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내장에 '청탁금지' 적은 선생님, 속 시원합니다

"빈손으로 오시고 걱정 덜어가세요"... 이제 학교갈 땐 '빈손'으로 갑니다

등록 2018.03.26 21:35수정 2018.03.2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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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손으로 오시고 걱정만 덜어가세요. 감사합니다.'

올해 2학년이 된 딸아이 학교 면담을 앞두고 상담 날짜와 장소가 적혀진 안내문 마지막 줄에 써진 글귀다.

새 학기가 되면 1년 동안 자신의 아이를 담당할 담임교사와 면담을 한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가르침과 함께 예의를 중요시하는 우리나라의 유교문화권적 관습에서 보면 당연히 '뭐라도 하나 사가야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뭘 사가야 하지?'라는 고민이 뒤를 잇게 될 것이다.

하지만 김영란 법으로 이제 이런 걱정과 고민에서 우선은 해방이 되었다. 면담 때 커피를 사 갔다가 그 커피 그대로 들고 나왔다는 일화를 내 주위에서도 몇 번 들은 걸 보면 이 법은 교육현장에선 꽤 적극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듯하다.

학교 교육과정 설명회의 자료에도 부정청탁에 대한 법률에 대해 '※당해 연도 담임선생님이나 직무 관련성이 있는 관계에서는 5,000원 커피 한잔 쿠폰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에 해당됩니다'라고 명시되어있다.

"돈 봉투" 소리에 얼굴 벌게진 그 손님

a 학교상담 안내지 학교상담 안내지에 적힌 상담일시와 장소 아래 '청탁금지'관련 문구

학교상담 안내지 학교상담 안내지에 적힌 상담일시와 장소 아래 '청탁금지'관련 문구 ⓒ 안애영


일명 김영란 법으로 많이 알려진 이 법률은 2016년 11월 30일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로 시행되고 있는 정책으로, 2012년 전 국민권익위원장 김영란이 법안을 제안, 추진했던 것에서 이름을 따서 김영란 법이라 불린다.

법안은 당초 공직자(국가 지방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 각 급 학교의 장과 교직원)의 부정한 금품 수수를 막겠다는 취지로 제안됐지만 입법 과정에서 적용 대상이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 등으로까지 확대(공직자와 공직자의 배우자 포함)됐다.


한편, 청탁금지법에 따르면 금품과 향응을 받은 공직자뿐만 아니라 부정청탁을 한 사람에게도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공직자는 배우자가 금품을 받은 사실을 알면 즉시 신고해야 하며, 신고 의무를 어길 시에는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대학시절 제과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학교를 방문하는 학부모가 선물용 롤케이크와 함께 포장해 달라며 꽤 두툼한 봉투를 줬었다. "돈 봉투를 아래쪽에 넣을까요, 안에 넣을까요?"라고 묻는 내게, 얼굴이 붉어져선 격앙된 목소리로 "돈 봉투 아니에요" 라고 말하며 황급히 아래에 넣어서 얼른 포장해 달라던 일이 아직까지 기억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남의 눈을 많이 의식하는 성향이 강하기에 남이 하면 나도 챙겨야 할 것 같고, 남들 다 하는데 나만 안 하자니 내 아이에게 피해가 갈 것 같은 생각에 방문 전 무언가를 준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고착된 듯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왔던 부정청탁이나 촌지가 정말 법률로 제제가 될까 싶은 생각도 있었고, 오죽했으면 금액의 상한선까지 정해놓았을까 싶은 씁쓸함도 함께 있지만, 학부모가 된 입장에선 이렇게 정해주고 나니 오히려 속이 시원하다.

고질적인 학교 내 부정청탁, 이른바 촌지 관행을 한순간에 없애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겠지만, 앞으로 청탁금지법이 국민들의 생활 속에 잘 정착되어 악습은 끊어내고 더욱 청렴한 사회로 거듭나는 대한민국이 되길 소망해 본다.
#청탁금지 #학교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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