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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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상상을 해보았다. 미투 운동(#MeToo)의 외침에 고개 숙인 이들 중에 왜 여성은 없을까? 왜 사건의 피해자는 늘 여성인가? 더 심하게 말하자면 여성은 '가해자'조차 되지 못하는가?
성폭력 가해자 중에 여성이 있었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만약 '왕' 같은 권력이 여성에게 있었다면 고개 숙인 남자들 중에 한 사람이 되었을까? 똑같은 행위를 했더라도 '기억 상실증'에 걸린 환자처럼 행동했을까?
나의 상상력의 한계인지 몰라도 답은 '아니오'다.
얼마 전 친구들과 미투 운동(#MeToo)을 이야기하며, 각자의 기억을 떠올렸다. 꽁꽁 싸맨 기억이 언어가 되는 것이 불편하고 아팠지만, 우리는 뜨겁게 공감하고 함께 분노했다.
"고등학교 때 영어 선생님이 머리나 등을 쓰다듬곤 했어. 느끼한 손으로 내 등을 쓸어내릴 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거 같았어.""초등학교 때 남자애들이 개들이 교미하는 걸 보고 여자애들 앞에서 똑같이 흉내 내곤 했어. 자기들끼리는 희희낙락거리는 모습이 미친놈들 같았어.""어릴 때 엄마는 일하러 다니고 나는 늘 혼자였어. 동네 오빠들이 내 치마 밑에 손을 넣고 만지곤 했어. 난 무서워서 꼼짝도 못했지. 만지면서 그랬어. 엄마한테 말하면 죽여 버린다고. 지금까지 엄마한테 한 번도 말한 적 없어." "직장 상사였는데, 회식이 끝나고 나를 집에 태워주겠다는 거야. 차 안에서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었다며 내 몸을 만졌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어. 막상 내가 당하니까 그 어떤 저항도 못하겠더라."그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니 그들은 알기나 할까. 가해자들은 '과거완료'가 되었을지 몰라도, 피해자들에겐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진심으로 사과하는 가해자를 보았는가. 그들의 연출된 변명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술에 취해서, 위로하고 싶어서, 외로워서'라는 핑계는 피해자에게 가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5일 JTBC를 통해 공개된 안희정씨와 성폭력 피해자의 메신저 대화 내용은 어떤가. 피해자에 따르면, 그는 총 네 차례 성폭행을 벌였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피해자에게 "괘념치 말라"거나 "미안하다", "잊어라"는 등의 메시지를 보냈다.
심지어 피해자는 미투 운동이 활발해졌을 당시, 안씨가 '내가 미투를 보면서, 그게 네게 상처가 되는 줄 알았다.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그날도 성폭행을 했다고 증언했다. 논란이 커지자, 결국 안씨는 6일 새벽 자신의 SNS에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 모두 제 잘못"이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차라리 가해자들이 '나의 권력과 명예를 이용했다' '나는 강자였고, 여성이 약자라서 그랬다'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더러운 생각에 그랬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지 않을까.
여성들은 언제까지 성폭력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낮이든 밤이든 안전한 곳이 없다. 남자들은 억울하겠지만, 지나가는 남자들을 잠재적인 가해자로 봐야 하는 것도 괴롭다. 여성은 평생을 사회적 약자로 살았기 때문에, 가해자조차 될 수 없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