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란 몸에 완전히 밀착되도록 착용하는 운동복 하의의 통칭이다. 운동을 할 때는 물론 평상복으로 입는 여성들이 늘어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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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이고 달라붙는 운동복까지 갈 것도 없이 여성의 몸은 가만히 있어도 대상화되는 존재다. 그러므로 여성의 몸이 움직이는 것만큼 대상화되기 쉬운 것도 없다. 남성들이 이 말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눈앞에 어떤 여성이 운동을 하고 있다면 그는 운동을 하는 동시에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에 맞서는 중이다. 심지어 스스로를 검열하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자신과도 싸워야 한다. 여성에게는 운동이란, 음란하다는 이유로 단속당하던 몸을 별안간 '드러내고 움직여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운동을 배우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법까지 함께 익힌다. 예를 들면 내가 처음 역도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웠던 동작이, 양 무릎의 방향이 바깥을 향하도록 벌리는 것이었다. 평영을 배울 때는 바로 뒤에 따라오는 사람이 같은 여성이어야 마음이 놓였다. 나중에 함께 운동하는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왜 아니겠는가? 여성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부터 다리를 오므리라고 교육받는데.
결국 운동을 시작하고 몇 년이 지난 후에야 다리를 바깥으로 벌리거나 엉덩이를 뒤로 빼는 동작에 익숙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에 거쳐 주입된 편견 때문인지 지금도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거나 자신감을 잃는 순간이 없지 않다.
움직이는 몸 다음으로 대상화되는 것은 운동복이다. 여성의 옷은 스커트, 스키니 팬츠, 속옷, 하이힐, 스타킹을 포함해서 몸에 걸쳐지는 거의 모든 아이템이 성적으로 소비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개중에 근래 들어서 가장 극렬하게 대상화되는 아이템이 있는데, 그게 바로 레깅스다.
레깅스란 몸에 완전히 밀착되도록 착용하는 운동복 하의의 통칭이다. 운동을 할 때는 물론 평상복으로 입는 여성들이 늘어날 정도로 인기가 치솟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한 남성이 지역 신문에 '20세 이상 여성은 공공장소에서 레깅스를 입지 말아야한다'는 내용의 기고문을 써서 레깅스 찬반 논쟁이 불거지기도 했다.
여성들 사이에서도 레깅스에 대한 의견은 두 가지로 나뉜다. 활동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액티브 웨어라는 호평이 있고 성적인 조롱을 유발하는 성차별적인 옷이라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레깅스가 운동, 특히 근력운동을 위한 최적의 옷이라고 생각한다. 한때 나는 레깅스를 입는 게 부담스러워서 체육관에서 나눠주는 헐렁한 반바지를 입었다. 용기를 내서 레깅스를 입어본 뒤로 적어도 근력운동을 할 때는 하의를 헐렁하게 입지 않는다. 적당한 압력이 허리와 배, 허벅지를 감싸는 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들이 시선을 끌고 싶어서, 혹은 몸매를 자랑하고 싶은 '부심' 때문이라는 레깅스를 입는다는 건 순전히 억측이다. 또 만약에 어떤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는 것을 즐긴다 할지라도 그것이 타인의 몸을 뚫어져라 볼 수 있는 권리로 이어지진 않는다.
사실 여성의 운동복이 성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 가지 예로 여성 테니스 선수들은 전통이라는 명목 하에 짧고 불편한 스커트를 입는다. 지난 1998년에는 국내 프로농구 리그의 여성용 유니폼이 원피스 수영복과 흡사한, 일명 '쫄쫄이 유니폼'으로 바뀌면서 선수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겉으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 리그의 흥행을 위한 노림수, 성상품화, 여성혐오 등의 이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리고 젠더 간의 권력 차이도 어김없이 작용한다. 따지고 보면 남성들이 운동을 하면서 입는 옷은 그게 어떤 옷이든 간에 그저 운동복일 뿐이다. 심지어 그들에게는 옷을 입지 않는 자유도 허용된다. 권투와 수영은 남성 선수가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는 대표적인 종목이다. 뿐만 아니라 체육관에도 상의를 벗은 채로 운동하는 남성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남성들은 거림낌 없이 옷을 벗지만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나는 남성들이 여성들의 집요한 시선 때문에 불쾌했다거나 수치심을 느껴서 헐렁한 옷으로 몸을 가렸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체육관을 감옥으로 만드는 그 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