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초언니> 표지
문학동네
그 길을 만든 사람을 이제야 알았다. 서명숙, 그녀의 삶의 일부를 소설 <영초언니>에서 만났다.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변했지만 '올바르니 아름다운 세상'이 그녀가 그리고 그녀들이 꿈꾸었던 세상이리라. 이 책은 이념이나 사상을 자세히 담지 않았다. 당시의 사실적 기록만 있다.
영초언니의 이야기도 아니다. 오롯이 서명숙이라는 한 인간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자신의 삶을 꺼내어 보여준다. 1970년대 불의한 국가권력에 대항하는 젊은 청춘들의 이야기라고 하면 너무 진부한 얘기일까. 지금은 그저 옛이야기 같은 그 시절 이야기를 담담하게 써 내려간다. 이대로 흘려버리기엔 너무나 처절했던 당시의 이야기를 정리하여 떠나보내려는 듯이.
죽음까지 각오하며 정의를 위해 투쟁한 그들의 삶은 지금 생각해도 숭고하다.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고 그 시대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어, 불합리와 모순이 외부로 많이 노출된다. 그러나 역사는 진보한다는 말이 무색하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세상에 벌어졌다. 여전히 힘을 가진 자들의 억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거꾸로 가는 이 사회를 바라보며 그들의 마음은 얼마나 원통했을까. 그 당시 무수히 흘러내린 피들은 얼마나 억울하였을까.
한 개인의 몰상식하고 불합리한 행동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드러나지 않고 지속되었다는 사실이 감탄스럽고, 그녀의 손아귀에서 놀아났던 정·경계가 한심스럽다. 이러한 사회에 비참함을 느낀 모두가 촛불을 들고 나선 이후 사태가 진정되었으나 진실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서글펐다. 이번엔 국민의 집결된 힘으로 변화하였지만 목숨을 걸지 않으면 정의를 이룰 수 없었던 그 시절은 얼마나 끔찍하였던가.
소설 곳곳에 운동권의 여러 인물들이 등장한다. 천영초, 정문화, 엄주웅, 이혜자, 유시민, 심재철... 함께 올바른 사회를 이루기 위해 애썼지만 누군가는 현실에 좌절하고, 누군가는 자신의 삶에 쫓겨 운동 저 편으로 밀려나고,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사회에서 여전히 애쓰고 있다. 그들의 삶이 달라지는 이유는 또 무얼까. 나의 행복과 그것을 포기하고서라도 내가 변화시켜야 할 부조리한 사회, 그것들의 무게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이 둘의 무게에 따라 알면서도 현실에 머무르는 사람이 있고 변혁을 위해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도 있다. 운동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한 힘이 무얼까 궁금하다. 나라면 어떠했을까? 아니, 나는 어떠한가? 알지만 행동하지 않는 나, 알기에 모르는 척 넘어갈 수 없는 정의로운 사람들. 이 책은 이렇듯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 불의와 정의 사이에서 갈등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생각하게 한다.
'법은, 법치주의는 그 숱한 오류와 무고한 사람들의 고통과 목숨을 담보로 조금씩 정당해지고 단단해져왔던 것. 이 땅의 법치주의는 그렇게 한발 한발 더딘 걸음을 걸어왔습니다'라고 쓴 손석희의 추천사처럼 우리 사회는 조금씩 '천천히' 정의로움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바탕에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것이 안타깝고 또한 감사하다. 우리를 위해, 그들의 희생을 위해 진보하는 우리와 우리 사회를 기대해 본다.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문학동네,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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