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칸센은 이 새 모습을 본떠서 만들었다

[고양생태공원 생태보고서] 돌아온 물총새, 너를 사랑해

등록 2018.04.05 22:52수정 2018.04.05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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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목 부러지겠다."

누군가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겁니다. 누군가 하고 보니 자원봉사자입니다. 고개를 뒤로 한껏 꺾고 하늘을 보는 내게 하는 말입니다. 새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었습니다.


"저건 붉은머리오목눈이 울음소리, 저건 참새 울음소리. 동고비도 우네. 그런데 노랑턱멧새 소리는 안 들리네."

세상의 모든 새들의 울음소리를 구별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실제로 소리를 구별해서 들을 수 있는 종류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끔 새소리들이 섞이면 구별이 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봄은 이별과 만남이 공존하는 계절입니다. 사람들은 옷차림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지만, 고양생태공원에서는 겨울 철새가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을 보면서 계절의 변화를 확인합니다. 새들이 떠나는 것은 떠난 새들이 돌아온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목이 부러질 것처럼 고개를 뒤로 젖혀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은 우리 공원 위를 가로지르며 추운 나라로 이동하는 새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함입니다. 2월이면 겨울 철새들은 다가오는 봄의 기척을 느끼면서 떼를 지어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재두루미나 저어새들과 기러기들이 가장 대표적입니다. 기러기들이 브이 자를 커다랗게 그리면서 날아가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습니다.

떠나는 것이 있으면 돌아오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떠나는 것들의 빈자리를 돌아오는 것들이 채우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므로 매년 봄에 이별과 만남이 교차합니다.


높은 하늘을 가로지르며 날아가는 기러기 떼들을 보면서 인사를 합니다. 내년에도 꼭 다시 돌아오는 거지? 내년에 다시 만나자. 가끔은 혼자 그들을 향해 손을 흔들 때도 있습니다. 그들이 알아채거나 말거나 혼자 이별의식을 행하는 것이죠.

그렇다고 우리 공원에 기러기가 사는 것은 아닙니다. 기러기는 덩치가 큰 새라 우리 공원처럼 좁은 공간에서 살 수 없습니다. 기러기들은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넓은 공간이 필요하고, 경계심이 강해서 탁 트인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대신 110만 평에 달하는 장항습지가 그들의 서식지가 됩니다. 장항습지에는 겨울 철새 2만여 마리가 매년 떼 지어 찾아왔다가 떼 지어 떠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겨울을 난 기러기들이 우리 공원 하늘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손을 흔들며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3월이 되면 사무실보다 공원을 둘러보는 시간이 늘어납니다. 풀이며, 나무, 꽃들의 변화를 관찰하기 위해서지만, 새들의 움직임도 종종 확인합니다. 

사람이나 자연이나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활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겨울, 유난히 미세먼지의 습격이 잦았습니다. 이른 아침 출근길에 마주치는 짙은 스모그는 회색 안개가 되어 도시를 음습한 분위기로 만들기 일쑤여서, 바깥 출입을 자주 하지 못했습니다. 가끔 눈이 내릴 때, 우리 공원 생태시민들이 눈 위에 남긴 흔적을 확인하러 산책을 나섰을 뿐입니다.

아무도 걷지 않은 눈 위에 새들과 너구리, 고라니들이 흔적을 남깁니다. 우리 살아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그들이 남긴 흔적에는 그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산책은 종종 우리가 '정화지'라고 부르는 연못으로 이어집니다. 그곳은 우리 공원에 서식하거나 찾아오는 새들이 가장 좋아하는 아주 중요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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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생태공원 정화지 ⓒ 고양생태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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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관찰대에서 본 정화지 ⓒ 고양생태공원


그 정화지를 둘러싸고 있는 나무들에는 늘 크고 작은 새들이 깃듭니다. 정화지에 먹잇감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봄이면 둥지가 새로 생기는 나무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정화지 위를 날아다니는 새들의 개체수도 증가합니다. 정화지가 우리 공원에서 가장 새를 관찰하기 가장 좋은 장소인 것은 그 때문입니다. 언제 가도 새들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그곳에 조류관찰대를 만들어 놓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조류관찰대에 앉아 정화지를 관찰합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나무 끝에 까치가 앉아 있습니다. 근처에 있는 나무 위에는 비둘기들이 떼 지어 앉아 시끄럽게 수다를 떱니다. 흔하게 보는 텃새인 그들을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꼭 만나고 싶은 친구가 왔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조류관찰대에 앉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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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지 조류관찰대 ⓒ 고양생태공원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나려면 인내심이 필요합니다. 시간의 흐름이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까지 오래 앉아 있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허탕도 몇 번이나 쳤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오늘은 만날 수 있을까?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선가 귀에 익은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 소리는? 조류관찰대의 뚫린 공간 사이로 얼굴을 바짝 갖다 댔습니다. 눈은 최대한 크게 뜨고.

돌아왔다! 순간 한손으로 입을 막았습니다. 나도 모르게 반가움에 겨워 소리를 지를 것 같아서. 소리를 지르면? 경계심이 뛰어난 새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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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 ⓒ 조병범


짙은 코발트색 깃털을 가진 우아한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게 보입니다. 언제 날아왔을까? 가끔은 눈을 뜨고 지켜보면서도 새들이 언제 날아왔는지 알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새들이 민첩하게 움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도 그랬습니다. 코발트색은 금방 눈에 띄기 마련인데, 그가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반가웠습니다.

그의 이름은 물총새. 존재를 확인하자마자 새가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토해냅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새가 바로 물총새입니다. 물고기 사냥을 하기 좋게 생긴 부리를 가진 물총새는 제가 실루엣을 가장 정확하게 구별하는 새입니다. 그만큼 특징이 두드러지는 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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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 ⓒ 조병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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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 ⓒ 고양생태공원


물총새가 우리 공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살아주기를 바라지만, 둥지는 없습니다. 다른 곳에 둥지를 틀어놓고 사냥을 하러 정화지를 찾아오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물총새가 정화지에서 자주 관찰된다는 것은 이곳에 먹이가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들은 먹이가 없는 곳은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화지에는 있는 물고기들은 고양생태공원을 조성할 때 일산호수공원에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인공연못인 정화지에 물고기들이 자발적으로 살러 올 수 없으니 일부러 일산호수공원에 있는 물고기들을 옮겨온 것입니다. 생태교육을 할 때 그런 설명을 하면 묻는 탐방객들이 있습니다. 강제이주 시킨 물고기의 종류와 개체수를. 글쎄요. 누가 몇 마리나 왔을까요?

강제 이주는 뜰채로 떠서 되는 대로 잡아 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피라미 몇 마리, 붕어 몇 마리, 이렇게 세세하게 분류해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강제 이주 당한 물고기들이 정화지에서 번식해서 개체수가 늘었고, 새들의 먹잇감이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이 새들 사이에 소문이 났을 겁니다. 거기에 가면 먹을 게 많아. 놀러 가자, 물고기 잡으러 가자.

아름다운 코발트색 깃털을 가진 물총새는 '킹피셔'(kingfisher)라고 불립니다. 이름에서 풍기는 포스가 있죠? 물고기 사냥의 대왕이라는 의미입니다.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발견하면 거의 빛의 속도로 날아가 잡아채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새 이름은 울음소리나 먹이를 잡는 행동 등에 따라 붙이게 되는데 물총새는 물을 향해 날아가는 속도가 마치 총알처럼 빠르다는 뜻이랍니다.  

물총새의 가늘고 긴 부리 사이에서 막 잡힌 물고기가 파닥거리는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습니다. 새가 수면을 향해 쏜살같이 내려가자마자 사냥이 끝났습니다. 새가 수면을 차고 오르는 순간, 부리 사이에서 물고기가 보았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입니다. 킹피셔라는 이름이 그냥 붙은 게 아니구나.

이 물총새가 수면으로 날쌔게 날아 내려가는 모습을 본 따서 일본의 고속철도 신간센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바람을 가르면서 수면으로 몸을 내리꽂는 물총새의 모습은 가히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입에 물고기를 물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물총새의 모습은 의기양양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아쉬워집니다. 물총새 둥지가 우리 공원에 있다면 더 자주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물총새가 새끼를 키우면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입니다. 물총새가 우리 공원에 둥지를 틀게 하려면 서식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압니다.

물총새는 흙벽이 있는 곳에 둥지를 만드는 습성이 있습니다. 흙벽을 조성하면 물총새들이 둥지를 틀 가능성이 높지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했는데, 흙벽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물총새가 자연에서 서식처를 찾아내 둥지를 트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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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화지 조류관찰대 ⓒ 고양생태공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총새가 우리 공원에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기는 것은 우리 공원이 그들에게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서식공간이라는 자부심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사람의 손길과 간섭을 최소화하자는 원칙을 무시할 수 없기에 고민을 매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흙벽을 조성하는 대신 물총새들이 편히 쉴 수 있는 횃대 몇 개를 정화지에 만들었습니다. 횃대라고 하지만 거창한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나뭇가지 몇 개를 꽂아 놓았을 뿐입니다. 그 횃대에 물총새가 앉은 모습을 발견할 때 마음이 뿌듯해지는 건 그 때문입니다.

물총새를 만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볍습니다. 보고 싶은 친구를 만났다는 기쁨 덕분입니다. 비록 조류관찰대에서 훔쳐본 것이지만 물총새를 언제까지나 우리 공원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점점 더 깊어집니다. 아무래도 물총새를 짝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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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총새가 편안히 쉬기를 바라며 만들어 놓은 횟대 ⓒ 고양생태공원


덧붙이는 글 물총새 사진들은 조병범씨가 촬영하셨습니다. 조병범씨는 새를 좋아해서 주말에 고양생태공원에 자주 오십니다. 좋은 사진을 찍으면 많은 사람과 공유하고 싶다고 보내주십니다. 정화지 조류관찰대에서 전시하는 새 사진들은 대부분 조병범씨가 찍은 것입니다. 새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사진 덕분에 새 자료사진이 풍부해져서 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고양생태공원 #물총새 #정화지 #조류관찰대 #킹피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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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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