시작됐고, 원고 측 대리인들은 갑상선암 피해자 618명 각각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담은 진료기록감정서를 새로운 증거로 준비했다.
울진지역 소송인단 주민대표도 맡고 있는 전간술씨는 "지역주민들이 이렇게 집단적으로 암에 걸리는 건 100% 원전과 관련이 있다"며 반드시 한수원의 책임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걔네들(한수원)은 변호사가 9명이나 재판에 오고, '너희 돈 때문에 소송하는 거지' 하고 비웃는데, 내가 꼴랑 돈 1500만원 받아 뭘 하겠냐"며 "우리가 이렇게 소송하는 것은 다음 세대 애들을 위해 잘못된 건 고쳐야 된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 전간술씨 목젖 주위로 U자 모양(하얀 점선 표시)의 갑상선암 수술 흔적이 보인다.
나혜인
국가의 '가해자 심리'가 진상규명 걸림돌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건강 피해에 대해 의학전문가들은 엇갈린 의견을 보이고 있다. ICRP 의료방사선분과위원인 강건욱(51) 서울대 핵의학과 교수는 지난 24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방사선량과 암 발생률이 비례 관계에 있는 건 맞지만, 원전에서 유출됐다는 방사성 물질의 양이 자연방사능이나 의료방사능에 비해 낮은 것 역시 엄연한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원전 주변지역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친 방사선량이 자연상태에 존재하는 방사선이나, 컴퓨터단층촬영(CT) 등의 의료방사선량 수치에 비해 낮다는 얘기다. 강 교수는 방사선량 수치가 낮은데도 원전 주변지역에 갑상선암 환자가 많다면 제3의 원인을 찾아 예방책을 강구할 일이지, 원전 탓을 하는 건 무책임하고 논리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김익중 교수는 지난 22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아무리 적은 양의 방사선이라도 암 발병 가능성을 높인다는 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는' 분명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피폭량이 적으면 위험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거고, 많으면 위험성이 비례해서 늘어나는 거지 (이 정도면 안전하다는 기준치인) 역치(threshold)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특히 암과 유전병은 피폭량과 정비례 관계에 있고 역치값이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자연방사선과 의료방사선에 견주어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선량이 무해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자연방사선은 인간이 피할 도리가 없고, 의료방사선 역시 위험 대비 이익이 크기 때문에 인간이 '이용'하는 것이지 그 수치가 미미하다고 해서 암 발병 위험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김 교수는 대규모 역학조사를 통해 원전 주변지 역 주민들의 건강피해를 규명할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는데, 국가기간산업으로 운영되는 원전의 특성상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가해자' 입장에 놓이기 때문에 미온적으로 대처해왔다고 꼬집었다. 그는 "원전 인근 주민들의 갑상선암 발병 비율이 높다는 (서울대 등의) 역학조사결과가 나왔으니, 이제 국가가 나서서 제대로 추적조사를 해야 한다"며 적극적인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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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에 걸린 원전 현장감독 "내 손으로 지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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