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로나 가는 길
차노휘
젊은 남녀가 섞인 미국인들은 샤워를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그 중 여자 한 명은 침실과 떨어진 샤워장에서 샤워를 하고 난 뒤 수건으로 중요 부분만 간신히 가리고 마당을 가로질러왔다. 프랑스 남자 두 명은 체조를 하면서 몸을 풀었다.
샤워를 다 끝낸 미국인 무리 중 남자 아이가 다가와서 말했다. "식사하러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래요?" 내가 내내 혼자 있으니 그들 눈에는 외로워보였나 보다. "고마워. 어떡하지? 아직 샤워를 끝내지 않았는데?" 그들이 사라졌을 때에야 그들의 호의를 단번에 거절한 것이 미안했다. 결과적으로는 남아 있는 것이 나았다. 스펜서와 니콜라를 이곳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스펜서는 수비리에서 묵을 예정이었다. 어느 알베르게가 좋은지 알아보고 다니고 있었고 니콜라는 라라소아냐가 목적지였으나 혹시 아는 사람이 있는지 보려고 어슬렁거리며 염탐(?)하고 있었다. 둘 다 나처럼 혼자였고 나처럼 첫날 만났던 사람들을 찾으러 다녔다는 것을 알았다. 스펜서는 그가 어디에서 자든 상관없이 아침에 같이 출발하자고 했다. 오전 5시에 내가 묵는 알베르게 앞으로 오겠다고 했다.
스펜서보다 뒤늦게 나타난 니콜라는 6km를 더 걸어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도 내일 팜플로나까지 가는데 여기서 자도 충분히 걸어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니콜라는 내 말에 찬성했다. 알베르게를 고르던 스펜서도 곧 내가 묵는 곳에서 짐을 풀었다. 드디어 세 명이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어제의 짙은 안개. 힘든 피레네 산맥. 안개 속 우울 입자. 이제야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니 입이 터졌다. 나는 론세스바예스 침대 번호가 167번이었다. 앞자리 '1'은 1층을 의미한다. 67번째로 도착했다는 뜻이다. 니콜라는 2층에서 잤고 스펜서는 3층이라고 했다. 3층은 99개 침대가 한 공간에 배치된 곳이었다. 서로를 떨어뜨려 놓은 것은 안개였다고 우리는 입을 모았다. 유리의 안부를 서로 궁금해 했지만 아무도 그의 소식을 몰랐다.
이야기를 끝낸 스펜서가 대학노트에 꼼꼼하게 메모를 시작하자 니콜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일 팜플로나'로 시작되는 질문을 연속해댔다. 나는 그가 물어볼 때마다 고개를 흔들었다. 그와 단둘이 동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그의 턱수염 때문이었다.
172cm 키에 마른 체형. 길고 마른 턱에 그는 수염을 길렀다. 나는 그 수염을 염소수염이라고 놀렸다. 유쾌하고 개방적인 성격의 소유자라는 상징적인 염소수염(지극히 주관적인 해석이다). 내게는 일정한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한 표식이기도 했다(편견은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하고, 오만은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만든다고 누가 말했던가).
그는 12일 간 휴가기간에만 까미노를 걷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즐겁게 걷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는 물었다. "생맥주나 한 잔 하러 갈까? 다리 옆에 식당 있지, 그곳에서?" 나는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알베르게 빨랫줄에는 전날 는개비를 맞아 마르지 않은 빨래가 햇살 바람에 뒤척이고 있었다. 땀이 찼던 배낭 안쪽도 어느 정도 꼬들꼬들 해졌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약간 취기 오른 기분으로 아르가 강에서 발을 넣거나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피로를 풀어도 좋을 시간이었다. 스페인 여름 햇볕은 저녁 9시가 지나도 저물지 않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동무가 두 명이나 있었다. 안개도 없었다. 어제처럼 우울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나는 곧 알게 되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과 커피를 내 몸이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심리적인 이유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나'를 혹사시키면서 왜 늘 먹던 음식을 내놓지 않느냐고 내 몸이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어디에서 김치찌개를 구한단 말인가. 급기야 고기와 밀가루 음식에 지나칠 정도로 거부반응을 일으켰다. 불행하게도 내 시련은 시작일 뿐이었다.
다음날, 스펜서와 5시에 출발해서 부지런히 걸어간 곳은 팜플로나가 아니라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길이었다. 21km면 도착할 거리를 어렵게 내려온 급경사 길을 6km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야 했다. 총 34km를 걸어서 팜플로나에 도착했을 때, 내 체력은 방전 되다시피 했다. 그것도 허비한 시간을 만회하겠다는 듯이 쉬지 않고 걷는 긴 다리 스펜서를 따라 가느라 내 짧은 다리는 두 배나 더 빨리 움직여야 했다. 그날 30일 내내 나를 힘들게 했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힌 첫날이었다.
팜플로나, 헤밍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