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연
시를 사랑하는 딸에게
2018년 2월 2일
'사랑하는 딸에게 부치는 편지'
어이 딸, 지금부터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 잘 들으시게
아버지보다 많이 보고 듣고 배운 딸이지만
그래도 들어보면 꽤 쓸만한 말도 있을 거야
자네나 나나 시를 사랑해서
때로는 맥주잔에 소주잔을 퐁당 빠트려가며
시인을 질겅질겅 안주삼고 시를 발기발기 해부해가며
밤 새워 이야기를 하고는 했는데
장석주의 대추 한알이라는 시 이야기가 그중에 으뜸이었지
대추 한 알에 불교의 연기론이 나왔고 우주를 들었다 놓았다 했지
그런데 말이야, 이건 순전히 아버지 생각인데
시를 사랑한다고 시인까지 사랑하지는 마시게
아버지 젊었을 적에 시인까지 사랑해서
시인이 기침을 하면 아버지는 가래를 토했고
시인이 담배 한 개비 빌려달라고 하면
보루로 사다가 바쳐가며, 시인을 너무 사랑하는 마음에
시인이 울면 아버지는 대성통곡을 한 적이 있었지
그래야 되는줄 알았어 그게 시인에 대한 예의인 줄 알았어
아니더라고 딸은 그리하지 마시게
시인이 노랑꽃을 파랑꽃이라며 우길 권리가 있다면
독자인 우리도 파랑꽃을 노랑꽃이라고 우길 권리가 있어
그리고 아버지는 은유가 너무 많이 들어간 시는
잠자리채로 별을 따는 듯 숨만 찰뿐 재미가 없어
"아빠,
달님이 나만 따라다녀요.
도망다녀도 자꾸만 따라다녀요."
어이 딸, 자네가 언젠가 나한테 보낸 문잘세
회사일이 노상 늦게 끝나니 달님이 따라다니는 게 당연하지
그 힘든 상황을 아주 예쁜 은유로 표현한 자네가 시인이야
시인 앞에서 기죽지 마시게 자네가 바로 시인이야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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