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 당신이 읽어야할 책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부터 <대량살상수학무기>까지

등록 2017.12.08 08:44수정 2017.12.08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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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면 으레 '올해의 책'을 선정하곤 한다. 한국에서만 하루에 100종이 넘는 책이 세상에 나오니, 그 가운데 몇 권을 고르는 일은 곤혹스럽기 마련이다. 게다가 각자의 삶이 달라 선정하는 기준도 천차만별이니, 그렇게 고른 책을 다른 이에게 권하기보다는 각자의 이야기로 남겨두는 게 나을 듯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굳이 지난 열두 달을 돌아보며 눈에 밟히는 책을 꼽아보는 까닭은, 이 책들이 전하는 이야기가 올해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음 해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고, 나의 삶과 내가 속한 세상이 이런 방향으로 한 걸음이라도 옮겨가길 원하는 마음 때문이다.


부질없는 일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낼 수 있다면, 지난 시간을 살아온 이유를 확인하고 다가올 시간을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작은 소망을 담아 2017년의 책을 돌아본다.

지나칠 수 없는 아픔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_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 나름북스
●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_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 나름북스참여사회
세월호 참사 이후 아픔을 말하는 책이 크게 늘었다. 아픔을 나누고 아픔에 공감하는 책에 이어 올해는 아픔의 구조적 원인에 주목하는 책이 여럿 나와 눈길을 끌었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기획한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은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다룬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게 있느냐고 묻는 이들에게, 실제 현장에서 생명과 기업의 이윤 가운데 어느 쪽이 중하게 다뤄지는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전한다.

노동자는, 아니 사람은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일해야만 하는데, 굴뚝 속으로 들어간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은 노동자들이 언제 병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다쳤는지도 모른 채 생명을 잃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노동자들은 어떻게 자신을 그리고 함께 일하는 이들을 굴뚝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생명권과 노동권이 별개가 아님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가 너무나 위급하고 시급하다는 걸 새삼, 아니 비로소 깨닫게 하는 책이다.

 아픔이길이되려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_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
아픔이길이되려면 ●아픔이 길이 되려면_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 김승섭 지음 / 동아시아참여사회
보건학자 김승섭 교수의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재소자, 결혼이주여성, 비정규직 노동자,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의 건강을 살핀다.


질병이 개인의 몸과 마음뿐 아니라 사회의 감정과 제도에도 연결된다는 '사회역학'의 관점으로 보면, 사회적 상처가 어떻게 각각의 몸을 아프게 하는지, 거꾸로 각자의 몸에 드러나는 아픔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회의 병폐를 살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렇듯 책은 질병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관점에서 "인간의 몸과 건강을 어떻게 바라보고, 개개인의 삶에 대한 공동체의 책임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새로운 물음을 던진다.

과연 의료 기술이 끝없이 발전하면 세상 모든 병이 치유될 수 있을까? 아파도 아프다고 말할 수 없다면 어떤 치료도 그들에게 닿을 수 없는 게 아닐까? 사회가 변하지 않으면 개인은 결코 건강해질 수 없음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

최근 몇 년 동안 한국사회에도 과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각종 첨단기술에, 전 세계에 큰 고민을 안긴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까지, 이제 세계를 이해하려면 과학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연스레 관련 지식을 탐구하고 습득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최근에는 나와 분리된 대상을 이해하는 과학을 넘어 내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려는 태도로서 과학이 주목받고 있다. "과학은 단순히 지식의 집합이 아니다. 과학은 생각하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던 칼 세이건의 제언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듯하다.

 ●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_일상의 오류가 보이기 시작하는 과학적 사고 습관 / 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 더퀘스트
●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_일상의 오류가 보이기 시작하는 과학적 사고 습관 / 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 더퀘스트참여사회
컬럼비아대학교의 필수 교양 강좌를 담은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은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시도한 결과다.

이 책을 읽는다고 천체의 구조와 운동, 물리의 법칙과 원리를 쉽게 알 수는 없겠지만,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 내가 매일 겪는 숱한 일들이 바로 천체와 물리 속에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느끼고 알아챌 수 있는지 익힐 수 있다.

그러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과학이라는 세계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와 내 주변을 감싸고 있음을, 나를 이해하고 세계를 살아가려면 과학적 태도와 사고가 꼭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관점과 방법으로 나와 세계를 새롭게 이해하는 재미를 느끼게 된다.

물론 과학이 마냥 즐거울 리 만무하다. 오히려 빠져나갈 길 없는 억압으로 작용될 위험도 적지 않다. 모든 일에 정답을 알려줄 것 같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이 얼마나 임의로 구성되고 사용될 수 있는지,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세상을 망치거나 나쁘게 만들 수 있는지 고발하는 <대량살상수학무기>를 앞서 소개한 책과 함께 살펴보길 권한다.

 ● 대량살상수학무기_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 캐시 오닐 지음 / 흐름출판
● 대량살상수학무기_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 캐시 오닐 지음 / 흐름출판 참여사회
저자 캐시 오닐은 세계 최고의 헤지펀드와 실리콘밸리의 데이터과학자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빅데이터의 허술함과 알고리즘의 한계를 고발한다.

그러니까 조건을 정하고 통계를 추출하고 결과를 산출하는 과정에서 인종, 빈부, 지역 등에 근거한 인간의 편견과 차별이 그대로 적용되고, 그 결과는 앞선 편견과 차별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사회에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그가 빅데이터와 알고리즘을 '대량살상수학무기'라는 무시무시한 말로 정의하고, '디지털 골상학'이라 새롭게 이름 붙이는 까닭이다.

앞선 책과는 반대로 내가 이 구조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걸 알아가며 등골이 서늘해지고, 과연 탈출구가 있을까 싶어 아득해진다.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기준과 근거가 그리 쉽게 주어지겠는가. 새해에도 본격적인 노력과 담대한 도전을 기대할 따름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 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 정의로운 건강을 찾아 질병의 사회적 책임을 묻다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2017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 - 일하다 죽는 사회에 맞서는 직업병 추적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획,
나름북스, 2017


대량살상수학무기 - 어떻게 빅데이터는 불평등을 확산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가

캐시 오닐 지음, 김정혜 옮김,
흐름출판, 2017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 일상의 오류가 보이기 시작하는 과학적 사고 습관

데이비드 헬펀드 지음, 노태복 옮김,
더퀘스트, 2017


#세월호 #빅데이터 #결혼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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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가 1995년부터 발행한 시민사회 정론지입니다. 올바른 시민사회 여론 형성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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