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배에 올 겨울이 따뜻한 부산동구의 쪽방주민들

의대생들, '내미는 마음' 공동체와 쪽방 도배작업을 함께하다

등록 2017.12.29 12:54수정 2017.12.29 12:54
0
원고료로 응원
겨울에도 따뜻한 부산이었지만, 올해는 추운 바람이 급작스레 찾아왔다. 바깥에 조금이라도 서있으면 몸이 굳어버리는 추위. 우리는 햇볕이 들지 않은 그늘아래에 숨어있는 쪽방 을 방문하였다.

26일 현장에는 이미 부산 동구 주위의 쪽방 거주민들을 매일 지켜보고 계시는 '이재안 전도사님'이 계셨다.

'내미는 마음' 공동체의 장복이 어르신에게 상황 설명을 듣고 있는 의대생들 ⓒ 김민수


"날이 춥죠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과 할 일이 긴급하게 생겼는데요. 제가 저번에 알려드렸듯이, 주거 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에서 살고계시는 '어르신'의 방을 도배하는 작업을 하게 될거 같습니다."
아... 정말 열악한 그방 말이죠..? "
"네. 오늘 그래서 '내미는 마음' 공동체와 함께 일을 진행할 거예요."

'내미는 마음' 공동체는 '쪽방 거주민'들로 구성되어, 조금 어렵더라도 한 달에 한번씩 조금의 나눔이라도 절실히 필요한 곳을 찾아가서 도움을 주거나, 봉사를 한다고 한다.

산전수전을 겪으신 분들이라 마음을 여는 것이 쉽진 않았을 텐데, 오히려 마음을 조금이라도 내어주려고 노력하는 이들의 표정은 우리보다 밝았다. 잠깐의 어색함 뒤로 공동체 회장님이 젊은 학생들이 왔다고 반가운 얼굴을 보이며 악수를 청하셨다. 

"여러분들이 와서 다행입니다. 어르신이 방에서 안 나오려고 하셔서 큰일인데, 좀 젊은분들이 이야기 하면 좀 안낫겠심꺼."

열악한 방에서 지내고 계시는 어르신은, 치매가 꽤 진행된 상태라 정상적인 의사소통 보다는 따뜻한 눈높이에서 단순하게 표현하는 것이 최선인 상태였다. 더군다나, 치매의 영향으로 물질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본인 주변에 있는 물건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확인시켜 드려야 했다. 다행이, 전도사님이 '1000원 지폐가 수북히 담긴 봉투'를 준비해서 그 부분에 대한 부담은 덜 수 있었다.


방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인사를 하자마자 무거운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여름도 아닌데, 이렇게 무겁고 텁텁한 공기가 이 공간을 꽉꽉 채우고 있는 것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더욱이, 전기장판도 없어서 방안은 오로지 '어르신'의 입김으로 데펴지고 있었다.

방의 상태는 심각했다. 얼룩덜룩 곰팡이가 피었고, 벽지가 벗겨져 있었다. 미닫이문은 간신히 차가운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는 정도였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벽의 모습. 어르신은 이러한 주거환경에서 어떻게 버텨내셨을까. ⓒ 김민수




"할아버지. 저희 왔심더. 오늘 젊은 의사들이 어르신 봐드린다고 이렇게 왔심더."
"아이고. 제가 어지러워서요."
"어르신 일단 여기서 나가서 한번 이야기 해봅시더"
"아이고. 다음에 하죠.다음에."
"에이. 오늘 이렇게 왔는데.. 여 함 보이소"
"어르신~ 저희가 이렇게 왔는데 바깥에서 바람도 쐬고. 어디가 아픈지도 보고 해요~"

이렇게 몇마디가 오고 갔지만, 어르신은 뜻을 굽히지 않으셨다. 전도사님의 약간의 눈짓에, 우리들은 어르신의 양팔과 양 다리를 잡고 '에라 모르겠다' 라고 중얼거리며  바깥으로 모시고 나왔다. 2개월 후에 철거될 집이지만, 건강문제상 할아버지가 이러한 공간에서 더 살도록 둘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었고, 어르신의 치매가 심각했기 때문에 약간의 강제를 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야이 씨xx 놈들. 나를 죽일 모양이여 이놈들이."
"아입니다 어르신. 다 좋게 해드릴라고 이래 아저씨들이 맛있는것도 사오고, 벽지도 사오고. 보소 여 돈도 다 가지고 나왔다 아닙니꺼. 받으소"
"아이고..."

약 5분정도의 격렬한 몸부림이 있었지만, 준비하신 돈봉투와 먹을 것, 그리고 마실 것을 드리니 가라앉으셨다.


"집에 누가 들어가면 안디여."

"아무도 안 들어 갑니다. 깔끔하게 해놓을 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어르신."

열악한 쪽방의 벽과 바닥을 벗겨내고 도배중인 '내미는 마음' 공동체 ⓒ 김민수


약 3시간 남짓 도배작업이 진행되었다. 동행한 의대생들 중 한 두명은 어르신 옆에 앉아서 안심시켜드리기 위한 이야기를 무한반복 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대답없이 듣기만 하셨다.

작업을 도중에 전도사님은, 이 한겨울을 조금이라도 버텨낼 수 있는 전기장판을 구청에서 좀 구비해 달라고 이야기했지만, 담당자도 그 자리에 없었고 확답도 받지 못하셨다고 답답한 이야기를 토해내셨다.

"참. 뭘해도 절차가 까다롭고 어려운 것 같습니다. 장판하나 마련하는 것도 이렇게 시간이 걸리니 말이죠. 허허.. 최근에는 부산역 노숙자중에 복수가 심하게 차고 고환과 하지가 부어서 응급 처치가 필요한 분이 있었어요. 부산의료원에 데려갔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책임 못진다. 고환쪽은 비뇨기전문의가 해결해야 한다. 복수는 뺄 수 있는데 위험하다. 등등 이러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부산대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그것도 외래로 가서 진단을 받고 해야 한다. 응급수술 못한다. 다른 자매기관에 전화해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쪽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했어요. 그분은 지금 그래서 임시로 쪽방 빌린곳에 계속 누워계십니다.

오늘 도배작업도, 집안을 보셨다시피 빨리 도배를 해드려야 하는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시설이나 구청에서 문제제기 해도 움직이지도 않고, 돌아가시기 전에 하겠거니 하는 뉘앙스였단 말이죠. 결국 저랑 '내미는 마음' 분들이랑 마음먹고 가까스로 한겁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모두에게 묻고 싶어요. 정말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는지. 할 수 있는 것 이 없는지." 

작업이 끝나기 전까지, 부산역에서 발견한 응급환자를 위해 전화기를 들고 고군분투하는 그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도 그리 만족스럽진 않은 모양인지 여러 사람들에게 전화를 건다.

"어르신 이제 끝났습니다"

나올 때, 학생들의 손에 이끌려 나오시던 모습과는 달리, 들어갈때는 순순히 본인의 발로 들어가셨다.
.

깔끔하게 도배된 쪽방의 모습. ⓒ 김민수


"아니 이걸 건드리지 말라고 했는데..."
"뭘 건드리지마. 어때요 멋지죠. 깔끔하고 화사하잖아."
"에이... 참.."

전도사님에게 멋쩍은 미소를 날리시며 엉거주춤 하게 우리를 멀뚱히 바라보고 계셨다.

"저희 이제 갑니데이 푹 쉬세요"
"아이고 예.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안 보이는 곳 에 침투해 있었던 빈곤을 조금이나마 씻어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쪽방이 무너지고 나면 또다시 빈곤이 스며들것만 같다.

이렇게 현장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되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그래서, 국가와 지역사회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아쉽게도 빈곤에 직면해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적극성이 수반되어야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아웃리칭을 통해 우리가 보았던 노숙인의 건강도. 쪽방 방문을 통해 들었던 쪽방 거주민들의 인간다운 삶도. 여기에 계시는 할아버지도 단순한 행정주의적인 접근으로는 끝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들의 시선을 반영하는 해결책이 없으면, 빈곤은 허공을 떠돌다가 언제든지 이들을 갉아먹기 시작할 것이다.
#쪽방 #동구 #상담소 #의대생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모임서 눈총 받던 우리 부부, 요즘엔 '인싸' 됐습니다
  2. 2 카페 문 닫는 이상순, 언론도 외면한 제주도 '연세'의 실체
  3. 3 생생하게 부활한 노무현의 진면모... 이런 대통령은 없었다
  4. 4 "개도 만 원짜리 물고 다닌다"던 동네... 충격적인 현재
  5. 5 "4월부터 압록강을 타고 흐르는 것... 장관이에요"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